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108화. 동거 규칙

sophie97
2026.08.08Dilihat 28
나는 내가 적은 동거 위시 리스트를
훈지 씨에게 건넸다.
[1. 집안일은 나눠서 하기
ex. 훈지: 청소, 요리(브런치)
정아: 설거지, 요리(저녁)
2. 상대가 해준 음식에 대해 불평하지 않기
3. 빨래는 각자 알아서 하기
4. 샤워 후 욕실 정리하고 나오기
5. 타올은 각자의 것을 사용하기
6. 욕실 청소는 매주 주말 번갈아 하기
7. 변기 사용 후 커버 내리기
8. 각자의 방청소는 알아서 하기
9.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놓기
10. 상대방의 물건을 허락없이 사용하지 않기
11. 각자의 방에 있을 때는
혼자 있는 시간을 존중해 주기
12. 각자 자유롭게 여행하기
13. 늦게 들어오거나 외박할 때는 미리 알려주기
14. 월세와 공용생활비는 반반씩 부담하기
15. 동거 사실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기 ]
훈지 씨는 내 리스트를 읽어 내려가면서,
눈이 점점 커지더니
나중에는 입까지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감옥 생활이에요?
무슨 규칙이 이렇게 깨알같이 많아요?"
"이거 많은 거 아닌데...
아주 최소한으로 추리고 추린 거에요. 내가..."
훈지 씨는 다시 종이를 내려다봤다.
"이게 최소한이라고요?
"응."
"정아씨..."
"왜요?"
"정말 같이 살고 싶은 거 맞는 거죠?"
"맞아요."
"근데 나 이상한 거 발견했어요.
그래, 뭐 딴 것들은 생활하면서 지키는 규칙들이니까
그렇다 치는데 12번, 이거 뭐에요?"
"12번이면... 각자 자유롭게 여행하기
이거 말하는 거에요?"
"네. 같이 살면서 여행을 왜 혼자 해요?"
"같이 살더라도
여행까지 꼭 같이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혼자서 여행하고 싶을 때 있잖아요."
훈지 씨가 서운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혼자서 여행하고 싶지 않은데...
같이 하고 싶은데."
"같이 가기도 하고,
혼자 가고 싶을 때는 굳이 함께 가자고
조르지는 말자... 뭐 그런 거죠!"
"이건 너무...
연인끼리의 동거가 아니고
뭐랄까...살벌한 느낌이랄까."
"훈지 씨는 대체 뭘 상상한 거에요?
매일 아침 일어나 달콤하게 뽀뽀하고...
뭐 그런거 꿈 꾼 거에요?"
그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 맞아요."
"응? 맞다구요?"
"그게 내가 꿈꾼 거라구요."
"아... 훈지 아가씨는 그런 걸 꿈꿨구나.
그런데 아가씨... 어쩌죠?
동거는 현실이에요."
나는 잠시 그의 실망스러운 표정을 보다가
말을 이었다.
"싸워서 기분이 나빠도 한 공간에 있어야 하고,
상대 때문에 짜증이 나도
참고 조심해야 하는 거라고요."
"그럼...
정아씨는 이런 것도 감수하고
나랑 살고 싶은 거에요?"
나는 대답 대신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나를 안아 주었다.
나는 그의 등을 토닥이면서 말했다.
"훈지 아가씨... 우리 앞으로 잘 지내봐요."
"네... 그런데 정아 씨가 방에 있을 때는...
나 들어가면 안 되는 거에요?"
"아니요.
내가 방해받고 싶지 않을 때는
문을 닫아 놓을게요."
"그럼 문이 열려 있으면 들어가도 돼요?"
".... 그건 왜 물어봐요?"
"중요하니까요."
"대신 문 닫혀 있을 때는 들어오면 안 돼요."
"아... 진짜... 너무 차가워."
"그런데 생활비까지 그렇게 정확하게
반반 나눠야 돼요?"
"그럼요. 함께 사는 건데 당연하죠."
"내가 남자니까 내가 다 내도 돼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에요?"
"왜요?"
"우리가 결혼한 것도 아닌데...
함께 살기로 했으면
생활비도 함께 내는 게 맞아요."
"아... 차가워...
이러다 얼어 죽겠어요."
"훈지 씨. 더울 땐 옷을 벗어도 덥지만
추우면 옷을 더 입으면 되잖아요.
안 그래요?"
"그래도 그렇게 얘기해 준 마음은 고맙게 받을게요.
하지만... 나 집 팔아 왔잖아요. ㅎ"
"아... 눈물나..."
"나... 잠깐 파리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109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