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54화. 오열



화가 나서인지,

감정을 억누르는 건지,

아니면 울음을 참고 있는 건지...

그의 어깨는 들썩이고 있었다.





나는 차마

그의 앞으로 가서,

얼굴을 보면서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의 등 뒤로 다가가

허리를 감싸 안았다.





"훈지씨...

 나...이번 달에 떠나요.

 그러니까...."




그는 나의 말을 끊고,

뒤돌아봤다.





"떠나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서울을 떠난다구요?

 이사 간다는 말이에요?

 왜요?

 나 때문에?"






"한국을요..."







"당신...정말..

 하...

 대단하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계획한 거에요?

 나 떼어 놓으려고 한국을 떠난다구요?"





그의 흥분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아니. 훈지씨 때문에 떠난다는 게 아니에요.

 나는 나한테 주어진 시간을

 더 잘 살아내고 싶어서 가는 거에요.

 그게 지금...

 내가 가장 후회하지 않을 선택인 것 같아요."



"훈지씨와의 만남이,

 아니 이별이...

 그 계기를 더 확실히 만들어 주긴 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나와는 다르게

 당신은 늘 계획적이고,

 세심하게 챙기는 모습이 좋았어.

 그런데 지금은...

 소름 끼쳐요.

 나만 모르게, 그렇게 혼자 준비하고

 그러면서 나를 만나 행복하게 웃고...

 당신...

 정말 뭐야.."






"그렇게 얘기하지 말아요...

 당신 보면서 나도 힘들었어요.

 하....

 그게 마음이 편하면...

 그렇게 해요.."






그는 나에게 독설을 퍼부었다.





"새로운 곳에서 만날 남자 친구도

 미리 만들어 놓고 떠나는 거 아니에요?

 그런 계획성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네."
 




아름다운 이별이란 건 없다.

더 치사해지고, 유치해 질수록

상처를 감추기 쉬워진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훈지씨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잘 알아 들었어요.

 나도 쿨하게 받아들이고,

 그 대단한 이별 해 줄께요."




그는 차가 주차된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는...

그를 쫓아갈 수가 없었다.



그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잠시 앉아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를 계속 기다리게 할 수 없어,

이내 차가 있는 곳으로 향하면서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차마 운전석에 앉아 있는

그의 얼굴까지는 볼 수는 없었다.




내가 타자마자,

그는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1시간 남짓 지났을까..

눈에 익은 건물과 도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단지 앞 도로에 차를 세운 그는

내게 말했다.




"잘 가요."





얼음장 처럼 차가운 그의 말투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내리고, 차문을 닫자 마자

그는 출발했다.




그리고, 떠나는 그의 차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돌아보지 못 한 채,

그를 배웅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잘 견딜꺼야..

 걱정하지마.."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집으로 향했다.





이상하게도 걸음을 뗄수록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났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그의 말과 행동이 자꾸 떠올랐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문에 기대어 주저 앉았다.





"어떻게 나한테 이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고, 

나의 울음 소리가

텅빈 집안을 가득 채웠다.





"여보세요? 아..정아구나..

 이 시간에 웬 일..

 잠깐만 너 지금 울어?"





"....태형씨....지금 나한테 와 줘..

 혼자 있을 수가 없어...

 너무 아파서...죽을 거 같아.."





"우리는 이제.. 연인은 못 되겠다." <55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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