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 빙의글] 세 번째 결말

7화. 한 번만 더

눈을 뜨자마자 달력부터 봤다.

어제 확인한 그대로, 빨간 동그라미가 오늘 날짜 위에 있었다.

 

손목의 시계를 채웠다.

유리에 간 금을 손끝으로 한 번 쓸어 보고 나서야 집을 나섰다.

 

출근길 내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도, 신호등도, 지나가는 버스도 전부 평소와 똑같았다. 그게 오히려 더 불안했다.

 

사무소에 들어서자 소장님이 서류 뭉치를 들고 분주하게 오갔다.

정산 담당자들이 오전부터 들이닥쳐 장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2억 4천, 여기 비는 거 확인되시죠?"

 

낯선 남자가 소장님한테 서류를 들이밀며 묻는 소리가 들렸다. 소장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 그게 분명 맞춰 놨었는데……."

 

1회차에선 듣지 못했던 장면이었다. 이번엔 구멍이 나보다 먼저, 남들 눈에 띄어 버린 거였다.

 

 

 

*

 

 

 

점심시간이 지나고, 운학이 찾아왔다. 늘 보이던 능글맞은 웃음이 없었다.

 

"…저기,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빈 회의실로 데려간 운학이 한참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저 오늘 아침에 잘렸어요. 갑자기요."

"…왜요?"

"모르겠어요. 그냥 위에서 오늘부로 정리하라고. 근데 그만두기 전에, 이거는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운학이 목소리를 낮췄다.

 

"오늘 정산 끝나면, 이 라인 자체를 없앤대요. 계좌도, 서류도, 사람도. 그러니까 오늘 중으로 뭔가 하실 거면, 더 조심하셔야 해요."

"…사람도, 라니요."

 

운학이 대답 대신 시선을 피했다. 그게 대답이었다.

 

"…동민 씨도 알아요, 이거?"

"형한테는 말 못 했어요. 말하면 형이 먼저 뛰어들 거 뻔하니까. 그냥, 그쪽이라도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마지막까지 능글맞게 웃던 얼굴이 그제야 제 나이대로 보였다.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제대로 못 하고 회의실을 나섰다.

 

 

 

*

 

 

 

퇴근 시간, 사무소 앞에 동민이 서 있지 않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휴대폰을 꺼내려는데, 골목 어귀에 낯선 차 한 대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익숙한 그림이었다.

 

그날 밤, 그 승합차.

 

다리에 힘이 풀렸다.

뒤돌아 뛰려는 순간, 누군가 팔을 확 잡아챘다.

 

"…저예요."

 

숨을 헉헉 내쉬는 동민은 차 문을 열며 다급하게 말했다.

 

"…운학이한테 연락받았어요. 빨리, 타요."

 

몸이 그대로 굳었다.

 

"…안 타요. 저 차, 안 타요."

"지금 그럴 때가 아니에요. 저 차가 쫓아오고 있다니까요."

"그래도 안 타요. 절대로 안 타요."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왜 이렇게까지 거부하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차 안에서 죽었다는 말을, 이 사람한테는 죽어도 할 수 없었다.

 

동민이 당황한 얼굴로 나를 보다가, 더 다그치지 않고 차 문을 도로 닫았다.

 

"…알겠어요. 그럼 걸어서 큰길까지만 가요. 거기서 사람 많은 데로 들어가면 돼요."

 

동민이 내 손을 꽉 잡고 걷기 시작했다. 몇 걸음 가다 말고 슬쩍 나를 돌아봤다.

 

"…근데 왜 그렇게까지 차를 안 타려고 해요. 무슨 일 있었어요?"

"…그냥요. 그냥 타기 싫어요."

 

말이 안 되는 대답이었다.

동민도 그걸 아는 눈치였지만, 더 캐묻지 않고 잡은 손에 힘만 더 줬다.

 

"…알겠어요. 대신 손은 놓지 마세요."

 

그 말에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 와중에도 이 사람은 이렇게 다정했다.

뒤에서 그 차가 천천히 따라붙는 엔진 소리가 들렸지만, 돌아볼 틈이 없었다.

 

 

 

*

 

 

 

큰길 어귀,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숨을 고르던 순간이었다.

옆 골목에서 검은 세단 한 대가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그대로 튀어나왔다.

 

"…어?"

 

 

그 말이 끝이었다.

 

 

번쩍, 하고 시야가 하얘졌다.

몸이 붕 뜨는 감각과 함께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아스팔트에 부딪힌 손목에서 시계 유리가 쩍, 하고 다시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미 가 있던 그 금 위로, 똑같은 자리에.

 

멀리서, 혹은 아주 가까이에서 동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정신 차려."

 

눈앞이 흐릿했다. 동민의 얼굴이 가까스로 보였다. 그의 머리에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싫어, 싫어……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도 몰랐다. 신한테인지, 이 세계한테인지, 아니면 그냥 동민한테인지.

 

동민이 멍한 눈으로 나를 보다가, 힘없이 웃었다.

 

"…나, 분명 어디선가…… 이거, 전에도……."

 

끝까지 그 말을 맺지 못했다. 눈이 서서히 감겼다.

 

그다음은,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스토리 전개가....ㅎㅎㅎ

당황하셨나용...??

제목이 또 스포라서.....ㅎㅎㅎ

아직 완결까지 좀 남았으니 계속 재밋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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