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ahabatan Pita

연준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자취집 베란다 밖에서는 데모가 한창이었다. 경찰들은 최루탄을 쏴대고 사람들은 최루탄 연기에 울면서 시위를 벌였다. 시끄럽다. 연준은 선풍기 앞에 앉았다. 5월 중순인데도 베란다 밖의 열기 때문인지 더위가 연준의 작은 집을 후끈하게 채웠다. 자그마한 선풍기가 털털거리며 돌아갔다. 선풍기 옆에서는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


텅 빈 냉장고를 마주한 연준은 짧게 소리를 내었다. 그에게는 최루탄이 난무하는 광주의 거리로 나갈 깡이 없었다. 나가다가 괜히 군인들과 마주쳐서 좋을 것은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아버지가 당신의 아들이 광주에 있다는 것을 알아선 안되었다.

그놈의 아버지란 작자. 이미 남남이나 다름없는데도 그 사람은 연준의 대학 등록금을 볼모로 삼아 사사건건 그를 위협했다. 연준의 어머니는 아등바등 간신히 생활했다. 연준은 가끔 그녀에게 키울 능력도 없으면서 자식은 왜 낳은거냐고 소리쳐 묻고 싶었다. 시위대의 소리가 점점 멎어들었다. 이렇게 또 조용해지나보다.





연준은 근처 슈퍼에 들러 생라면 몇봉지와 믹스커피 다발을 샀다. 가난한 대학생에게 밥은 사치였고 고기는 꿈에서나 몇번 맛볼 수 있는 것이었다. 연준은 아직 매캐한 최루탄 가스가 남아있는 거리를 하릴없이 눈으로 쓸었다. 가스 때문에 눈이 따끔거렸다.


“거기 청년, 오늘도 왔어?”


슈퍼 주인인 장 할머니가 쭈글쭈글한 손을 비볐다. 연준은 장 할머니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였다. 가게 앞에 펼쳐둔 파라솔 아래 오늘치 일용할 양식을 라면스프맛으로 씹고 있던 연준은 고개를 돌렸다.


“네, 이것만 먹고 가려고요.”
“광주가 아주 난리야, 그치?”


연준이라고 이 사태에 전혀 일말의 분노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의 한계를 너무 잘 알고 있는 탓이다. 누가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 하였는가. ‘나’도 알고 ‘적’도 아는 연준은 그렇기에 백전백승은 커녕 한번 덤벼들 용기도 갖추지 못했다.

부질없는 짓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저가 혐오스러우면서도 연준은 그렇게 간단하게 광주 사람들의 열기를 요약했다. 주제넘은 짓이고 염치없는 짓이었으나 오히려 그게 편했다. 연준은 저를 둘러싼 환경을 회피하고 데모를 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생각했다. 위선자가 될 바에는 그냥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방관자가 나았다.


“청년은 데모 안해?”


장 할머니가 뒷짐을 지고 와 말했다.


“안 해요.”
“세상이 말세여……세상의 어떤 군인이 제 나라 국민을 개 패듯이 패냐고.”
“……”


딱히 대답할 말은 없었다. 연준은 생라면을 몇번 더 씹다가 일어섰다. 색이 바랜 청바지 뒷주머니에 꽂아넣은 카세트테이프만 눈치없이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





“너 정신이 있니?”


수화기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준은 벌써부터 아파오는 머리에 눈을 꽉 감았다.


“지금 광주라고? 너 미쳤어?”
“……”
“광주 봉쇄된거, 너 몰라?!”
“네?”


광주가 봉쇄되었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연준은 답답함에 자기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어머니가 날선 목소리로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러게 멀쩡히 다니던 대학을 왜 휴학하고 도망친거냐, 그걸 니 아버지가 알게 되는 것도 시간 문제라며 어머니는 한동안 꽤 많은 말들을 했다.

그녀의 어조를 보아 화가 머리끝까지 났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연준은 한귀로 흘렸다. 그녀의 뻔한 레퍼토리는 연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상황 정리되면 다시 서울 올라갈게요. 아버지한테 말하지 마세요.”


뉴스에서는 광주 이야기가 일절 언급되지 않았다. 한 도시의 모든 것이 갇혔는데 광주 밖 사람들은 이를 알 수 없었다. 답답함에 고물 텔레비전을 부술듯이 때리며 채널을 몇번 더 돌리자 마침 광주 이야기가 나왔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께서는 광주의 빨갱이들의 폭동으로부터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을 철저히 지킬 것으로…”


빨갱이.
광주의 사람들은 이제 모두 빨갱이가 되어 있었다. 마음대로 때려도 되고, 마음대로 죽여도 되고, 마음대로 고문할 수 있는 그런 인간의 부류가 된 것이다. 앞으로 먹을 것은 오늘처럼 쉽게 주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연준이 문득 라면 봉지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귀중한 양식은 부스러기 몇개만 남아 있었다. 아직 라면 다섯개가 남았지만 잠잠해질때까지 버티기에는 누가 봐도 부족한 양이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더 사오는건데.”


연준은 텔레비전을 다시 때려 껐다. 텔레비전이 지직거리며 꺼졌다. 얻어맞은 것이 마치 자신인양 연준은 온몸에 힘이 탁 풀렸다.


“그까짓 민주주의가 뭐라고……”


대의를 생각하기에 그의 현실은 너무 각박했다. 연준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라면 봉지를 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