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cun
01 Saksi


***

한 남자가 비릿하게 웃는다.

주변이 온통 피비린내로 가득한데도 미간을 찌푸릴 기색 하나 없다.

오히려 그 냄새에 군침이 도는 듯 입가에 묻은 피를 슬쩍 핥는다.


윤정한
뭐야.

기대감에 찼던 표정은 온데간데 없고 어느새 무서울 정도로 표정이 굳어버린다.


윤정한
냄새만큼 맛있진 않네.

남자는 실망감보다는 짜증이 더 섞인 얼굴로 피칠갑을 한 채 널브러져 있는 남성을 구둣발로 툭, 건든다.

그러자 옅은 신음을 흘려보내며 움찔거린다.


윤정한
아직 살아있었네?


윤정한
그대로 죽어버리지 그랬어.

남자는 쭈구려앉고는 고개를 삐딱하게 한 채 널브러져있는 남성과 시선을 마주본다.


윤정한
쥐새끼 주제에 목숨줄은 또 길어. 그치?


홍지수
어떻게 할까.


윤정한
죽여, 그냥.

남자는 차갑게 말을 내뱉으며 일어난다.

그리곤 그 채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남성을 내려다본다.


윤정한
날 죽이려고 했으면 이 정도 대가는 생각했어야지.

남자가 뒤돌아서 가려고 하자 두려움에 떨고 있던 남성이 힘겹게 손을 들어 바짓자락을 붙잡는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가볍게 남성의 손을 뿌리치곤 으스러져라 짓밟는다.

“으아아아악!!!!!”

그동안 옅은 신음밖에 내지 못 했던 남성의 입에서 짐승이 울부짓는 듯한 괴음이 터져나온다.


윤정한
아, 시끄러워.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귀를 후벼판다.


윤정한
좀 조용히 아파하면 안 돼?

“끄윽… 너같은… 괴물들은… 윽, 다 죽어버려야 돼!!!”


윤정한
괴물 아니고,


윤정한
뱀파이어나 흡혈귀.

남자는 이 와중에도 자신을 칭하는 괴물이란 말을 ‘뱀파이어’, ‘흡혈귀’로 정정해 주며 남성의 얼굴을 발로 후려친다.

뻑, 하는 소리와 함께 남성은 조용해진다.


윤정한
유언이 날 향한 저주라는 게 마음에 안 드네.


홍지수
뭐 어쩌겠어.


홍지수
저들한테는 우리가 두려움의 존재일 텐데.

동물들이나 인간들의 피를 먹는 존재를 우리는 흔히 뱀파이어나 흡혈귀라고 부른다.

그리고 지금 이 세계에선 뱀파이어와 흡혈귀들이 인간들과 은밀히 공존하고 있다.

인간들 대부분은 뱀파이어나 흡혈귀를 미신이라 생각하지만,

몇몇은 그들이 존재한다고 믿어 ‘사냥’을 하고 있다.

인간들 대부분이 믿지 않는 이유가 있다.

바로 뱀파이어들은 인간들을 죽이고 피를 먹는 게 아닌 피가 들은 팩, 혈팩들을 사서 그걸로 굶주림을 처리한다.

그래서 뱀파이어들은 굳이 인간들을 죽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피를 먹고 사는 존재라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겐 큰 두려움이 되나 보다.

이렇게 사냥을 하러 다니는 것을 보니 말이다.

몇몇은 뱀파이어란 존재를 믿게 된 이유는 아마 그런 쪽으로 관심이 많거나 관심이 많았는데 어쩌다가 혈팩을 사고 파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일 거다.

그러나 뱀파이어 사냥이란 게 쉬울리 없다.

인간보다 몇 십배는 센 그들인데.


윤정한
이제 갈까?


홍지수
얘는 어떡하고.


윤정한
뭐 알아서 어떻게든 되겠지.


윤정한
그리고 이렇게 한적한 곳에 누가 오겠어.


홍지수
하기야 그렇겠네.

정한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구두 소리를 내며 걸어간다.


홍지수
…

지수는 아무래도 남성의 시체가 들키진 않을까 신경이 쓰이는지 널브러진 그를 바라본 채 발걸음을 떼질 못 한다.


윤정한
뭐야.

지하실 전체에서 울리던 정한의 차가운 구두 소리가 멈추자 지수는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고개를 돌린다.


윤정한
…안녕, 아가씨?

정한이 사글사글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넨다.


홍지수
왜, 무슨 일인데.

혹시 목격자인 것일까, 지수는 걱정이 잔뜩 서린 얼굴로 다가간다.


윤정한
여기는 어쩐 일로 들어오셨을까.


윤정한
이런 한적한 곳에?

이여주
그러는 그쪽들이야 말로 이런 한적한 곳에서 뭐 하시는 거죠?

여주는 피칠갑을 한 그들을 보며 금방이라도 달아날 새로 뒷걸음질을 친다.

이대로 여주가 도망쳐서 신고라도 한다면 아주 귀찮아지게 될 것이다.


윤정한
아가씨, 우린 위험한 사람들이 아니야.


윤정한
이 피들도 우리 건 아니고.

이여주
그래서 무섭다구요.

이여주
당신들 피가 아닌 게…

여주가 뒷걸음질을 잠시 멈추자 정한은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 도망가지 못 하게 한다.


윤정한
잠깐 우리 이야기를 좀…

그저 잠깐 여주의 손목을 붙잡은 것뿐이었는데,

정한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 했던 기운에 포만감을 느낀다.

그 어떤 피로도 채우지 못 했던,

수많은 피의 양으로도 채울 수 없었던 굶주림이 채워져간다.


윤정한
너…… 대체 정체가……

당황하면서 손에 힘이 풀리자 여주는 그의 손을 뿌리치곤 지하실 밖으로 뛰쳐나간다.


홍지수
뭐 해?

여주를 그대로 놔주는 정한의 모습에 지수는 미간을 찌푸리곤 쏘아붙이듯 묻는다.


홍지수
쟤가 신고라도 하면…


윤정한
나 방금 포만감을 느꼈어.


홍지수
뭐라고?


윤정한
저 여자의 손목만 잡았을 뿐인데 포만감을 느꼈다고.

정한은 본인이 말하면서도 어이가 없음을 느낀다.

그렇지만 정한은 분명히 느꼈다.

그녀와의 짧고 간단한 스킨십에 채워진 포만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