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18화. 자존심



메모를 읽고 나서야 그의 진심이 조금은 이해됐다.

다른 사람들도 다 가는 곳이 아니라,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곳을 함께 가고 싶어한다는 것.





하지만, 이미 화를 낸 상태여서

금새 나가서 말을 걸기가 뻘쭘했다.





언제 나가야 하나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하나

괜히 그의 눈치를 보며 서성이고 있었다.





밖에서 그가 뭘 하는지 소리를 들으려고

문에 바짝 귀를 대고 있었다.





[똑.똑.똑]





"아! 깜짝이야!"

나는 화들짝 놀라서 문에서 떨어졌다.





'내가 하는 소리 들었을거야.

 아... 창피하게 진짜...'





"들어가도 돼요?"

 



훈지 씨가 물었다.





"왜요?"






나는 선뜻 들어오라고 말하기가

자존심이 상했다.






"아니... 그거 읽었나 해서요..."





"뭐요?"





"내가... 아까 문 밑으로 넣었는데...

 못 봤어요?"






"뭐? 테루엘 연인 이야기요?"






"읽었네! 그런데 왜 안 나와요?"






"..."






"나 들어갈게요."






"...."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무방비 상태로 문 앞에 서 있었다.






"아~ 언제 나가야 되나 눈치 보고 있었구나?"





"아니거든요. 막 나가려고 했거든요."





"ㅎ 테루엘의 연인 이야기 들으니까

 궁금하죠? 어떤 곳인지?"






"뭐... 조금..."






"내가 사진 보여 줄까요?

 사진 보면 확 넘어올 거 같은데"





"그럼 보여줘봐요. 어디..."






나는 훈지 씨가 보여준 테루엘의 사진을 보며,

바르셀로나나 이곳 프리힐리아나와는

전혀 다른 매력에 푹 빠졌다.





"와... 여긴 그냥 중세 시대 같아요.

 너무 멋지다. 어떻게 이렇게 보존을 잘했죠?"





"멋지죠?"





"엄청!"





"가고 싶죠?"





"네! 아니... 괜찮아 보인다는 얘기에요..."





"거봐요... 내가 뭐랬어요?

 가보고 싶어할 거라고 말했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고집을 부려요?"






"훈지 씨한테 고집 부린다는 소리 들으니까
 
 몹시 기분이 나쁘기는 한데...

 나도 훈지 씨가 멋진 건축물을 봤으면 해서

 어제 밤늦게까지 검색해 봤단 말이에요."






"아... 그래서 그렇게 발끈했구나.

 알았어요. 우리 바르셀로나도 가 보면 되죠.

 정아 씨가 그렇게 보여주고 싶다니까

 나도 꼭 보고 싶어요."






나는 그제야 마음이 좀 풀렸다.

생각해 보면 별 것 아닌 일인데...




훈지 씨가 마지막 말을 하기 전까지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누가 들으면...

 그 건축물들 정아 씨가 지은 줄 알겠어요.ㅎ"





"아니!! 진짜...

 좀 전까지 감동이었는데...정말..."





"어? 정말? 감동까지 받았어요?

 내가 이렇다니까~"





'어우... 얄미워...'





나는 랩탑을 챙겨서 카페로 갈 준비를 했다.





"오늘은 나도 따라 가면 안 돼요?"





"카페를요? 나 일하려고 가는 건데...

 일하는 시간에는 방해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나 그냥 옆에서 얌전히 책 읽고 있으면 되잖아요.

 조용히 있을게요."





'옆에 있는 게 방해인데...'


"훈지 씨는 다른 카페로 가서 책 읽으면 되잖아요."





"아니.. 뭐하러 일부러 다른 카페를 가요?

 진짜 말 섭섭하게 한다..."





"사실...

 우리 일하는 시간 빼고는

 거의 24시간을 붙어 있잖아요.

 혼자 만의 시간이 필요해요.

 혼자 생각하고, 정리하고 그런 시간이 좀 필요해요."





훈지 씨는 꽤 놀란 표정이었다.





"나랑 24시간 붙어 있는 게

 지금 답답하고 싫다는 말이에요?

 나는 정아 씨랑 있으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아니 싫다는 게 아니라...

 조금은 답답하기도 하다는 말이죠.

 나는 항상 혼자 있던 사람인데

 누구와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있는 게 처음이에요."





 "그게 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답답하고 싫을 수가 있어요?"





"싫다는 게 아니라니까요.

 좀 답답하다구요.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고...

 늘 누군가와 함께 있으니까

 조금은 긴장하고 있게 돼요.

 혼자 편하게 있을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방문 닫고 있으면 나 안 들어가잖아요."





"그래도 당신이 문 밖에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마냥 편하지만은 않아요."





"... 나 지금 너무 충격인데...

 따라오지 마요."





그는 바로 뒤를 돌아 밖으로 나가 버렸다.





"아니...

 자기가 화날 때 나가지 말자고 해 놓고는..."





나는 그가 그저 귀여운 푸념을 한다고 생각했다.

랩탑을 들고 카페로 향했다.





"나를 정말로 사랑하는 게 맞긴 해요?"

 <119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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