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64화. 미겔의 친구들

sophie97
2026.07.19Vues 16
미겔이 가져다 준 커피 덕분에,
책 읽는 시간이 훨씬 여유롭고, 향기로워졌다.
빨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청소를 했다.
늦은 아침 겸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훈지씨가 한 밤 중 배달해서 먹은 샌드위치를
맛집이라면서 더 달라고 했던 기억이 나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동네를 산책한 후,
미겔의 카페로 바로 가기 위해
외출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이 동네를 산책할 때마다
왜 스페인에서 가장 예쁜 마을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으로 온 것이
잘 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이 마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훈지씨가 함께 봐 줄 수 있냐고 가져온 영화에서였다.
그 영화의 배경 중 한 곳이 이 마을이었으며,
평화로운 분위기가 너무 인상 깊어 찾아봤다.
'아...'프리힐리아나'란 곳이구나...
나중에 저런 곳에서 한 번 살아봐도
정말 좋겠다...'
막연했던 바람은 생각보다 빨리 현실이 되었다.
한참을 이 골목, 저 골목을 둘러보다가
시계를 보니 벌써 6시 반이 넘고 있었다.
걸음을 재촉하여 미겔의 카페로 향했다.
"미겔, 오늘 하루 어땠어요?"
"아~왔어요? 오늘은 축제가 끝난 후
첫 주말이라서 그런가 좀 한가했어요.
마무리 거의 다 했으니까 잠시만 기다려줘요."
그가 정리를 하는 동안에,
나는 미겔의 카페에서
마음에 드는 곳들의 사진을 찍었다.
카페 문을 닫고,
미겔과 함께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로 걸어갔다.
"오늘은 뭐하면서 보냈어요?"
미겔이 말하면서,
내 가방을 달라는 시늉을 했다.
"가방이요? 왜요?"
"들어주려구요."
"가방을 왜 들어줘요? 안 무거워요."
"사실은 내가 한국에 대해서 검색을 좀 해 봤어요.
그런데, 한국 남자들은
여자 가방을 들어준다고 하더라구요."
"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미겔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런건 어디서 찾았어요?
아...미겔...엉뚱한 데가 있네요.
다 그런 건 아니고...
난 내 가방은 내가 챙기는 게 편해요.
남자가 제 가방 들고 다니는 거
별로 안 좋아하구요ㅎ"
미겔 덕분에 오래 간만에 크게 웃을 수 있었다.
미겔의 카페와 멀지 않은 펍에서
그들의 친구들을 만났다.
모두들 미겔과 함께
그 마을에서 자란 친구들이었다.
미겔의 절친인 애드리안이
마드리드에서 일하게 되어
열리는 환송회 자리였다.
그의 친구들도 그처럼
모두들 격의 없이 나를 대해줬다.
일요일 저녁,
함께 자란 동네 친구들과 함께 하는 맥주 한잔은
우리 나라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시끄럽고, 서로 놀리고, 웃고....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미겔이 미국에서 일했던 때를 말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마리아가 내게 말한 적 있었던,
그 때 만났던 여자 친구 이야기도 나오게 되었다.
애드리안이 말했다.
"그 때 미겔이 그 여자친구와 결혼했더라면
우리가 오늘 이렇게 만날 수도 없었겠다."
'아...결혼까지 생각했던 사이였구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 나의 속마음을 읽듯이
미겔이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결혼까지 생각했었죠.."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우리의 사랑에는 속도 차이가 있었어요.
그녀의 사랑은 제 사랑보다 먼저 식었으니까요."
그의 말을 듣던 여사친인 아이타나가
울컥 화내듯이 말을 이었다.
"결국 그 미국 여자한테 다른 사람이 생긴 거잖아."
갑작스런 그녀의 발언에
나는 약간 놀랐다.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아이타, 그렇게 이야기하지 말라니까..
나에 대한 마음이 식었으니까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 거겠지.."
나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대신, 미겔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쓰다듬어 주었다.
그것이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위로였다.
그러던 중에,
문득 이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꿀 방법이 떠올랐다.
가방 속에서 BTS와 케데헌 굿즈들을 꺼냈다.
스페인으로 오기 전에
혹시라도 선물을 주게 될 기회가 있을지 몰라
챙겨 온 것들이었다.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은 몰랐지만,
다들 무척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니 챙겨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드리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나와 미겔은 집으로 향했다.
"친구들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소중한 것들을
선물해 줘서 고마웠어요.
다들 아이들처럼 좋아해서 내가 다 행복했어요."
"내가 BTS한테 고마워해야죠.
덕분에 친구들 사랑을 받게 됐으니까요.ㅎ"
그렇게 평화로운 일요일 밤이 저물었다.
그날을 시작으로
훈지씨는 매일 한통의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이메일을 제외 하고는 열어보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조금 지나고 난 후에,
충격적인 제목을 읽게 되었다.
[미안해요. 새 여자친구가 생겼어요...]
"박훈지!! 이제 정말 끝이야!!" <65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