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시즌2)
87화. 처음과 마지막

sophie97
2026.10.09Dilihat 56
카페로 나와 오픈 준비를 마쳤다.
오전에 엄마가 하신 말씀 때문인지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편했다.
'부모님께 소개하지 못하는 연애라...
내가 지금 그런 연애를 하고
있는 걸까...?'
지성 씨가 출근하고 나서,
원희 오빠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점심은 나랑 먹자~
알바 혼자 할 수 있지?]
"왜 갑자기 점심을 먹자고 하지?"
"지성 씨. 미안한데...
갑자기 점심 약속이 생겨서요.
잠깐 나갔다 와야 할 것 같아요."
"네. 그렇게 하세요. 사장님.
저 혼자서도 괜찮아요.
점심 때는 주로 테이크 아웃을 하니까
설거지거리도 많지 않고요.
신경 쓰시지 마시고 다녀오세요."
"고마워요. 지성 씨.
빨리 돌아올께요."
12시가 되기 전,
현관문 밖에서 원희 오빠가 보였다.
나는 가방을 들고 카페 문을 나섰다.
"갑자기 웬 점심이야?"
"근처에 새로 생긴 초밥집이 있는데,
지난 주에 가보니까 맛이 괜찮더라고.
너 한 번 사주려고..."
"오빠, 배려 넘치는 건 여전하다~
나야 좋지!! 가자!!"
우리는 예약해 둔 룸으로 안내를 받았다.
"미리 예약까지 했었어?
내가 안 된다고 하면 어쩌려고?"
"점심 때 항상 카페에 있는 거 아는데 뭘..."
"뭐... 그렇긴 하지...
그런데 오빠 예전보다 저돌적으로 변했는데?"
나는 예상치 못한 오빠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다.
"미리 주문한 걸로 갖다 주세요."
"주문도 미리 했어?
나한테 묻지도 않고?
예전엔 일일이 물어보더니만..."
"나도 이제 나이 먹었는데...하하
그래야 네 시간을 아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너 연어초밥 좋아했잖아.
혹시 입맛이 바뀌었어?
메뉴 바꾸고 싶으면 그렇게 해."
"아니야... 여전히 좋아해."
20대 때의 오빠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오빠를 빤히 쳐다봤다.
"왜?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
너 이해 안 되는 거 있으면
그렇게 빤히 보곤 했잖아."
"오빠는 별걸 다 기억한다."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이 얼만데...
그리고 나도 네가 첫 여자친구였잖아."
"아... 맞다!! 그랬구나...참..."
우리는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문득,
원희 오빠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정아야..."
"응?"
원희 오빠는 조금 망설이다가 물었다.
"너는 지금...
박훈지 씨랑 어디까지 보고 만나는 거야?"
"어디까지라니?
미래 계획이 뭐냐는 거야?"
"뭐... 그렇지."
"미래 계획.... 그런 건 없는데?
그냥 보고 있으면 좋고,
만나고 싶으니까 연애하는 건데..."
"결혼 계획이라든가,
그런 건 없어?"
나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결혼은... 글쎄..."
원희 오빠는 물잔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결혼까지 생각하려면
너무 멀고 힘들게 느껴지는 거 아니야?
그래서 망설이는 거 아니고?"
"그럴 수도..."
"지금 네 나이에 그냥 좋아서 만난다..."
오빠는 작은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너는 계산하지 않아서 좋아."
"뭐야 그거?
칭찬처럼 들리지만,
숨은 뜻은 철이 없다 뭐 그런거 같은데?"
"그게 양면적이긴 하지...
20대 때라면 모를까...
지금 네 나이에 미래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누군가를 만나는 게 쉽지는 않지."
"오빠, 그런 얘기 할 거면
나 먼저 일어날래.
나 요새 언니한테도 지겹도록
잔소리 듣고 있단 말이야."
"알았어.
발끈하는 건 예전이랑 똑같네."
오빠는 카페 앞까지 데려다 줬다.
"오빠. 점심 맛있게 잘 먹었어.
잠깐 들어와. 카푸치노 만들어 줄께.
가져가."
"응. 그래~"
월요일 오후라 그런지
오늘은 카페에 손님이 많지 않았다.
지성 씨가 먼저 퇴근하고,
나는 번역 일을 하면서
훈지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훈지 씨랑 뭐 하지?'
간만에 밖에서 데이트를 할 생각에
괜히 마음이 들뗬다.
그러다가 문득,
아까 원희 오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훈지 씨와의 미래...?
