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오픈 첫날.
복도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사진부 앞은 유독 붐볐다.
“와… 이거 봐.”
“이 시리즈 뭐야 진짜…”
정국의 사진 앞.
조명이 살짝 어둡게 깔린 공간에서
그의 사진들은 하나의 이야기처럼 이어져 있었다.
검을 든 순간,
숨을 고르는 순간,
그리고—
렌즈를 바라보는 눈.
누군가 말했다.
“이거… 누구 보는 거 같지 않아?”
여주는 멀리서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알고 있었다.
저건 연출된 시선이 아니라는 걸.
반대편.
민규의 사진.
여주는 렌즈를 들고 있거나,
혼자 서 있거나,
생각에 잠겨 있었다.
누군가 말했다.
“이건 좀… 현실 같아.”
“되게 조용한데 계속 보게 돼.”
여주는 그 말 앞에서 멈췄다.
그 사진 속 자신은
확실히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복도 끝, 조용한 벽.
세 사람이 담긴 사진.
정국, 민규, 그리고 자신.
그 사진 앞엔 사람들이 오래 머물렀다.
“이게 제일 좋다.”
“스토리 있는 느낌인데?”
“누가 찍은 거야?”
여주는 아무 말 없이 그 사진을 바라봤다.
이상하게도—
이 사진이 제일
자기 자신 같았다.
—
전시가 한창인 오후.
여주는 혼자 사진들 사이를 걸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정국의 사진 앞.
여주는 멈췄다.
사진 속 자신은
렌즈 뒤에 있었지만—
표정이,
웃고 있었다.
자각하지 못했던 순간.
하지만 분명히
편안하고, 자연스럽고,
조금은… 좋아하는 얼굴.
민규의 사진 앞.
여주는 또 멈췄다.
사진 속 자신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눈은 어딘가를 보고 있었고,
표정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사람이 있는 사진.
여주는 그 앞에서
오래 멈췄다.
한 프레임 안.
세 사람.
그런데—
시선이 다 달랐다.
민규는 여주를 보고 있었고,
정국도 여주를 보고 있었고,
여주는—
“…아.”
그제야 알았다.
사진 속 자신은
정국 쪽을 보고 있었다.
그건
의식한 적 없는 방향이었다.
하지만
가장 솔직한 방향이었다.
전시 마지막 날, 저녁.
사람들이 거의 빠져나간 복도.
조명이 조용히 내려앉고, 사진들만 남아 있었다.
여주는 마지막 사진 앞에 서 있었다.
“여주.”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정국이었다.
여주는 돌아봤다.
정국은 잠시 말을 고르다가 말했다.
“…하나 말 안 한 거 있는데.”
“처음 봤을 때.”
“…?”
“너 체육관 문 앞에 서 있었잖아.”
여주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때부터였어.”
정국이 말했다.
“네가 나 찍기 전부터,
나는 이미 너 보고 있었어.”
짧은 정적.
여주는 조용히 웃었다.
“…나도 알아.”
“사진 보니까 알겠더라.”
“…뭐가.”
“내가 어디 보고 있었는지.”
여주는 한 걸음 다가갔다.
“나,”
“….”
“이미 너 보고 있었어.”
정국이 숨을 내쉬듯 웃었다.
“…그럼 됐다.”
그리고 잠깐, 서로를 바라보다가—
정국이 먼저 말했다.
“…그래서.”
“…?”
“이제 찍는 거 말고,”
정국이 한 발 더 가까이 왔다.
“…같이 있을래?”
그 말은 가볍지 않았다.
장난도 아니었다.
여주는 잠깐 멈췄다가,
“…응.”
짧게 대답했다.
정국이 웃었다.
이번엔 확실하게.
“그럼 우리,”
“…사귀는 거네.”
여주는 그 말에 작게 웃었다.
“…이제야 말하네.”
“그럼 뭐야, 아니야?”
“아니긴.”
여주는 자연스럽게 정국의 손을 잡았다.
이번엔
확인하듯이, 확실하게.
그날 이후.
둘은 더 이상 애매하지 않았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또 찍어?”
“아니, 너 기다리는 중.”
수업 끝나면 자연스럽게 같이 내려가고,
점심시간엔 늘 같은 자리에 앉았다.
—
체육관 뒤.
여주는 카메라를 들고 정국을 찍다가 멈췄다.
“왜 안 찍어?”
정국이 물었다.
“…지금은 안 찍어도 돼.”
“왜?”
여주는 웃었다.
“매일 보니까.”
정국이 피식 웃었다.
“…그럼 나만 손해네.”
“왜.”
“넌 나 찍어봤잖아.”
잠깐의 정적.
여주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말했다.
“…그럼 대신—”
한 발 가까이 다가갔다.
“이건 그냥 눈으로 봐.”
정국이 잠깐 멈췄다가 웃었다.
“…그게 더 좋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정국이 여주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여주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기대었다.
—
셔터 속에 담긴 순간들은 언젠가 사라지지만,
셔터 밖에서 이어진 감정은 계속 남아 있었다.
셔터 속에 담겼던 너는 어느 순간부터,
매일, 아무렇지 않게 내 옆에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