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시즌2)
85화. 당신이 바람이 난다면...

sophie97
2026.10.07Vues 50
지난밤 늦게까지 숨바꼭질을 하고
야식으로 월남쌈까지 먹고 자는 바람에
일요일 아침 늦잠을 자버렸다.
눈을 떠보니 10시가 넘어 있었다.
옆자리에 훈지 씨가 보이지 않았다.
"오늘 오전에는 촬영이 없다고 했는데...
벌써 나갔나?"
눈을 비비며 잠을 깨다 보니
방 안에 고소한 버터 냄새가 진동했다.
"이게 무슨 냄새야?
혹시...
요리하고 있는 거 아니야?"
나는 잠이 확 깼다.
주방을 또 얼마나 어질러 놨을지
걱정이 되어 한걸음에 나갔다.
'역시...'
조리대는 한가득 어질러져 있었고,
냉장고 문까지 활짝 열려 있었다.
난장판 그 자체였다.
"훈지 씨, 지금 뭐하고 있어요?
좀 더 자지. 왜 벌써 일어났어요?"
"정아 씨야말로
왜 벌써 일어났어요?
이제 거의 다 됐어요.
아침으로 먹을 토스트를 만들고 있어요.
예전에 정아 씨가 샌드위치보다
토스트가 더 맛있다고 했잖아요."
"그걸 기억하고 있어요?
어쩐지 버터 냄새가 나더라...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이 했어요?
식빵 한 봉지를 다 한 거에요?"
훈지 씨는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멋쩍게 웃었다.
"아니... 타기도 해서...
다는 먹을 수 없어요."
"아...많이 탔구나...
밑바닥이 다 탔는데요?
안 탄 게 있기는 하죠?"
접시에 쌓여 있는 식빵을 들어보니
대부분 밑바닥이 새까맣게 타 있었다.
'어? 이건 내가 쓰는 기술인데...
탄 쪽은 밑바닥에 깔기.'
나는 훈지 씨가 쌓아 놓은
토스트를 보며 피식 웃었다.
"한쪽은 안 타게 잘 구웠는데,
다른 쪽은 다 타더라구요.
식빵이 이상한 건지,
후라이팬이 이상한 건지..."
"여기 몇 개는 안 탔네.
이걸로 먹으면 되겠다.
치즈랑 햄 있으니까 각자 취향껏
넣어서 먹으면 되겠다. 그쵸?"
나는 냉장고에서 필요한 재료들을 꺼냈다.
"여기 프렌치 토스트도 했어요.
이건 좀 덜 탔죠?"
훈지 씨가 또 다른 접시를 보여줬다.
"아~ 그러네!!
어렸을 때 엄마가 자주 해줬는데
나중에 커서 보니
그게 프렌치 토스트였더라구요.
훈지 씨 덕분에 어렸을 때 먹었던
프렌치 토스트도 먹구... 감동!!"
"훈지 씨. 커피 좀 내려줘요.
이건 내가 셋팅할께요.
그런데...
그냥 더 자지 그랬어요."
"일요일에 늦잠 자는 아내를 위해
내가 요리해서 같이 아침 먹는
로망이 있었어요."
그는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배를 쓰다듬었다.
"배에 힘주지 마요.
내가 배 쓰다듬으면 엄청 힘주더라!!"
"아니에요.
내가 무슨 배에 힘을 줬다고...
복근이 원래 탄탄한 걸 어떡해요."
"그런데 얼굴은 왜 이렇게 빨개요?
힘을 빼란 말이야. 힘을!!"
그는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부르며 커피도 내렸다.
"와~ 과일도 벌써 셋팅해 놓은 거에요?
오늘 아침은 흔지 씨 덕분에
여왕처럼 먹게 생겼네요.
고마워요. 훈지 씨!!"
"나는 정아 씨가 맛있게 먹으면
행복해요. 어서 먹어봐요."
'그래... 버터와 식빵은 맛이 없을 수가 없지.'
"와.... 이건 뭐...
토스트 가게를 열어야겠네!!
너무 맛있어요."
우리는 지난 밤 격렬했던
말다툼은 까맣게 잊고
행복한 일요일 아침 시간을 보냈다.
"정아 씨. 오늘 오후에는 뭐해요?"
"나는 오늘 친구들 만나기로 했어요.
