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beau smoking et une robe élégante
#_04



지민
너 그런 상황 마주하기 싫잖아


지민
내 말 틀려?

-
도와달라고 한 적 없어.

낮은 소리로 화내는 박지민에게 나는 굳은 표정 말고 더 보여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는 나에게 친절을 베풀 이유가 단 한 조각도 없다.

그나 나나 같은 날 같은 때에 같은 소식을 듣고 정략결혼이라는 족쇠를 나눠 맸다.

결혼이라는

인생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작은 사건이 아닌 이 일을

선대 부모의 억지스러운 결정으로 이뤄낸 것이

나는 이렇게도 분이 나고 화가 나는데도

박지민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도

상견례를 했을 때도

요즘도

그는 그저 당연한 것처럼

정말 보통의 결혼과 다를 바 없이 지내는 것 같았다

나만 화가 나고

나만 이 결혼이 싫고

홀로 이를 갈고 있는 것 같은 이 순간순간이 너무나 싫었다.

-
넌 뭐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아?


지민
...

-
나는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뭐 하고 있는지 매 시간 매 분마다 회의감이 들어.

-
사람 사는 게 아닌 거 같다고..

박지민은 뒤돌아서 테이블에 있는 생수병 하나를 열어 들이켰다.

표정 대신 그 뒷모습이 내게 무어라 항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민
그래서


지민
결혼 깰 거냐.

어깨에 걸친 수십만원짜리 숄더백이 토트백이 아님에 감사해야만 했다.

이게 만약 내 손에 쥔 토트백이었다면 나는 일말의 망설임 따위 없이 박지민에게 힘껏 집어 던졌을 것이다.

...그러면 박지민이 기겁하면서 결혼을 깨자고 할까?

별 미친 생각이 다 들었다.

결혼을 제의한 것은 박 대표 측이었다.

이미 내로라하는 기업들 사이에서 정점을 찍은 대기업의 제의를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은 어떻게 손쉽게 내칠 수 있겠는가.

박지민의 저 질문은

지금 이 정략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라는 존재가 그저 사나운 개에게 몰려다닐 수 밖에 없는 힘 없는 어린 양이나 다름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나온 질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결혼을 함부로 파할 수 없다는 걸

박지민은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
너 하는 말이 더 괘씸해. 알어?

박지민은 테이블에 놓인 냅킨으로 입을 닦고 그것을 손에 쥐었다.

꽉 쥔 주먹 안으로 냅킨이 힘없이 구겨졌다.


지민
혼인신고는 왜 했냐.

-
내가 하기 싫다고 하면

-
안 될 것도 아니었잖아.

-
아니야?

내 추궁에 냅킨을 쥔 손으로 다시금 생수병을 들고 물을 마시는 박지민을 보면서

차라리 그 물병을 나한테 던져버리라 말하고 싶었다.

그걸 빌미로 파혼이라도 할 수 있다면 이 자리에서 내 영혼도 팔아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
그러는 너는 뭐가 좋아서 나랑 결혼해?

-
우리집 말고도 사업 잘하는 집안 많아.

-
너랑 너희 아버지 똑똑하잖아.

-
너도 나 맘에 안 들면서 이렇게 살 이유가 없잖아.

어느새 빈 생수병이 테이블에 놓였다.

박지민은 손에 꼭 쥐고 있던 냅킨을 테이블에 굴려 던지고 뒤돌아섰다.

그대로 내 옆을 지나쳐 탁자에 놓인 수트자켓을 들었다.

그가 입은 옷의 단정하게 채워진 셔츠의 단추들이 그의 성정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더 답답했다.


지민
니 멋대로 생각하면 편한가보네.

아무런 감정의 높낮이가 없는 말이었다.

박지민은 그대로 자켓을 들고 의무실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