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i, moi et lui

04




알 거 없잖아. 그 말을 끝으로 시선을 내렸다. 괜히 분주한 척 필통을 만지작거리고. 꺼낼 것 없는 책가방을 열었다 닫아도 보고. 여전히 벙찐 채 날 보고 있는 김운학이 다시 앞을 볼 때까지. 한참이나 그러고 있었다.
결국 걔 뒤통수가 나를 쳐다보고. 나는 씁쓸한 입맛 다시며 또 고개를 숙인다. 혼란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말투에 김운학이 마음 상했을까봐. 작은 거에도 상처받는 애인 걸 알아서. 걔가 나한테 상처준 건 하나도 생각이 안 나더라.

그리고 하교시간. 떠들썩한 애들 사이에 묻혀 홀로 하교하는데. 순간 앞을 막아선.

“혹시 나 싫어해?”

김운학.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서…”

잘못한 거 하나 없으면서 죄책감 가득한 얼굴. 에 대고 괜찮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게 내 형편인지라. 가방 한 번 고쳐메고 말한다. 응. 너 싫어해. 어? 뭐라고? 시끄런 애들 사이에서 김운학이 귀를 바짝댄다. 다시 한 번 싫다 말해주려는데. 자꾸만 사람을 치고 가는 놈들 탓에 거리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까워지고. 내 입술이 김운학 귀 바로 앞에.
당황한 나머지 김운학 어깨를 밀쳐버렸다. 근데 힘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인지 그냥 김운학이 약해빠진 건지. 얘가 넘어져버리고. 시선이 집중된다.

“…너 싫다고 그냥”

내가 말해놓고도 미안해서 얼굴이 새빨개진다. 온몸에 열이 오른다.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지만…어.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결국 그대로 고개 푹 숙이곤 김운학을 피해 성큼성큼 걸어간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도 무시하고. 그냥 내 맘대로 굴기로 한다. 너도 맨날 너 맘대로 했으니까 나도 내 맘대로 할 거야. 어쩌라고.

…했던 마음은 곧 사그라들고. 밤이 되자 이불을 벙벙 찬다. 그 정도로 할 건 아니었는데. 적당히 말 걸지 말라 하고 넘길걸. 왜 다치게 해서는. 꽤 세게 넘어지던데…표정이 말이 아니던데…

…아아아아아……
내일 사과해야겠다…


학교 도착하자마자 다리 덜덜 떨면서 시간을 떼웠다. 언제 오지 생각하던 그때 뒷문이 열리고. 걔가 들어온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어!”

아니 오히려 신난 표정으로.

“일찍 왔네??”

또 겁도 없이 내 앞에 앉는다.

“…넌 내가 안 미워?”
“왜 미워?”
“너한테 안 좋은 말만 하고…밀치고…”
“근데?”

방긋 웃는 얼굴로 사람 속을 쑤신다. 괜히 눈을 맞췄다. 이번엔 안 좋아할 거라 다짐했으면서 또 간지러운 생각이. 이러면 안 되는데. 너는 나를 좋아하지 않을 텐데.
고개 푹 숙이니 다시 말이 들린다. 근데 있잖아, 왜 나한테 못되게 굴어? 순수한 표정이 참 아프더라. 책상 아래로 손 꼼지락거리면서 말을 흘렸다.

“…미안.”
“아잇 사과말고. 이유가 궁금해서 그래.”

나는 너 좋은데 너는 나 안 좋아하는 것 같아서.

아. 그래. 이게 문제였지. 김운학의 단점은 확실했다. 지 머릿속엔 긍정적인 단어 밖에 없으니까 싫다는 말을 몰라서. 애매하다는 말도 모르고 좋다는 말만 아니까. 그러니까 나 같은 애들이 오해할 법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는다고.

“난 너 좋아. 너랑 친구하고 싶어.”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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