남자 친구들은 없어서 미리 얘기 안 했는데....
괜찮죠?"
"수연 씨도 나와요?"
"맞아요.
수연이랑 대학 친구들 몇 명이요."
"늦어요?"
"아니요.
술 안 마시면 그렇게 늦지 않을 거에요.
내일 월요일이라 출근들 해야 하니까.
아이들 등교도 시켜야 하고...
술은 안 마실 것 같아요.
오늘 훈지 씨 늦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따 촬영하는 거 보고
연락할께요.
오늘 못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
문단속 잘하고요."
"알겠어요.
훈지 씨 덕분에 맛있는 아침 식사 했어요.
고마워요. 잠도 푹 못 자고...
설거지는 내가 할게요."
"아니에요. 설거지까지 내 몫이에요.
평상시에 정아 씨가 나 대신 많이 해주잖아요.
오늘은 내가 설거지까지 다 할게요.
아침에 일어나서 세탁기도 돌리고
로봇청소기도 돌렸어요."
나는 물끄러미 그를 바라봤다.
"왜요?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네...
잘생김. 멋짐. 매력터짐.
그리고 섹시함."
"아.... 왜 그래요.
사람 무안하게..."
그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입이 귀에 걸렸다.
설거지를 하면서 노래도 흥얼거렸다.
훈지 씨 덕분에 나는 여유로운
일요일 오전 시간을 보냈다.
그 때
수연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정아야!! 비상이야.
너 수진이 기억나? 우리 과 톱했던 애.
수진이가 자살을 했대.
남편이 바람나서 집을 나갔는데
그 후에 수진이가 우울증으로 힘들어 했대]
[뭐? 아니...수진이 공부만 하던 애 아니야?
남편이 바람났다고 자살까지 했다고?
웬일이야... 애들은 어떡하고?]
[몰라. 남편이 데려가든지.
친정이나 시댁에서 맡아 키우겠지.
하여간 은채가 수진이랑 친했잖아.
장례식 가야 한대서 모임 취소됐어.]
[세상에... 정말 슬픈 일이다...
배우자 바람 때문에 목숨을 끊다니.]
[내가 남편한테 나 바람피우면
어쩔 거냐고 했더니 자기는 나를 죽일거래...
그동안 같이 산 세월이 있는데 겁나 무섭지 않냐?]
[수연아... 왠지 진구씨는 그럴 수 있을 거 같애.
우리 수연이 잘 하자!!]
수연이의 메시지를 읽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 훈지 씨 옆으로 갔다.
"훈지 씨.
만약에 우리가 결혼을 했는데
내가 바람을 피웠어요.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거에요?"
훈지 씨는 벌써 '바람'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나를 바라봤다.
숨소리도 조금씩 거칠어졌다.
"아니. 결혼도 했는데 바람을 피워요?"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그렇다면...
정아 씨가 좋아하는 사람 곁으로
죄책감 없이 갈 수 있게 놓아 줄 거에요."
"푸하하하하하"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훈지 씨는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이고... 훈지 씨.
올해 들은 이야기 중에 제일 웃겨요!!"
"뭡니까? 세모네모.
내 말 중에 뭐가 그렇게 웃긴 거에요?"
"아니. 나한테 각서까지 쓰게 한 사람이
자유롭게, 죄책감 없이 갈 수 있게
놓아 준다고요?"
"말도 못 합니까?
진짜가 아닐 때 쿨한 척이라도 해야죠."
훈지 씨가 갑자기 설거지를 멈추고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는 정아 씨는 어떻게 할 거에요?"
"나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나야말로 쿨하게 보내 줄거에요.
그리고 새로운 사랑 찾아야죠.
원희오빠한테 가야 하나.
태형 씨한테 가야 하나.
아니면 우진 씨한테 가야 하나..."
"훈지 씨... 왜 주먹을 쥐고 그래요...
고무장갑 찢어지겠어요.
농담이에요. 농담!!!
빨리 주먹 펴요."
나는 훈지 씨의 등 뒤로 다가가
그를 감싸 안았다.
"훈지 씨가 만약에 바람이 난다면...
그건 정말...
생각만 해도 마음이 무너져요."
나는 그제야 수진이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나는 내 인생에서 사랑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를 만나고 내가 이렇게까지 변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다.
"훈지 씨 물건 숨겨요!! 빨리빨리!!" <86화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