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교실 문 앞에서 세 번 망설였다.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또 올렸다가.
그냥 전학 안 오면 안 됐나.
한빛예술고.
퍼포먼스 특기반.
전교에서 가장 소수 정예라는 그 반.
나는 오늘 그 곳으로 전학을 간다.
담임 선생님이 인솔해주면서 문 앞까지 데려다주셨는데, 정작 들어가는 건 나 혼자였다.
쌤이 너무 무책임한거아냐? 그런 생각은 뒤로하고..
드르륵ㅡ, 살짝 힘을 주어 문을 열었다.
다섯 개의 시선이 한꺼번에 날아왔다.
아니 이게 무슨 상황이야.
전부 다 너무 잘생겼다.
"어, 전학생이다."
누군가 중얼거렸고,
"여자다."
또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마치 희귀한 생물 발견한 것처럼.
"안녕하세요, 주연주입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꾸벅, 인사를 했다.
잘 부탁해! 주변에서 발랄한 목소리들이 인사를 해줬다.
살짝 민망해져서 볼을 긁적이며 어디 앉아야 하나 눈치를 보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창가 두 번째 줄.
키가 크고 하얀 얼굴에,
눈웃음이 살짝 고인 눈.
그 애가 자기 옆 빈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말은 없었다.
그냥 눈으로 '여기 앉아.' 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어색하게 걸어가서 앉았다.
최수빈.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명찰에는 그 애 이름이 각인되어있었다.
"나 최수빈."
뒤이어 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사치레지만 괜히 귀에 오래 남았다. 목소리도 좋네...
-
수업은 실기 위주라 교과서가 거의 없었고, 나는 뭘 꺼내야 할지 몰라 가방만 붙들고 있었다.
그때 옆자리인 수빈이 슬쩍 자기 악보 한 장을 내 책상 위로 밀어줬다.
"오늘 이거 보면서 따라오면 돼."
별 거 아닌 한 마디였지만, 나에겐 그 날 처음 듣는 동급생과의 대화였다.
응, 고마워.
짧게 감사인사를 했다.
-
쉬는 시간.
나머지 애들은 반 밖으로 나가거나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떠들었는데, 수빈은 의자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조용한 애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고개를 홱 돌리더니 이어폰 한 쪽을 빼고선 말을 걸었다.
"전에 어느 학교 다녔어?"
"아, 반포 쪽에 있는 일반고."
"예고는 처음이야?"
"응."
"그럼 실기 수업 많이 낯설겠다."
그러더니 다시 이어폰을 꼈다.
대화 끝.
근데 이상하게 차갑지는 않았다.
불필요한 말은 안 하는 스타일인 거지,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게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
점심시간이 제일 문제였다.
급식실이 어딘지 모르고,
같이 가자고 먼저 말 거는 게 어색하고,
혼자 따라가자니 길을 몰랐다. 여기 선생님은 왜이리 불친절한거지..
어물어물하고 있는데, 수빈이 일어서면서 나를 봤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살짝 까딱했다.
따라와.
나는 얼른 핸드폰과 틴트를 챙겨 따라갔다.
계단 내려가고, 복도 꺾고,
급식실 앞까지.
수빈은 내가 잘 따라오는지 한 번씩 뒤를 돌아봤는데,
눈이 마주치면 아무 표정 없이 다시 앞을 봤다.
나중에 알았는데 수빈은 원래 먼저 챙겨주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자기한테 먼저 다가오는 사람한테 정이 가는 타입이라고.
그래서 그날 수빈이 나한테 한 것들이
사실 다 되게 특별한 거였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떠들썩한 학생들과 중간중간 들려오는 다채로은 음악 소리들
그리고 내 앞에 앞정서서 가는 최수빈의 뒷모습까지.
생각보다 착한 애같지? 말이 없어서 좀 무뚝뚝해보이긴 해도.
잘생기기도 잘생겼고.
큼, 괜스레 헛기침을 하며 옆을 돌아본 순간, 갑자기 우뚝 선 최수빈의 등으로 얼굴을 부딪혔다.
"악!"
수빈은 놀라서 뒤를 돌아본 것 같았는데, 나는 너무 창피해서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뭐해?"
"아, 그... 딴 생각 하다가 부딪혔어. 미안."
"너 재밌다."
풉 웃으며 날더러 재밌다고 하는 수빈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내 얼굴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밝게 웃는 그의 얼굴이 보였다.
웃으니까 더 잘생겼네.... 아니, 그보다 내가 재밌다고? 뭘 보고 그러는거지...
"여기가 급식실이야. 근데 나는 식단하느라 점심 안 먹어서."
"아... 응! 고마워. 나 밥은 혼자 먹어도 돼."
"그래, 맛밥하고 올라와. 오는 길은 기억하지?"
"응응. 바보도 아니고, 이 정도는 외우지."
푸하하, 하고 다시한번 웃음이 터졌다.
뭐가 그렇게 웃긴거래.
"나 너랑 친해지고싶어졌어."
"어엉?"
"번호랑 인스타 둘 다 교환하자."
"어? 그래 좋..."
좋다고 말하기도 전에 내 손에서 홱 폰을 낚아채 가져간다.
아니, 뭐야?!
토도도독 몇 번 손을 바쁘게 움직이더니 다시 내게 폰을 건네준다.
"자. 내 번호랑 인스타 팔로우 넣어놨어."
"엉..."
"너 생각하는게 얼굴에 다 보인다? 연기자 할 건 아니지?"
헛이쁜이네, 헛이쁜이.
뭐?! 하고 반박하기도 전에, 최수빈은 홱 돌아서 성큼성큼 가버렸다.
다리가 길어서 그런지 가는 것도 빠르네....
아, 나도 밥 먹으러 가야지.
도도도, 급식실로 향했다.
진짜 이상한 녀석이다...
귀가 홧홧하게 달아오른 것 같았는데, 응. 기분탓일거야.
그렇게 넘겼다.
— 1화 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