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gejolak.


000
...아.

000
몇 시지?

정신을 차려 보자, 내가 좋아하는 색의 심플한 시계가 오전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눈을 비비며 책상을 밀고 일어나, 지친 몸을 침대로 떨구었다.

꽃잎이 물이 담긴 수조 위로 떨어지듯이.

자다가 깨서인지, 한 번 떠진 눈꺼풀은 내려갈 생각을 안 했다. 다시 자세를 고쳐서 정자세로 눕는다.

000
...그래도,

태형이, 도와줘야겠지.

나는 어째선가 김태형에게 큰 위안을 받았다. 그를 도와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났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 왔다. 흔한 현상이지...

나는 타이레놀을 입 안에 털어넣고, 눈을 감았다.

팔목으로 눈을 가렸다, 어둠 사이로 민윤기가 나에게 웃는 모습이 보인다.

눈을 비비자 김태형이 보인다. 그 후엔 주시진이 보인다.

나는 늦게 잠들어야만 했다.

숨을 고른다.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서, 죽어라 뛰어야만 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선도부에게 붙잡혀 있었을 수도...

나는 또 다시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김지원
...야, 니 어디 아파 보인다.

아니야.

뱉으려던 말은 따가워진 목 때문에 기침으로 나왔다.

입술을 꽉 깨문다. 몸에 전체적으로 고통이 왔다. 문제가 있음을 느꼈다.


김지원
000, 양호실로 내려가. 내가 데려다 줄,

000
됐어!


김지원
...미안, 미안해.

너무 소리를 질렀나, 몸의 고통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지원이는 풀이 죽었는지 턱을 괴고 책만 내려다본다.

나는 두통 때문에 자리에 엎드렸다. 누군가 날 손가락으로 누른다.


정호석
000.

000
...응?


정호석
아까, 너를 찾는 사람을 봤어. 2학년 선배들이 말이야.

뒤를 흘깃 보았다. 민윤기가 듣고 있다. 주시진 선배의 얘기임이 틀림없으니.


정호석
내가 아는 사람들이야. 나중에 쉬는 시간 좀 빌릴게, 같이 가자.

호석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와 귀에 속삭였다.


정호석
네가 피할 순 없겠지만, 내가 막아줄 순 있어. 누구인지 알지?


정호석
사람 하나 때문에 네가 위험해질 순 없잖아, 00아.

다시 친절하게 웃은 정호석이 뒤의 연필깎이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샤프를 연필깎이에 디밀어 돌리는 행세를 했다.

나는 작게 읊조리곤 다시 엎어진다. 응.

000
...가야, 하는데.

몸이 축축 늘어진다. 지금 상태로 괜찮은 걸까?

내가 몸을 비틀이다 넘어지니 지원이와 김태형, 정호석이 나에게 다가온다.


김태형
얼마나 아프면 이래! 너 몸 뜨거워, 00아. 선생님께 말씀드릴게.


김태형
그냥 쉬자. 응?


김지원
몸조리 좀 잘 하지! 이런 게 한두번이가! 진짜...


김지원
아까부터 알아봤어야 되는 거를,

정호석은 내 귀에 대고 말했다. 난 고개를 도리질하며 약을 삼킨다.


정호석
못 가겠으면 말해.

000
피할 수는 없잖아. 자존심 깎여서, 못 해.


김태형
이 몸으로 어딜 가게!

정호석이 나를 일으킨다.


정호석
내가 잘 챙겨서 다녀올게, 반장. 걱정하지 마.


김태형
...

김태형은 그냥 연거푸 한숨을 쉬어댔다.


민윤기
야.

000
어?


민윤기
...필요하면, 불러라.

민윤기는 머리를 긁더니 앞문으로 나가 버렸다, 우리도 2층으로 출발했다.

정호석은 내 상태를 아는지 일부러 천천히 걸어주었다.

000
쉬는 시간 끝나지 않을까?


정호석
괜찮아. 천천히 가자.


정호석
00아, 취미 같은 거 있어?

000
취미?

어렸을 때는 모든 게 좋고, 재밌어 보였는데. 지금은 뭘 해도 힘만 들다.

000
...없어.


정호석
나,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해.


정호석
다음에 같이 예쁜 풍경 찾아 나가자. 예쁜 00이랑 같이.

000
뭐래, 안 예뻐.


정호석
00이가 전 세계에서 제일 예쁘진 않겠지만.


정호석
내 눈엔 그래.

정호석은 한 반의 문 앞에 서서, 숨을 들이쉬었다.


정호석
00아,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추해. 더럽게 너한테 욕을 하고, 널 협박하려고 들 거야.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정호석
질투 때문에.


정호석
쟤네는 아무 이유 없이 너를 욕하고 드는 게 아니야.


정호석
하루 만났으면서, 네가 항상 바라는 사람보다 너를 더 사랑하는 사람. 네가 좋아하는,


정호석
김태형보다 너를 더 좋아하는 민윤기 때문이야.


정호석
저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해도, 숨을 고르고... 울지 말아야 해. 알겠지?

정호석은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 괜히 중압감이 느껴진다.

000
...고마워.


정호석
들어가자, 00아.

정호석이 문을 열었다.

000
...실례합니다.

갑자기 머리가 욱신거렸다. 이젠 진통제도 안 듣나? 오늘이 생리였던가?

???
야, 씨발 저 년 왔네. 존나 못생겼어.

???
어딜 눈 똑바로 뜨고 쳐다봐, 미친 년아. 선배 대우 똑바로 안 해?


주시진
야, 애긴데 너무 기 죽이지 마~ 너무하잖아아,

주시진은 우리 학교의 것이 아닌 교복을 입고 있었다. 정호석이 한 발을 내딛었고, 시선은 호석이에게로 쏟아졌다.


정호석
니가 다음 상대를 얘로 골랐다면, 내 칼끝이 너한테로 갈 수도 있어.


정호석
민윤기 때 알았겠지, 내가 어디까지 하는지.

시발, 이 학교 애들은 저 선배면 다 반말이냐 왜. 나도 반말할까 보다.

000
또 민윤기야?


주시진
그 일에는 호석이 너도, 책임이 있잖아.


정호석
그랬지.

호석이의 표정이 차게 굳었다.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정호석
얘는 나도 좀 마음에 들거든.

???
씨발년이, 셋이나 꼬셔?

주시진 선배는 적잖이 충격받은 듯 보였다.


주시진
니가 한 여자한테 머무를 수 있을까? 나도 그랬고, 다 가지고 논다면서! 개새끼가, 어디 구라질을 해.


주시진
000, 썅년아. 주제도 모르고 막 나대는 여우년, 니가 뭔데 사람을 셋이나 꼬셔?

주시진이 내 뺨이라도 한 대 때릴 듯이 나에게 다가왔다. 눈은 붉어져서.

그러나 내가 뒷걸음질치자, 내 앞을 정호석이 막아섰다.


정호석
앵간히 해라.

짝,

내가 뺨을 맞은 소리는 아니었다. 대신 주시진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주시진
...정호석!


정호석
주제도 모르는, 썅년에 여우년.


정호석
민윤기한테 치대. 좆같이 자꾸...

호석이가 나에게 돌아섰다.

무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