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royauté vampire [Saison 2]

35.

통토로롱-

무아지경으로 돌리던 펜이 떨어지자 남준은 서류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곧 오소소 돋는 소름에, 그제서야 사무실의 온도가 낮아졌다는 걸 인지한 남준이다.

김남준 (27) image

김남준 (27)

"백현 씨, 안 추우세요? 뭐 마실 거라도... 어?"

말을 이으며 백현이 있던 소파로 고개를 돌리는데, 세상에. 얘가 또 어딜 간 걸까. 남준은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걸 느꼈다.

재빨리 뇌를 굴려 상황파악을 끝낸 남준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그대로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툭-

...

각자 아무 말도 꺼내지 않고 침묵만 일관한지도 두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고, 계속 그런 상황이 이어졌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냥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는 것이다. 방금 눈앞에서 본 자가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니. 너무 갑작스러워서, 근데 또 마음은 어느정도 예상을 한 것 같아서.

다들 앞으로의 막막함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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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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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얘들아, 일단 일어나자. 여기서 나가자."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석진이었다. 동생을 잃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석진은 자신의 감정을 꾹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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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여기도 블타병 환자가 있잖아. 이제 여기도 안전하지 않아. 얼른 길을 찾아 나가야 해. 태태가 준 지도 어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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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22)

"지도...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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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자, 다들 일어나. 은비야, 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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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비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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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일단 나가자. 나가서 생각하자. 정한아, 움직일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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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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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윤정한, 왜 대답이 없어. 어디 아파?"

정한이 갑자기 손을 들어 올려 어느 한 곳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안개가 자욱함에도 환한 빛이 들어오는 것이 뚜렷이 보였다.

문 빈 (23) image

문 빈 (23)

"... 설마."

"김태형!!! 김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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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원 (23)

"... 아."

이미 눈을 감은 자의 이름과, 그 자의 형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 뒤이어 엄청난 인파가 몰려온다는 느낌이 땅을 통해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안개가 껴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다들 불을 들고 오고 있었다. 곧이어 선명하게 보이는 남준의 뒤로 엄청난 군사들이 함께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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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27)

"김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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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김남준."

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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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27)

"내가 평생 네가 보고 싶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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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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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27)

"다친 곳은 다들 없지? 정한이 아픈 데 없지? 근데 김태형은? 정호석도 없네? 못 찾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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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아, 맞다."

너는, 아직 모르는구나.

석진은 해맑은 눈동자로 물어보는 남준을 빤히 바라보았다. 저를 꼭 끌어안은 남준을 똑같이 안아주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를 유지 중이다.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넌 우리가 남쪽으로 넘어오고 난 뒤로의 일은 하나도 모르는데. 어떡하면 좋을까.

비록 일주일이 지난 것도 아니고, 고작 하루 이틀의 시간이었지만 우린 감당하지 못할 것들을 너무 많이 경험했는데.

태태의 상황까지, 네가 다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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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 남준아."

그래서 일단 내 마음에 조금만 더 담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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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27)

"응? 왜 그렇게 불러. 오글거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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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우리... 일단 좀 쉬자."

조금만... 조금만... 내 정신을 조금만 더 붙잡고, 바로 말을 해야겠지. 하지만, 지금은 나도 버티지 못할 것 같으니 미뤄야겠다.

지금은, 태태의 향이 가득 베인 그 침대가 너무너무 그립다.

저벅

저벅 -

저벅 - 저벅

저벅 - 저벅 -

눈이 살짝 녹아 축축한 길 위로, 누군가가 기웃거리며 걸어왔다.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백현은 수풀에서 나와 그를 똑바로 바라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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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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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27)

"어디 갔나 했더니."

헛웃음을 흘린 호석이 가소롭다는 듯 백현을 훑어보았다. 하지만 쉽게 함부로 하지 못하는 건, 남 주기 아까운 자. 갖고 있으면 유리해지는 자가 바로 백현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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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27)

"도련님 많이 화나셨어. 돌아오니까 네가 방에서 사라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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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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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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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27)

"... 누가 빼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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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말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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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27)

"내 말을 거역하겠다는 건가? 너는 절대 혼자 움직일 수 있는 몸이 아니었어. 분명 누군가가 도와줬겠지. 억지로 입 벌리게 하기 전에 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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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김태형은 어디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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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27)

"허, 그걸 네가 왜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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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어디 있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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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27)

"요즘 위아래 서열 정리가 부족했나? 난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넌 네 주제가 파악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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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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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27)

"그건 나보고 도련님의 명령을 어기라는 말이다. 그리고 네가 뭐라고 그딴 걸 알려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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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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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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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27)

"어쨌든 귀찮게 내가 안 찾아가고 스스로 다시 왔으니 됐어. 들어가지, 도련님께 또 혼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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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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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27)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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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

"설마 김태형 벌써 손 댄 거예요?"

백현의 입 끝이 파르르 떨렸다. 그걸 빤히 보던 호석은, 잠시 가만히 있다 싱글 웃으면서 입을 열었지.

"손만 댔겠니?"

불이 다 꺼진 태형의 방, 정한이 멍한 눈빛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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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14)

"..."

