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말랑이래요
"아 어디 가는데요- 다리 아프고 힘들고 귀찮고 또 귀찮고 또 존나 귀찮은데.."
"..그냥 좀 와"
범규오빠가 아침부터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 향했다.
이유는 별 거 없었다. 혼자 가기 외로워서 만만한 날 데려가는 거라고 했다. 어딘가에 도착한 뒤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갑자기 화들짝 놀래며 내 뒤로 숨는 오빠였다.
"뭐야 귀신이라도 봤어요?! 우리가 귀신인데 왜 놀라는거야!"
"조용히 해 봐"
그제서야 범규 오빠의 시선을 따라가니 어떤 여자가 친구와 꺄르르 웃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뭐야 뭐야.. 이건!.. 전생에 여자친구라도 됐었나?

"야아! 나 대학 붙었다구! 너네 이제 놀리지마라"
대학에 붙었다며 기뻐하는 여자를 보고 미소를 짓는 범규 오빠가 이상했다. 나 범규 오빠 웃는 거 처음 보는데...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어느새 여자에게서 시선을 거둔 오빠의 소매를 잡고 물어봤다.
"전여친이에요? 아님 전생에 아내? 딸?"
"..동생"
"헙.."

"다음 생, 다다음 생, 그 다음 생까지도 저 아이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댓가로 지금 이 일을 하고 있어."
"아.. 뭐야 범규 오빠 되게 듬직한 오빠였네요"
그동안 싸가지만 뒤지게 없는 줄 알았더니..중얼중얼 거리자 그걸 들었는지 내 이마에 존나 세게 딱밤을 때리는 오빠였다. 아! 개아파요 진짜!
"왜 까불어 그니까"
"씨.."
"너는 전생에 미련 같은 거 없어? 김태연이 이해가 안 가. 다짜고짜 너한테 이 일을 시켰다는 게"
"저 사실.. 전생에 기억이 잘 안 나요. 죽기 전엔 무슨 휴게실 같은 곳에 있었던 것 같은데.."
"뭐?"
범규 오빠가 눈썹 한 쪽을 올리며 말도 안된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음.. 기억이 안 나면 안되는 건가? 왜 저렇게 반응 하시지. 오빠는 한숨을 푹 쉬다 갑자기 고개를 휙 들어 하늘을 노려봤다.

"김태연. 너 아무리 인력이 부족하다 해도 그렇지..전생에 기억도 안 나는 애한테 냅다 계약서 쓰게 했냐?"
오빠가 말을 끝내자마자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으악-! 비 와요!! 안절부절 못 하며 범규 오빠를 올려다보니 작게 한숨을 쉬며 겉옷을 벗어 내 머리 위에 얹어줬다.
"미안하대 김태연이"
"아?.. 저는 괜찮은데"
괜찮다고 말 하자마자 비가 뚝 그쳤다.
아니 뭐야, 이런 식으로 소통 하는거야? 좀 당황스럽네
최범규가 혀를 쯧, 차며 빗물에 젖은 내 머리칼을 정리 해줬다.
".. 너 그냥 이거 하지마"
"뭐가요?.."
"지금 하고 있는 거"
"난 괜찮은데. 다들 좋은 분들이고..또,"
그러자 됐다며 내 팔을 잡고 뒤돌아 걸었다.
섭섭하게 왜 그런 말을 하실까. 내가 필요가 없으신가?
일 할 사람도 부족하다면서..
생각할수록 섭섭했다. 물론 지금까지 내 의지대로 흘러간 일은 한번도 없었지만, 그만 두는 것 까지 선택의 여지가 없다니 괜히 초라해졌다.
***

"범규야.. 너 여주한테 무슨 말을 했길래 하루종일 밥도 안 먹고 축 쳐져있어"
"..내가 뭐"
"여주 집 오자마자 방에 들어가서 안 나와"
"배고프면 알아서 나오겠지"
그렇게 대답한 범규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범규가 향한 곳은 여주의 방이였다. 항상 "노크 해!!" 라며 소리치던 여주의 말은 까먹은지 오래였고,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김여주"
"..느에? 뭐야 노크도 안 하고 또 무슨 일ㅇ.."
"굶어 뒤질거야? 두 번 죽을거냐고. 왜 밥도 안 먹고 하루종일 꿍해 있는데"
"..."
"밥은 먹어야 할 거 아니야"
"됐어 그냥 나가요"
"뭐?"
여주가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썼다. 저게 진짜.. 끝까지 걱정 시키겠다 이거지? 범규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이불을 확 제꼈다. 깜짝 놀란 여주가 눈을 크게 뜬 것도 잠시 금새 물기 가득한 눈으로 범규를 바라보다 고개를 푹 숙였다.
"오빠는 왜 맨날 마음대로에요? 내가 괜찮다고 했잖아요! 일 하는 것도 좋고 오빠들도 좋은데 왜 나가라고 하냐고요!"
아 몰라 짜증나 시바알-!! 얼마 안 가 엉엉 울며 통곡하는 여주였다. 그에 존나 당황한 건 범규였다. 아니 얘가..뭐라는 거야 지금..
물론 다른 멤버들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저녁 준비를 하려던 연준이 울음 소리에 놀라 헐레벌떡 뛰어왔다. 물론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여주 울지마 울지마 뚝 그쳐-"
온 멤버들이 제 방에 모여 우는 걸 구경하는 꼴이라니 여간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리 없었다. 속상해서 울긴 울었는데요.. 구경 났냐고오..

"진짜 막내 동생 같아 귀여워"
"아 놀리지 말라고요.."
나 참, 왜 울었는지도 까먹을 뻔. 분명 속상하고 서운해서 운건데 이렇게까지 부둥부둥 해줄줄이야.. 옆에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수빈오빠도 웬일인지 범규 오빠의 등을 때려주며 날 달래줬다.

"야 최범규 너가 잘못했네"
최범규는 우리가 혼내줄테니까 울음 그쳐. 서툰 손으로 내 머리를 한번 쓰다듬더니 방을 나갔다. 안 저러던 사람이 10초 다정해졌다고 바로 풀리는 나도 참 쉽다..
그런 내 속마음을 들었는지 풉- 웃던 태현오빠도
기분 풀렸으면 됐다. 라며 나갔다. 한 두명씩 방을 빠져나가니 결국 남은건 아직까지 멍해있는 범규 오빠였다.
"..안 나가요?"
"...야"
"네?"

"걱정..돼서 그렇게 말 한 거였어. 네 의지 없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답답하기도 했었고"
"..."
"내가 표현이 서툴러. 나 때문에 상처 받았다면 미안하다"
그리고 너 잘 하고 있어. 이 팀에 네가 없으면 안 될 만큼
그렇게 우물쭈물 거리던 범규 오빠도 쭈뼛 거리며 방을 나갔다. 그게 다 걱정이였다니.. 내가 싫은게 아니어서 다행이다.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이제 정말 일원이 된 것 같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