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sakah cinta disembuhkan?

47| Pemulihan kehidupan sehari-h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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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ㅣ일상 회복








서아는 상태가 많이 호전된 후 재활 치료에 들어갔고, 나는 우울증을 극복 중이었다. 서아가 있는 병원, 그리고 내가 있는 병원까지 모든 병원에는 아직도 못 깨어난 환자들이 많았다. 의사로서 환자들의 아픔을 치료해줄 수는 있지만, 보호자들의 마음까지는 치료해줄 수 없었으며 그리 공감하기도 힘들었다. 매정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의사는 환자의 죽음에 슬퍼해서는 안 되고, 같은 감정을 느껴서도 안 된다. 그게 의사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내가 보호자의 시점으로 경험해보니 의사와는 많이 달랐다. 다른 누군가가 보면 사랑에만 목 매다는 미련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편협하다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 모든 게 맞았다. 하지만 누구라도 사랑해 마지않는 누군가가 위험에 처한다면 그럴 것이다. 직접 느껴보지 않으면 공감할 수 없다. 절망의 심연에 빠져 혼이 나가있는 나를 보며 같은 의사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서아는 가망 없으니 잊으라는 말까지 들어봤다.

그 말을 듣고도 나는 분노하지 않았다. 그저 애석한 마음만 들 뿐이었다. 평소 청렴하다는 말을 듣던 나도, 사랑 앞에서는 완전히 무너졌다. 사랑에 짓이기는 나를 욕해도 좋았다. 서아가 살기만 한다면, 나를 보며 해사한 웃음만 지어준다면.

이제서야 우리는 일상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서아는 다시 의사로서 환자들을 살려주기 위해 재활 치료를 하며, 나 또한 의사로서 도리를 충분히 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아무도 우리를 욕할 자격은 되지 않았다. 같은 병원에서 일하면서 나에게 모진 말을 하던 의사들도 서아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접하자 나에게 축하의 말을 던져주었다.

나는 오히려 그런 모습에서 분노했다. 이게 인간의 이중성이었다. 내가 가장 불행하고 절망의 심연에 빠져있을 때는 나를 더 절벽으로 밀던 그들이, 내게 희망이 생기니 절벽에서 구해준 셈이었다. 서아는 그저 사고였다고 치지만, 아이를 다치게 한 범인은 사고에 불구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서아가 당한 2차 사고는 범인이랄 게 없었다. 그렇기에 보상을 받을 수도 없었다. 그 점이 참으로도 통탄스러웠다. 서아가 괜찮다며 환한 웃음을 보여주었지만, 그 웃음에는 슬픔이 묻어있었다.

“내가 잘못한 거예요, 애매하게 서있었으니까.”

“아이만 괜찮으면 됐어요. 그리고 이렇게 살아 있잖아요. 교수 님 얼굴을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저는, 뭐든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