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용 금지.

10
:: 향수
"대리님은 원하시는 향 있으세요?"
"솔직히 내가 이런 걸 잘 몰라서···
그냥 집에 굴러다니는 거 쓰거든요."
"아아···."
"여주 씨가 골라줘요. 평생 쓸 지신 있으니까."
허리를 굽혀 시선을 맞추고 어때요? 하고 묻는 대리님에 얼른 귀를 머리카락으로 숨기곤 시선을 회피했다. 진짜 열이 왜 이렇게 오르는지··· 어디 아픈 것도 아닌데 귀가 원래대로 돌아갈 생각을 안 했다. 박지민이랑 첫키스할 때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던 것 같은데.
"뭔가 시원한 향도 잘어울리실 것 같아요."
섬유유연제 향이 조금씩 나면서 여름이든 겨울이든 다 잘어울릴 것 같은 향을 발견해 대리님에게 내밀었다. 대리님은 시향을 해보시더니 괜찮은 것 같다고 웃으셨다.
"여주 씨는 무슨 향 선호해요?"
"끌리는 대로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음··· 꽃향 위주로도 좋아하고요."
"여주 씨한테 잘 보이려면 여기 있는
꽃향들 다 매수해야겠네요."
대리님은 꽃향을 한참 둘러보시거니 내가 골라준 향수와 가장 맘에 드는 꽃향인 향수를 고르셨다. 나도 대리님께 골라달라고 했더니 자기 향수보다 더 고심히 고민해 선택하더니 베이비 파우더 향이 나는 향수를 주셨다 ^ㅁ^ ···.
계산을 마치고 나오니 대리님은 자꾸 현진이 냄새 난다고 웃음을 참으신다. 아니 너뭌, 잘 어울리는, 데에, 흨, 흐읍, 왜 자꾸 현진이가, 끄흑, 떠오를까···. 하시며 입술을 깨무시는데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현진이가 된 기분이었으니까.
"여진이 보고 갈래요?"
"네. 통화만 하니까 죽을 것 같대요."
"여진이가 그랬어요?"
대리님은 쿡쿡 웃으시며 그럼 빨리 가야겠다면서 시동을 거셨다. 도착하기 전에 잠깐 마트에 들려 여진이가 좋아하는 과자를 샀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왔을 땐 엘리베이터 앞에 여진이가 없었다. 대리님은 내가 옆에 있어준 이후로 집에서 나오는 일이 없어졌다며 다행이라고 하셨다.
"여진아!"
"언니!"
"주말 잘 보냈어? 아빠랑은 안 싸웠고?"
"벌써 왔어···?"
김태형은 안방에서 나와 화들짝 놀라더니 여진이에게 갑자기 나가버리면 어쩌냐고 하면서 방으로 쏙 들어갔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며 방문을 여니 연필을 잡고 꼬물꼬물 글씨를 쓰고 있는 여진이와 색종이를 오리고 있던 김태형이 보였다.
"태형 씨 지금 뭐 하는,"
"아 왜 들어와요!"
"네?"
"작은 아빠! 언니랑도 이거 같이 하자!"
"언니한테 줄 건데 같이 있으면 안 되지···."
줘요···? 뭘 주는데? 내가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김태형은 자기가 한 말에 놀라며 입을 헙! 하고 틀어막더니 들어오지 말라면서 방문을 걸어잠궜다.
"뭘 하길래 저렇게까지···."
"그러게요. 현진이도 방에 있나 본데."
10분 정도를 기다리자 김태형이 이마에 있는 땀을 닦으며 현진이를 안고서 방에서 나왔다. 여진이는 다 했다!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김태형을 뒤따라 나와 나에게 편지를 내밀었다.
"여진아 이게 뭐야?"
"아빠도 궁금한데. 작은 아빠랑 만든 거야?"
"으응. 언니 읽어봐요!"
고이 접은 편지를 열어보니 삐뚤빼뚤한 글씨체가 보였다. 중간중간에 김태형이 고친 건지 어설픈 어른 글씨가 섞여 있는 걸 보고 풉 하고 웃었다.

