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가진 것의 가치

03 | 가진 것의 가치 - 증오하다.

Copyright 2020. 안생. All Rights Reserves.



※로맨스, 썸 일절 없는 휴먼 장르입니다.※
감안하고 봐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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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없어도 괜찮다.


공부를 못해도 괜찮다.


네가 가진 것엔 그 만한 가치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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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말 다했냐?"



때마침 수업을 마치는 종이 치고, 학생들은 10분밖에 안 되는 쉬는시간을 누리기 위해 제 책상에 엎드리거나 복도로 나갔다. 그 중에서도 서영은 석진의 말을 무시하고 나가려 했지만, 서영을 따라 일어난 석진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야."

"뭐."

"넌 네 성적 믿고 나대는 거냐?"



뭐? 지난 2년 간 전교 꼴등이라고, 9등급이라고 자신을 놀리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근데 지금, 꼴에 전교 1등이나 한다고 내 성적에, 내 성격 욕 하는 거야? 어이가 없어서 진짜.



"너 전교 꼴등이잖아, 9등급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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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뭐 믿고 뭔 자신감으로 네가 공부가 이렇네, 저렇네야."

"뭐 믿고 나대냐고, 고등학교에서 성적 말고 백 되는 게 있어?"



참 나, 수년이 지나고 생각이 바뀌었는데 아직까지도 '성적' 그 두 글자가 세상에서 제일 대단하다고 믿다니. 서영의 입장에선 석진의 말은 당연히 X논리에 불과했다.



"야, 웃겨.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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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못하면 쥐죽은 듯이 X치고 살아야 돼?"

"그러기엔 내 재능이 너무 아까운데,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



따지고 보면 서영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성적 하나만으로 사람의 인격을 가르는 시대는 갔지만, 여전히 하위권들에게 고등학교란 상위권을 위해 눈에 안 띄게 조용히 살아야 하는 곳이었다.



"원래 있던 재능도 썩히게 만드는 곳이 고등학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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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선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열심히 안 하면 1점 차이로 등급이 바뀌어, 그게 인생에 영향을 미쳐."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있던 재능 썩히고 죽어라 공부만 하는 거야, 알아?"



석진의 말은 고등학교의 암담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누구에게는 초등학교, 중학교보다 더 좋은 곳일 수 있어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렇지 않으니.

틀린 게 아니라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 것 뿐인데, 이곳에선 그 다름조차 틀림으로 인식하고 있다.



***



수업시간

6교시, 날씨도 따뜻하고 점심을 먹은 지 고작 한 시간 밖에 안 지났으니 교실이 있는 학생들이 반쯤 조는 채로 수업을 듣고 있었다. 석진은 이 시간에도 서영이 엎으려 자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볼펜을 쥔 서영의 손은 종이 위에 줄을 긋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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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만 옆으로 돌리는 건 부족하여 자세를 바꾸는 척 고개를 옆으로 슬쩍 틀고 보니, 종이의 적혀있는 건 연예 기획사들의 이름이었고, 서영은 그 이름 한가운데 빨간색 볼펜으로 줄을 그었다.

빨간색으로 글씨를 지우니 저건 당연히 탈락일 것이라 예상한 석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계를 보는 척 고개를 완전히 서영 쪽으로 돌리니 그녀의 얼굴빛이 많이 어두웠다.




***



하교 시간



"윤서영."



종례를 마치고 가방을 맨 뒤 교실 밖을 나서려던 서영이 석진의 부름에 의해 걸음을 멈췄다. 서영은 귀찮다는 듯 한숨을 쉬고는, 석진을 향해 뒤를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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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아까 보니까 탈락 엄청 했더라."



서영은 석진이 자신을 부른 이유가 절대 그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석진에게서 이 얘기를 들으니, 쪽팔림과 동시에 속상함이 밀려오는 서영이었다.



"야."

"네 재능 아깝다며, 있기는 해?"



순간 서영의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 재능이 어떤 건지도, 내가 내 재능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모르면서 내가 고작 공부 못한다는 이유로 나를 하대하다니.



"그럼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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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타고난 게 뇌밖에 없지, 공부 말고 잘하는 게 있어?"

"넌 재능 있어? 아니면, 뭐. 꿈이라든가."



사람이라면 꿈 하나 정도는 갖고 있지 않나? 그것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서영에 석진의 말문이 막혔다. 재능이 없었니까, 꿈이 없으니까 반박도 못하는 것에 울적함이 더해지는 석진이었다.



"야, 꿈도 없으면서 3년 잘 버텼다."

"자소서는 어떻게 쓰려고? 꿈도 없는 네 생기부는 안전해?"

"적어도 내가 너보단 자소서 잘쓸 거고, 생기부도 내가 너보다 볼 거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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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부가 부실한 너는 자소서를 쓸 수는 있어?"

"써도 그 대학이, 그 회사가 전교 꼴등에 9등급인 너를 받아 줄까?"



어느 한쪽도 지지 않으려는 팽팽한 기싸움이었다. 오로지 꿈 하나만 밀고 나가는 서영과 공부만으로 밀어붙이는 석진, 결국 교실에는 이 둘만 남게 되었다.

항상 떠 있지만 아침에는 보이지 않고 어두운 밤에만 반짝이는 별과, 아침에도 밝았지만 어두운 저녁이면 더 빛나는 별. 같지만 다른 별들이 자신이 진정한 별이라며 전쟁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꼭 세상 물정 모르는 것들이 아무것도 못하면서 기어오르려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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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 없으면 공부를 잘해야 최소한 밥벌이는 하고 살지,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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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누군가를 증오하는 것은 그들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증오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알지 못할 것이다.

- 찰스 칼렙 콜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