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88화. 애원

sophie97
2026.07.30Dilihat 30
내가 운전을 하는 동안,
오늘은 여느 때와 달리
그가 쉼 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촬영 중 생긴 일들,
다른 배우들의 연애사들,
다음 작품 이야기까지...
그동안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들려주려는 사람처럼,
그는 쉬지 않고 말했다.
평소 같지 않았다.
어느 순간,
잠깐 말을 멈추더니 내게 물었다.
"비행기 예약은 했어요?"
"네..."
"언제 떠나요?"
"내일 밤 비행기에요."
"파리로 바로 가요?"
"네, 바로 파리로 가요."
"그 사람 부모님은 왜 만나는 거에요?"
"훈지씨...
우리... 그 얘기는 하지 말아요."
"정말 그 사람이랑 결혼이라도 할 거에요?"
"그런 건 아니에요.
그 사람 부모님이 날 보고 싶어 하신대요.
한국에서 오신다는데,
인사는 드리는 게 예의잖아요.
그리고...줄리도 그걸 바라니까요."
"그 사람을 언제 만난 거에요?
혹시...나랑 파리에서 만났을 때? 그 때에요?"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맞아요.
파리에서 하루 일찍 떠났던 그날,
기차역에서 만났어요.
그러다 두 번째 도시를 우연히 같이 여행하게 됐어요."
"그리고 그 사람이 사귀자고 했고,
당신은 오케이 한 거에요?"
"...맞아요.
그 사람이 훈지씨를 잊도록...
그렇게 될 수 있게...도와주겠다고...했어요."
"그거 뻔한 수작이잖아요.
정말 그걸 몰라요?"
"아니에요. 훈지씨.
줄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지금 내 앞에서 그 사람 편드는 거에요?"
"아니..그게 아니라...
훈지씨가 그 사람을 너무 오해하고 있잖아요."
"잠깐 차 좀 세워봐요."
"조금만 더 가면 한가한 곳이 나와요.
훈지씨...
우리 이 얘기, 이제 그만하면 안 될까요?"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좀 전까지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가던 그가...
마치 다른 사람처럼 차갑게 창 밖만 보고 있었다.
10여 분 정도를 더 가서
어느 한적한 호숫가에 차를 세웠다.
한참을 말없이 창 밖만 내다 보던 그가
천천히 입을 뗐다.
"내일 당신이 떠나면...
우리는 이제...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한국에는... 언제 다시 들어올 거에요?"
"아직...잘 모르겠어요."
'당신만 보면
아직도 이렇게 흔들리는 나를... 믿을 수가 없어요.'
차마 이 말은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창 밖을 보던 그가 천천히 내 쪽을 바라봤다.
"한 가지만 약속해 줘요.
그 사람과 결혼하지 않겠다고..."
"...."
"약속 안 할 거에요?"
"모르겠어요."
"그 사람 사랑하지도 않는데...
왜 모르겠다는 거에요?"
"그만 해요. 이 얘기...훈지씨.
우리 이제 하루밖에 안 남았잖아요.
마지막은...즐거운 이야기만 하다가 헤어져요."
어느 새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언제까지라도 기다릴 수 있는데...
당신이 내가 기다려도 어쩔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으면 어떡해요.
그럼 아무 소용 없잖아요."
그의 마지막 말이 끝나자,
참아 오던 눈물이 조용히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말없이 그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만약에 그렇게 되어 있다면...
우리는 운명이 아닌 거에요.
그 때는 훈지 씨에게 더 어울리는 사람 만나면 되죠.
그런데...진심으로 축하까지는 못 해 줄 것 같아요.
나도 훈지 씨 닮아서 질투의 화신이잖아요."
나는 눈물을 삼키며 웃었다.
그와 보낸 3일은
마치 3시간처럼 너무 빨리 흘러가 버렸다.
다음 날 저녁,
훈지 씨는 나를 공항까지 데려다 주었고,
나는 차에서 내리기 전
마지막으로 그를 안아 주었다.
그의 온기와 살냄새...
오래도록 잊고 싶지 않았다.
"당신의 전 남자친구...
혹시 박훈지라는 배우에요?" <89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