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시즌2)
79화. 정아의 속마음

sophie97
2026.10.02Vues 68
훈지 씨의 깍듯한 인사에
원희 오빠는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했다.
"정아야... 진짜야?"
"오빠... 맞아.
얘기할 기회가 없었어.
놀랐지?"
'저 의기양양한 표정 좀 봐...
못 말려.'
나는 훈지 씨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원희 오빠는 앉으면서 내게 물었다.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난거야?"
"오빠, 수연이 기억나지?
내 친구."
"어. 수연이 기억나.
엄청 활발하고 터프했잖아."
"어. 맞아. 기억하는 거 맞네."
나는 잠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수연이가 우리 과 선배를 통해서
훈지 씨 기획사에서 영어 선생님 찾는다고
소개해 줬어.
"진짜? 정말 인연이네..."
원희 오빠는 나와 훈지 씨를
신기한다는 듯이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그런데...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정아가 더 연상 아닌가?"
"응. 맞아.
그래서 풍파가 많아."
나는 순간 기가 죽은 목소리로 말했고,
훈지 씨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 우리 모습을 본 원희 오빠가
웃으며 말했다.
"나이는 정아 네가 연상인지 몰라도
박훈지 씨가 너를 더 귀여워하는 것 같은데?"
우리 셋 사이에는 아무런 연결 고리가 없었지만,
원희 오빠는 20대였던 나의 모습을,
훈지 씨는 지금의 나를 알고 있기에
우리는 어느새 마음을 놓고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저녁을 함께 먹고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나와 훈지 씨는 술도 마셨고
집까지 거리도 가까웠기에
걸어서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훈지 씨.
이러려고 시간과 장소를
미리 이야기하라고 한 거였구나!!"
훈지 씨는 나를 보며 대답했다.
"그걸 이제야 알았구나!!"
"으... 얄미워.
어느 때 보면 진짜 폭스야 폭스!!"
"스케줄이랑 겹쳤으면 그나마 갈 수 없었을 텐데,
오늘 하늘이 도왔지 뭐에요?
첫사랑이랑 애틋하게 옛날 이야기 나눌까봐
내가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첫사랑이랑 그러려고 만나는 건데
거길 왜 껴요?"
훈지 씨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정아 씨."
훈지 씨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나이대에 첫사랑을 만나면
사고를 칠 가능성이 커요.
내가 그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 거에요.
정아 씨가 내 이 깊은 뜻을 알아요?"
"푸흡... 그런데 훈지 씨 말이 일리가 있다.
나도 원희 오빠 카페에서 며칠 전에 봤을 때,
우리 20대가 막 떠오르면서 아련해지더라구요."
"거봐 거봐...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박훈지, 오늘 진짜 잘 했다!!
셀프 칭찬해!!"
그는 자신의 팔을 쓰다듬으면서
흐믓한 미소를 지었다.
집에 거의 다 왔을 무렵,
나는 마트에 들려 살 것이 있어서
훈지 씨를 먼저 집으로 들여 보냈다.
주말에 먹을 것을 장보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익숙한 신발 한 켤레가 눈에 들어왔다.
언니였다.
"언니!!!!"
나는 언니가 훈지 씨한테 뭐라고 했을까봐
날이 서서 언니를 급하게 부르며 들어갔다.
그런데 훈지 씨는 보이지 않았고,
언니만 식탁에 앉아 있었다.
"언니. 훈지 씨한테 뭐라고 했어?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잖아.
왜 자꾸 와서 이래 정말.
이러면 언니 못 들어오게
비밀번호도 바꿔 버릴거야.
알았어?"
나는 언니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휴대폰을 꺼내 형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부!! 와서 언니 좀 데려가."
"왜? 언니 너한테 반찬 갖다 준다고 갔는데?"
"언니가 자꾸 나한테 말도 없이
자기가 비밀번호 누르고 들어와.
나도 다 큰 성인인데, 이건 아니지.
형부, 그거 알아?
언니가 있잖아!!"
언니는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기라도 하는 듯
재빨리 내 전화를 빼앗았다.
"지금 바로 갈거야.
정아가 뭐 다른 일로 속상한 게 있었나봐.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민해.
어어~ 끊어."
언니는 전화를 끊고 나서는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유정아. 너 왜 이래?
내가 뭘 어쨌다고?"
그때 화장실에서 나오던 훈지 씨가
내 뒤에 서서 멍하니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아 씨, 왜 이렇게 소리를 지르고...
무슨 일이에요?"
나는 훈지 씨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언니가 훈지 씨한테 무슨 말 했어요?
헤어져라, 집으로 돌아가라, 그런 얘기 했죠?"
훈지 씨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언니를 보더니 이내 나를 보며 말했다.
"아니에요...
누님이랑 정아 씨 흉 좀 보고 있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확실해요?
언니가 훈지 씨한테 뭐라 한 거 아니죠?"
"아니라니까요.
왜 이렇게 언니한테 못 되게 굴어요.
반찬 갖다 주시러 오신 건데..."
"그럼 됐어요."
나는 언니를 보며 말했다.
"반찬 갖다 줬으면 빨리 가.
이제 반찬 가져 오지마."
나는 언니의 등을 떠밀며 현관 쪽으로 갔다.
"아우... 알았어.
등 안 떠밀어도 갈거야.
얘가 오늘 왜 이래?
너 지난 번에
내가 듣기 싫은 소리 좀 했다고
이러는 거야?"
"나는 훈지 씨가 언니 때문에 상처 받는 거 싫어.
싫다고!!"
언니는 내 말에 놀라 뒤돌아봤다.
"알았어. 정아야...
안 그럴게. 진정해.
언니 간다..."
언니가 현관문 밖으로 나갔고
훈지 씨는 재빨리 따라 나갔다.
난 언니가 나가고 나서야
진이 다 빠져서 소파에 앉았다.
잠시 후,
훈지 씨가 들어와 내 옆에 앉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우리 누나한테 받은 상처가 그렇게 큰 거에요?"
나는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나도 마음 속으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원희 오빠 어머니를 다시 뵙고 나서
나도 남자친구 가족한테 예쁨 받고,
사랑 받았던 기억이 떠오르니까...
그때 생각이 나서 더 섭섭하고,
마음이 아팠어요."
훈지 씨는 아무 말 없이 내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대신 사과할께요.
정말 미안해요.
정아 씨..."
그는 가까이 다가와 나를 안아 주었다.
나는 그의 품에 안긴 채
다시 한 번 확인하듯 물었다.
"언니가 훈지 씨한테 뭐라고 한 거 아니죠?"
"아니라니까요."
훈지 씨가 내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나한테 잘 해 주세요.
따뜻하고 친절하게...
정아 씨처럼..."
그는 잠시 동안 나를 안고 있다가
천천히 나에게서 떨어지며 말했다.
"그런데, 그거 알아요?
정아 씨는 나한테는 이성적이면서
언니한테는 왜 이렇게 막무가내에요?
형부한테도 아까 막 반말하던데요?"
"내가요?
몰라. 나는 그런 거 몰라."
"아예 이사를 하는 거에요?" <80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