[태산 빙의글] 세 번째 결말

10화. 흔들리는 쪽

그날 이후로 동민은 눈에 보이게 피했다.

 

아침엔 커피포트 앞에 먼저 나타나지 않았고, 복도에서 마주치면 반대쪽 계단으로 돌았다.

2회차에서 자신이 썼던 수법을 그대로 보고 있는 것 같아서, 피하는 쪽의 심정이 이렇게 뻔히 들여다보일 줄은 몰랐다.

 

둘째 날엔 점심시간에 아예 자리를 비웠다.

지원 언니가 "동민 씨 요즘 왜 혼자 나가서 먹어?" 하고 물었을 때, 대답할 말이 없어서 그냥 웃어넘겼다.

사무소 쪽에서는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변화였다.

저쪽에서만, 딱 한 사람한테만 그 변화가 전부 보였다.

 

사흘째 되는 날, 자료실 앞에서 운학과 마주쳤다. 먼저 다가온 건 운학이었다.

 

"…저기요."

"생각 다 하신 거예요?"

"그게 아니라."

 

운학이 주위를 살피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그쪽이랑 그날 얘기하고 나서, 제가 성호 실장 쪽 연락을 한 번 씹었어요. 뭐라고 답할지 몰라서 일부러 안 받은 거였는데, 그게 걸렸나 봐요. 그다음 날부터 모르는 사람이 자꾸 제 자리 쪽으로 왔다 갔다 해요."

 

심장이 내려앉았다.

 

"…감시하는 거예요?"

"확실친 않아요. 그냥 느낌이 그래요. 평소엔 신경도 안 쓰던 사람이 갑자기 눈에 밟히는 거."

 

자신이 섣불리 접촉한 게, 그쪽 눈에도 운학의 변화를 보이게 만든 셈이었다.

도박이라고 생각했을 때 예상했던 위험이, 이렇게 먼저 운학한테 떨어지고 있었다.

 

"…미안해요. 저 때문인 것 같아서."

"그쪽 탓은 아니에요. 어차피 저도 발 담근 건 제 선택이었으니까."

 

운학이 애써 웃어 보였지만,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생각은 거의 끝났어요. 근데 하루만 더 주세요. 제가 가진 거, 그게 다가 아니라서요."

 

다가 아니라는 말에 귀가 트였다.

 

"…다른 것도 있어요?"

 

운학이 입술을 깨물었다.

 

"…장부 말고, 사람 쪽으로요. 성호 실장 말고 위에 한 명 더 있다는 거, 알고 계세요?"

 

몰랐다. 2회차에서도 끝내 알아내지 못했던 이름이었다.

 

"…그게 누구예요."

"그건 저도 아직 확실친 않아요. 그냥 들은 거라서. 근데 그게 맞으면, 성호 실장 하나 쳐낸다고 끝나는 게 아니에요."

 

생각보다 더 깊었다.

장부 뒤에 성호가 있고, 성호 뒤에 또 누가 있다면, 지금까지 그려 둔 그림 전체가 바뀌는 거였다.

 

"있어요. 근데 그건 내일 말씀드릴게요. 지금 여기서 더 얘기하면 저도 위험해요."

 

 

 

*

 

 

 

점심시간, 동민이 혼자 나가는 걸 보고 뒤따라 나갔다.

근처 편의점 앞 테이블에 혼자 앉아 삼각김밥을 먹고 있었다.

 

"…여기 계셨네요."

 

동민이 먹던 걸 삼키다 말고 당황한 얼굴을 했다.

 

"…저, 그냥 바람 좀 쐬러."

 

변명이 뻔히 들렸다. 맞은편에 앉아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 포장을 뜯었다.

 

"…저 혼자 먹으려고 한 건데."

"그냥 같이 먹고 싶어서요. 말은 안 걸게요. 불편하면 저 먼저 일어날게요."

 

동민이 뭐라 말하려다 그냥 다시 먹었다.

둘이 말없이 삼각김밥만 먹는 시간이 이어졌다.

 

어색한데, 싫지는 않은 침묵이었다.

 

한참 뒤에 동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한테 왜이러세요."

 

삼각김밥을 다 먹고 나서야, 하려던 말을 꺼냈다.

 

"저, 동민 씨 좋아해요."

 

동민이 먹던 걸 삼키다 사레들렸다.

기침을 몇 번 하고서야 겨우 숨을 돌렸다.

 

"…갑자기 그런 말을."

"갑자기 아니에요. 전부터 그랬어요. 그냥 말을 안 했을 뿐이지."

 

동민이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아무 대답도 못 했다.

괜히 시선을 피하며 삼각김밥 포장지만 만지작거렸다.

 

 

 

*

 

 

 

퇴근 시간, 엘리베이터 앞에서 동민과 마주쳤다.

피하려는 기색이 뚜렷했지만, 좁은 복도라 피할 자리가 없었다.

나란히 서서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동안, 먼저 말을 걸었다.

 

"…요즘 저 피하시는 거, 맞죠."

 

동민이 움찔했다.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면 다행이고요."

 

전에 자신이 들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는 걸, 말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동민도 그걸 느낀 모양이었다.

눈이 살짝 커지더니, 뭔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문이 열렸다.

동민이 먼저 타고, 뒤따라 들어갔다.

둘뿐인 엘리베이터 안, 침묵이 길어졌다.

 

참는 얼굴이었다.

숫자 표시창만 올려다보면서 턱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몇 층을 지나는 동안 그 침묵을 버티던 동민이,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운학 씨랑, 무슨 사이예요."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게 깔렸다.

참다가 못 참고 터진 질문이었다.

 

"…그게 왜 궁금하세요."

"…그냥요. 둘이 요즘 자꾸 붙어 있으니까."

 

질투라는 걸 티 내지도 못하면서, 궁금한 것도 숨기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이 낯익었다. 1회차에서, 2회차에서 자신이 수없이 지었던 표정이었다.

 

"…저, 운학 씨랑 아무 사이 아니에요. 낮에 말씀드렸잖아요, 저 동민 씨 좋아한다고. 그 마음 말고 다른 건 없어요."

 

동민의 눈이 흔들렸다.

낮에 들은 말을 다시 듣는 건데도, 똑같이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 말을, 또 이렇게."

"또 하면 안 돼요? 저는 몇 번을 말해도 상관없는데요."

 

동민이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시선을 피했다.

귀 끝이 또 빨개져 있었다.

 

띵, 하고 문이 열렸다.

동민이 먼저 내렸다.

문이 닫히기 직전, 돌아선 그 뒷모습에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저도,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서요."

 

문이 완전히 닫혔다.

 

혼자 남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방금 그 말이 운학에 대한 거짓말이었는지, 아니면 전혀 다른 얘기였는지 알 수 없었다.

늘 무심하던 그 얼굴에, 못 하는 말이 있는 사람의 표정이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틈이 벌어지면 뭐가 나올지, 무섭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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