"진짜 여진이가 언니한테 주는 거야?"
"응! 이거 여진이가 다 썼어요."
여진이가 너무 귀여워 와락 끌어안고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대리님은 내가 옆에 놔둔 편지를 읽으시더니 여진이에게 왜 네가 날 더 좋아하냐고 자신이 더 좋아한다면서 미간을 찌푸리셨다.
"··· 형이 누굴 좋아해?"
"··· 어?"
순식간에 싸해진 분위기에 내가 애써 웃으며 농담 가지고 왜 그리 진지해지냐고 김태형을 달랬다. 대리님은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며 급히 자리를 떴다.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요즘 안 그래도 헷갈려 죽겠는데··· 그저 비지니스적인 관계에서 여진이 일로 조금 가까워진 것 때문일지, 아니면 진짜 좋아하는 것일지. 대리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부여를 하기 시작한 걸로 보아 진짜 좋아하는 건 아닐지 생각했다.
'우리아빠가 언니 좋아 헤요.'
편지를 집어 여진이의 삐뚤한 문장 하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우리 아빠가 언니 좋아해요... 우리 아빠가 언니 좋아해요. 무슨 의미일까. 여진이는 그냥 한 말이었겠지만 아까 대리님이 한 말 때문에 이 문장의 뜻이 더 헷갈렸다.
"나 이거 하느라 팔 빠지는 줄 알았어요."
"아··· 고마워요."
"칭찬, 안 해 주나."
무슨 애도 아니고 칭찬 타령이래. 그래도 다소 진지해 보이는 김태형에 아이고 잘했어요~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니 머리를 뒤로 멀찍이 빼 그렇다고 머리를 쓰담아달라는 소린 아니었는데. 하며 정색한다.
"아니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장난이에요 장난."

여주가 가고 난 후 석진은 그제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태형은 식탁 의자에 앉아 팔짱을 끼고 석진을 노려보았다. 석진은 태형의 눈치를 보며 살금살금 방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상대의 낮은 음성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형."
"······."
"진심, 아니지?"
석진은 어색하게 하하 웃으며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주제를 바꾸려 머리를 썼다. 그런 석진의 태도에 태형은 화가 난 듯했다.
"형, 김여주 좋아해?"
결국엔 들켜버리고 말았다. 석진은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태형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마른 세수를 해댔다. 형수 죽은 지 이제 2년이야. 태형의 말에 석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난 전부터 형 그런 태도 맘에 안 들었어.
형수 죽은 지 겨우 1년 됐을 때인데 여자를
만나러 가지 않나, 애들을 잘 안 보지 않나."
"······."
"여진이 아직 엄마 찾아. 이제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애한테 너무한 거 아니야?"
"······."
어쩌면 태형의 말이 다 맞을지도 몰랐다. 아내를 잊어보려고 새로운 여자들을 만난 것도 사실이고, 그것 때문에 여진이와 현진이에게 소홀히 대했다.
하지만 의지할 곳이 아무 데도 없었다. 그저 담배만 태우기엔 자기 몸이 너무 썩어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 여주를 만나게 되었다. 다른 여자들은 석진이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이후로 관계를 끊어버렸지만 여주는 달랐다.
"·· 이번엔 진짜야. 나 여주
씨 진심으로 좋아해."
"형."
"······."
"김여주 이제 스물다섯이야."
그건 생각 안 해 봤어? 태형의 말에 석진의 동공이 심히 흔들렸다. 지금 형 나이에 만나면 최소한 결혼까진 생각해 봐야 돼. 근데 이제 갓 스물다섯 된 여자를··· 그게 말이나 돼? 그래 그것까진 너무 갔다. 김여주가 형을 좋아하기를 해?
일방적인 감정이 아니었다. 여주도 석진을 좋아하고 있었지만, 이들이 그걸 알 리 없었다. 석진과 열한 살 차이 늦둥이로 태어나 자란 태형이라 그 감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 반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됐어. 이렇게 된 거 형이 알아서 해."
"··· 태형아. 잠깐만."
쾅.
태형은 석진의 말을 무시하고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석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정말, 태형의 말이 맞는 걸까.
어이쿠 올리는 거 까먹었다가 이제야 업로드 하네요
제송합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