아까 전, 다들 이 방에 들어오더니 혼이 다 나간 상태로 각자의 방에 들어간 상황이다. 남준도 소식을 듣더니, 망연자실해서 정신을 차리질 못한다. 하지만 끝까지 남아 있는 건 다름아닌 정한. 그는 천천히 방을 훑었다.

뭐라도 남긴 게 있을 것이다.

솔직히 남겨진 게 없을 가능성이 훨씬 컸지만, 지금은 아마 있을 거 같은 느낌에 방을 뒤져보는 정한이다. 태형은 절대 쉽게 질 자가 아니었다.

그걸 정한은 잘 알았고, 자신을 바라보던 마지막 눈빛에서 느꼈다. 꼭 백현을 찾아달라는 그의 말.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고 있었다.

... 드르륵-

고민하다 또 열어본 곳은 침대 옆 협탁의 꼭대기 서랍이었다. 살살 연 그곳에는 물건이 그리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종이 몇 장에 볼펜 몇 개 정도?

그대로 닫으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기려던 정한은 갑자기 자신을 붙잡아오는 손길에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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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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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비 (23)

"정한아, 뭐해?"

은비였다. 차가운 손으로 제 손목을 잡아챈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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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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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비 (23)

"너, 오빠가 남긴 걸리는 말 같은 거 있어? 그래서 오빠 방 뒤지는 거야?"

정한은 고민했다. 이걸 이 누나한테 말해도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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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비 (23)

"진짜 그런 거면, 누나도 같이 하게 해줘."

근데 굳건하게 말해오는 은비다. 정한은 은비의 눈을 뚫어져라 보더니, 약간의 망설임 끝에 서랍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들어 짧은 말들을 적었다.

'위험할 수도 있어요. 그거 감수하신다면, 같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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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비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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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비 (23)

"당연하지. 고마워, 정한아. 정말 고마워... 진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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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14)

"..."

그 말에 그냥 씁슬하게 웃어보이는 정한이다. 물론 은비는 태형에 관련된 것들을 찾기 위해 자신과 함께하겠다 한 것이겠지만, 지금 정한에게는 기댈 누군가가 간절하게 필요했다.

'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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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비 (23)

"아니야... 아니야, 진짜 정말 고마워 정한아."

요즘들어 더 마른 거 같은 정한을 꼭 안아주는 은비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콰광-!!!

"총리님!!! 정녕!!! 정신을 놓으신 겁니까!!!"

강력한 항의의 목소리가 웅장한 회의실을 가득 울렸다. 이런 반응은 당연히 예상했다는 듯 미간을 살짝 구기며 무시하는 남준 뒤로, 당당하게 서 있는 석진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 막 태형의 소식을 공식적으로 전달한 참이었다. 역시 들고 일어나는 자들은 수두룩했고, 평소 태형에 반대했던 자들 역시 역모죄로 몰리지 않기 위해 올라가는 입꼬리를 겨우 내리며 분위기를 타고 있었다.

지금 뱀파이어들이 이렇게 역정을 내는 이유라면, 태형이 죽으면 속소무책으로 끊기는 순수혈통이겠지. 태형에게 후자가 있지 않은 이상, 순수혈통은 더 이상 나올 수 없다.

점점 더 고조되는 분위기는 석진이 소리를 내지르며 대충 정리되긴 했지만, 계속 간간히 중얼거리는 말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왕래 금지령을 모든 대신의 동의 없이 열었다는 얘기를 은근 꺼내며 미소를 짓는 승우도 석진과 남준의 신경을 잔뜩 건드리고 있었다.

김석진 (27) image

김석진 (27)

"자세한 사항은 확인중. 더 이상 이 얘기가 추하게 오르내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석진이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는 브리핑을 마치며 차가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제 순수혈통의 자리가 없다고 생각되니 왕이 되는 건 석진이거나, 새로운 세력인 승우의 세력이거나. 둘 중 하나가 유력했다.

김석진 (27) image

김석진 (27)

"... 그리고... 한 대신은 있다가 잠시 제 사무실ㄹ,"

쾅-!!!

순간,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엄청난 소리를 내며 열렸고, 그 뒤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에 다들 놀라 문 쪽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숨을 몰아쉬는 자는 백현이었다.

김남준 (27) image

김남준 (27)

"... 백... 현!"

변백현 image

변백현

"너, 이 씨발 새끼!!"

백현이 자신에게 달려오는 경호원들은 다 가볍게 떨궈내며 정확하게 승우의 자리로 돌진했다. 어느새 눈에서 반짝거리는 물이 보였다.

울고 있었다, 변백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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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 백현... 씨."

꽈악-

한승우 (27)

"커흡, 컥!"

순식간에 그의 멱살을 움켜진 백현이 결국 눈물을 쏟으며 소릴 질렀다. 그리고 그 말은 석진과 남준에게 번개 같은 소식이었지.

변백현 image

변백현

"김태형, 어디 있어, 이 개새끼야!!!"

한승우 (27)

"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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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말해!!! 너 아직 걔 안 죽였잖아, 이 악마 새끼야!!! 내가 이거 하나 예상 못할 것 같아?"

한승우 (27)

"놓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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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어디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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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살아 있어?"

순간, 백현이 행동을 멈추었다.

그리도 숨도 안 쉬고 뱉은 말, "응. 내가 알아."

회의실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