훈지 씨는 나와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때 카페 문이 열리고
훈지 씨가 들어왔다.
모자에 마스크까지 챙겨 쓴 모습이었다.
'밖에서 데이트 하자고 하더니,
아주 단단히 무장하고 왔네.'
"왔어요? 잠깐만 앉아 있어요.
마무리 정리만 하고 나가요, 우리."
"참, 그런데 우리 오늘 뭐 할거에요?"
훈지 씨는 마스크를 벗으며 말했다.
"오늘 우리 놀이공원 야간 개장 가요!!"
"와~ 정말요? 그래도 돼요?"
"월요일이고 야간 개장이니까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거 같지 않은데..."
"좋아요!! 가 본 지 진짜 오래됐는데!!
신난다~~빨리 가요, 우리!!"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었고,
생각보다 사람도 많지 않았다.
놀이기구를 타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이렇게 사람들이 모인 곳에 와서
훈지 씨와 나란히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들떴다.
의외로 겁이 없는 훈지 씨 덕분에
나는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바이킹 맨 끝 자리에 앉아 보는 건
내 인생 처음이었다.
너무 무서워서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바이킹에 이어
롤러코스터까지 연달아 탔더니
속이 울렁거렸다.
그에 반에
훈지 씨는 너무나 평온한 얼굴이었다.
"훈지 씨, 아무렇지도 않아요?
안 무서웠어요?"
"아이... 저런 게 뭐가 무서워요?
나는 번지점프도 해 본 사람이에요."
자신만만한 그의 표정에
나는 그의 배를 쓰다듬었다.
"듬직하죠?"
"그러면서...
혹시 벌레는 무서워하는 거 아니에요?"
"아이, 벌레는 또 내가 슬리퍼로
한 번에 때려 잡죠!!"
"오~~
훈지 씨한테 이런 테토력이 있는 줄
왜 나는 몰랐지?"
우리는 폐장 안내 방송이 나올 때까지
신나게 돌아다니며 놀이기구를 타고,
츄러스도 먹었다.
어느새 하늘은 어두워졌고,
놀이공원 곳곳에 켜진 조명이 반짝였다.
훈지 씨와 나란히 걷다 문득 생각했다.
'이런 날들이 오래도록 계속되면 좋겠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눈이 저절로 감겼다.
"정아 씨.
졸리면 자요. 그렇게 참지 말고."
"안 돼요.
내가 자면 훈지 씨도 졸립잖아요."
"참... 그런데 훈지 씨...
나 뭐 한 가지 물어봐도 돼요?"
"뭔데요?"
"아까 낮에 원희 오빠가 갑자기
같이 점심 먹자고 해서 만났는데...
아!! 맞다!!
이건 너무 갑자스럽게 약속을 잡은 거라
미리 장소와 일정을 얘기 못 했어요.
양해 좀 해 줘요."
"아... 이렇게 예외를 두면 안 되는데...
이번만 넘어가 줄게요.
그런데 왜요?"
"아니.. 오빠가 나한테 묻더라구요.
훈지 씨와의 미래를
어디까지 보고 만나는 거냐고..."
"미래라...
정아 씨 생각은 어떤데요?"
"나는 그냥 현재 만나는 게 좋고,
좋아하니까 사귀는 거라고 했는데...
뭐랄까...
오빠는 내가 너무 철없이 연애한다고
생각하나봐요.
우리가 철이 없는 걸까요?"
그는 한동안 운전에만 집중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아 씨는 나와 뭘 하고 싶어요?"
"뭘 하고 싶냐니...
혹시 결혼을 말하는 거에요?"
"결혼 말고 연애만 계속 하고 싶은 거에요?"
"남녀 관계의 끝은
항상 결혼이어야 하는 거에요?"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훈지 씨는요?"
"나는...
서로의 생각이 맞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 쪽은 원하는데
다른 한 쪽은 원하지 않는다면,
어느 한 쪽이 맞춰 주거나...
그게 안 되면 헤어지는 거죠."
"그럼...
지금 훈지 씨는 나에게 맞춰 주고 있는 거네요?"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요.
나도 지금의 시간이 좋으니까요."
"서로의 생각이 블록처럼
딱 맞아떨어지지 않아도
오래 만날 수 있을까요...?
나는 훈지 씨가 내 인생의
마지막 남자친구였으면 좋겠는데..."
"남자친구든 남편이든...
정아 씨 마지막 남자는 나인거죠?"
그는 내 손을 잡고 살며시 웃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89화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