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끄러운 새소리에 잠에서 깼다. 눈을 비비며 주변을 둘러보니 밖은 온통 뿌연 안개로 가득했다. 멀리서 보는 풍경은 깨끗하고, 선명한 구름이 예쁘게 자리 잡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탁자 위에 있던 차를 따라 마셨다. 방금 일어나서인지 뒷머리는 부스스하고 눈도 반쯤 감긴 채 멍하니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있다가 문 너머로 낮은 음성의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세아야, 들어갈게"
누구인지 모르겠다.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는지 얼굴은 희미하여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 한 음 한 음 듣고 있으면 잠이 올 것 같은 살짝 그 잠긴 목소리는 아주 선명하게 들렸다. 그분은 다짜고짜 나를 안았고, 그 꿈속에 나는 아주 행복하게, 해맑게 웃고 있었다. 아주 편하다는 듯이 그분의 몸에 살포시 기대어 달달한 향기가 날 것 같은 그분에게 잘 잤냐며 아침인사를 했다.
"그럼 잘 잤지, 우리 오늘 잠깐 내려가서 시장이라도 갈까?"
그분의 얼굴은 희미해서 보이진 않지만 딸기 사탕을 먹은 듯한 웃음이 언뜻 보인 것 같다. 우리 둘은 짧은 키스를 했다. 그분은 살며시 내 손을 잡으며 가자고 했고 난 그분의 뒷모습을 보며 그분을 따라갔다.
그렇게 그 방을 나가자마자 난 꿈에서 깼다.
2
나는 그 꿈에서 깨서 바로 공책과 팬을 들고 이렇게 써 나갔다. 오늘은 오전 7시 00월 00일 날씨 맑음으로 메모를 했다. 항상 꿈에 나오는 내용들은 이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적어간다. 그리고 난 이 평생 꿈을 안 꾼 적이 없다. 항상 자면 꿈을 꾼다. 어제 꿨던 내용이 반복이 된 적도 있었고, 아예 다른 내용도 있었다. 문뜩 궁금했다. 항상 꿈에 나오는 저 남자는 누군지, 저 사람이 나한테 뭐였길래 항상 꿈에서 깨고 나면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행복해서 우는 건지 슬퍼서 우는 건지도 다 알고 싶다. 꿈의 내용은 항상 행복한 내용인데 왜 항상 난 꿈에서 깨고 나면 심장이 미어지듯이 서럽게 누군갈 원망하듯이 우는 건지 왜 항상 꿈을 꾸고 나서는 여운이 남듯 사무치게 우는지 모든 것을 알고 싶다. 무엇보다 그 남자의 정체가 궁금하다.
띠링-
-야 너 왜 안 오냐
-뭔 일 있는 거?
-30분 남음 ㅃㄹ 오셈;;
아, 회사 10시까지지..
내가 회사원이 된지는 1년 5개월 정도? 얼마 되지 않았다. 거기서 만난 고등학교 동창 박지민 고등학교 때는 그렇게 안 친했는데 회사에서 말 섞다 보니까 잘 통하는 거 그 이후로 엄청 친해졌다. 난 마저 쓰던 거 쓰고 대충 앞머리만 감고 옷 입고 나감 다 해서 10분 정도 걸렸나

"뭐냐 너 늦었는데 준비할 건 다 했네"
"뭐래 앞머리만 감았는데"
"아 씨 드러워"
"뭐? 드러워? 이게 죽을라고"
"어? 버스 왔다"
후다닥 버스에 올라가는 박지민을 보고 애 같아서 웃음이 살짝 났다. 뭐 박지민 귀여운 구석이 있다. 어리바리 까는 게 제일 귀엽다. 그래서 박지민 친구할 맛 나는 거지
"야 강세아 타라고!!"
"어? 어어 간다"
하지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언제부턴가 난 사람한테 내 마음 주는 게 어려웠고, 무엇보다 내 꿈 얘기는 나 밖에 모른다. 아무도한테도 말하고 싶지 않다. 말해봤자 뭐가 달라지나 싶기도 하고.. 그렇게 버스에서 박지민하고 투닥투닥 하다가 벌써 회사에 도착했다.
"박지민 씨, 좋은 아침이에요"
"아, 네"
"어제는 잘 들어갔어요? 술 많이 먹던데"
"아 괜찮습니다."
"나중에는 우리 둘이 먹어요 ㅎㅎ"
"...."
"어? 강세아씨도 있었네..
존재감이 없어서.. ㅎ"
우리 00부서 팀장 새끼 아침부터 시비 털고 말이야 이 팀장 새끼만 없으면 순탄하게 넘어가는 하루일 텐데.. 왜 난 저런 팀장을 만나서 옆에 있는 00부서의 김석진 팀장은 ㅅㅂ 외모도 훤칠하시고 성격도 좋으신데.. 왜 난 저런 머저리 같은 팀장 새끼를 만나서...
"하하.."
"강세아씨는 승진하기 싫나 보죠? 회식도 빠지고"
".. 죄송합니다."
"어우 아니에요. 제가 승진할 것도 아닌데ㅎ"
그러곤 박지민을 자기가 찜콩했다는 듯이 박지민의 어깨를 쓸고선 나를 째려보고 갔다. 저런 미친ㄴ을 다 봤나..
박지민도 저 팀장을 싫어하진 마찬가지다. 항상 제멋대로, 차별하고 암튼 꽃뱀 같다며 싫어한다. 무엇보다 자기 몸을 맘대로 만져 아주 혐오한다.
3
늘 그렇듯 퇴근하면 편의점에서 맥주 사서 집 가서 먹는 게 나의 철 직이라고 해야 되나 그렇게 안 하면 뭔가 찝찝한 그런 느낌 맥주는 나에게 상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하루 종일 일해서 수고했다 그런 의미..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고모와 삼촌이 날 키우셨다. 번갈아가면서 그래도 난 공부를 잘해서 대기업을 나왔고 이젠 고모와 삼촌께 키워주신 보답으로 월급이 나오면 꼬박꼬박 돈을 부쳤다. 사실 고모와 삼촌 두 분 다 나하고 사이가 좋진 않다.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키우기 싫어하셨으니까. 그래서 20살이 되고 바로 집을 나와 중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해서 모았던 돈과 엄마, 아빠가 나 크면 그거로 집 사라고 했던 돈을 모두 합쳐 서울로 상경했으며 괜찮은 집에서 살고 있다. 문득 엄마와 아빠가 생각난다. 아주 어렸을 때지만 나에게 모든 것을 다 내주셨다. 나 아니면 안 되는 분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가족이 없어서 그런 건지,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건지 '위로'라는 것을 받아본 적이 없다.
"하, 보고 싶다..."
그게 누구든지 보고 싶다 간절하게..
맥주를 마시며 창밖을 보고 있었다. 집이 산이랑 가까워 뒷베란다는 산의 뷰가 보이고, 앞 베란다는 크고 높은 빌딩들로 꽉 차있는 도시가 보인다. 8층이라서 그런지 밑에 다니는 사람들, 산책 나온 강아지와 집이 없어 방황하는 고양이까지도 다 보인다. 그렇게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면서 다 떨어진 맥주캔을 만지작거리면서 있었다. 저녁이라서 그런지 좀 쌀쌀했다.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저 아래에 5층 돼 보이는 집 지붕에 아주 작고 작은 고양이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아주 귀여웠다. 가볍게 손인사를 하고 방에 들어와 침대 옆 향초에 불을 킨 다음 잘 준비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