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는 대신 지켜드립니다

3화 - 남자친구입니다

“그래.”

 

 

날 죽이지도 말고 지키기까지 하라는 요구에 돌아온 건 쌈박한 대답이었다. 고민은 해본 건지,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울 만큼 빨랐다.

 

 

“……그래?”

 

 

이게 끝? 이렇게 간단하게? 의심스러운 눈으로 우진을 쳐다봤다.

 

 

“그 말은, 날 지키겠다는 거예요?”

“그래. 네가 건 조건이 그거 아닌가?”

“맞는데, 너무 쉽게 수락하니까…….”

“제안을 수락해줘도 불만이 많군.”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때 우진이 들고 있던 내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을 확인한 우진이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가족에게서 온 전화였다.

나는 잠시 자리를 피해 전화를 받았다.

 

아빠의 유산과 관련해 정리할 일이 있으니 별장으로 오라는 연락이었다. 이미 가족들도 전부 모여 있다고 했다. 통화를 마치고 돌아오자 우진도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아마 회장에게 비밀번호가 걸린 휴대전화를 찾았다고 보고한 거겠지. 우진을 지나쳐 거실로 돌아왔다. 곳곳에 쓰러져 있는 남자들과 깨진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이 집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겠어.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 마침, 가족들이 모두 별장에 모일테니 나에겐 더할나위 없이 좋은 기회이자 변명거리가 생겼다.

 

 

“갈 데 있어요.”

“갈 데?”

“별장에 가봐야해요.”

“…….”

“가족이 전부 모였대요.”

 

 

우진은 더 묻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눈으로 날 내려다 볼 뿐이었다.

 

밖에 주차되어있는 검은 재규어. 암살자가 이런 요란한 차를 타고 다니다니. 아니, 대놓고 죽이니까 암살자도 아닌건가. 아무튼 고급진 우진의 차에 올라타자, 곧장 별장으로 향했다. 스무스한 엔진음에 끔뻑 잠이 들 뻔 했지만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정신차려. 내 옆에 있는 건 살인마라고.

 

차 안에서는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나는 가방 안에 넣어둔 2G 휴대전화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그대로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지퍼를 닫았다. 어쩐지 폰을 손에 쥘 때마다, 아빠와 손을 잡는 느낌이 들었다. 꾸욱 얼굴에 힘을 줘 눈물을 삼켰다.

 

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문 뒤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실에 모여 있던 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향했다.

 

 

“여주, 고생했다.”

“네.”

 

 

고모가 안쓰러운 얼굴을 하곤 나를 안아줬다. 괜히 눈물이 핑 돌아 포옹을 짧게 끝냈다. 잠시 등을 토닥이는 포근함에 이대로 지쳐 잠들고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대답을 하곤 안으로 들어가자, 내 뒤를 따라 우진이 들어온다. 그를 발견한 가족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뒤에 있는 사람은 누구야?”

 

 

소파에 앉아있던 고모부가 물었다. 다들 의심 반, 기대 반의 시선으로 나와 우진을 번갈아 쳐다본다. 나는 입을 열었지만,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뭐라고 말할 지 생각하는 걸 깜빡했어.

나를 죽이러 왔다가 협상 끝에 경호를 맡게 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경호원이라고 대답하면 왜 갑자기 경호원이 필요해졌는지부터 설명해야 했다. 그 짧은 사이 우진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차갑게 굳어 있던 얼굴에는 어느새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남자친구입니다.”

 

 

눈이 커지고, 고개가 홱 돌아갔다. 우진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가족들을 향해 웃고 있었다.

 

 

“남자친구?”

“네.”

 

 

처음 듣는 소리인데도 대답은 태연했다. 가족들은 의아한 얼굴로 나와 우진을 번갈아 봤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가족의 상일지라도, 조카의 풋풋한 연애는 또 그들에게 재밌는 소재거리가 된다. 얼굴을 푼 어른들이 그래, 그래. 들어와 앉아. 위로는 잘 해줬고? 편히 있다 가. 등의 말을 해주었다.

 

우리는 나란히 거실 소파에 앉았다. 가족들은 잠시 자리를 비워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손사래를 쳐도, 다른 가족들은 잠시 거실을 비워주었다. 그래도 몇 걸음 안 가면 있는 부엌이나 응접실 쪽에 있었겠지만. 시야에서 가족이 사라지자, 나는 우진 쪽으로 몸을 확 기울였다.

 

 

“아니, 미쳤어요?! 왜 그런 거짓말을 해요?”

 

 

우진은 앞만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입술도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복화술하듯 말했다.

 

 

“말 놓지.”

“내가 왜요?”

“보통 다정한 연인끼리는 존댓말 안 하잖아. 의심받고 싶은거면 상관 없지만.”

 

 

기가 막혀 우진을 쳐다봤다. 우진의 시선은 여전히 부엌과 응접실로 통하는 복도 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여기선 들릴거야. 우리 대화.”

“……누가 다정한 연인이래.”

“그래. 그게 낫네.”

 

 

이를 악물고 목소리를 더 낮췄다. 우진은 나의 반말에 만족한듯 나를 내려다본다. 이러니까 꼭 또래같잖아. 살기가 보이지 않는 모습이라 그런지 어색했다.

 

 

“아무튼, 왜 그런 거짓말을 해. 들키면 어쩌려고.”

“네가 대답을 빨리 못하니까 그렇지.”

“그렇다고 남자친구라고 해?”

“경호원이라고 하면, 설명할 순 있고?”

 

 

할 말이 막혔다. 우진이 웃는 얼굴 그대로 덧붙였다.

 

 

“웃어.”

“뭐?”

“보고 있어.”

 

 

어디서 보고있다는거야? 주위를 살펴도 딱히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얘는 그걸 어디서 느낀거고? 역시 살인마는 다르다 이건가.

나는 우진쪽으로 몸을 욱여넣고, 고개를 푹 숙였다. 날 위로해주고있는 것처럼 보이면 됐지.

 

 

“진짜 짜증 나.”

 

 

우진은 내 머리를 몇 차례 쓰다듬어줬다. 방금 전 사람을 죽인 손길인데, 이리도 따뜻할 수가 없었다. 노곤함에 점점 눈이 풀릴 때, 가족들이 거실로 돌아왔다.

 

 

“곧 삼촌도 올 테니 슬슬 시작하자.”

 

 

테이블 위에는 아빠의 이름이 적힌 서류봉투가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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