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세상은 좁디좁고
말랑공 씀.
「그들의 만남은 예정되었으리라.」
정수연, 그녀는 앞장서서 보라 카페로 지민과 윤기를 데리고 갔다. 영화관과 꽤 멀음에도 버스를 타지 않고 힘겹게 걸어갔다. 새하얗고 차가운 눈이 내리는 계절이지만 너무 걸어서 몸에 열이 나 땀이 주륵 흘렀다. 그렇게 힘겹게 걸어왔는데 하늘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는지 보라 카페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그리고 굳게 닫힌 유리창 위로 어느 쪽지가 붙어있었다. 정수연은 힘겨운 탓에 거친 숨을 몰아내쉬며 쪽지를 읊었다.
“겨울 휴가 갔습니다…?”
윤기는 한숨을 푹 내쉬며 힘겨운 몸을 유리창에 기대어 투덜거렸다. 겨울 휴가 가는 사람이 어디 있어, 라며. 지민 또한 힘든지 숨을 고르며 윤기의 투덜거림에 대답했다. 겨울에 휴가 갈 수도 있는 거죠, 뭐. 윤기는 그런 지민의 대답에 지민을 한 번 진하게 째려 봤다. 지민은 그런 윤기의 시선을 무시하며 녹일 듯 달달한 눈빛을 담고서 정수연을 쳐다봤다. 정수연은 지민의 애절한 시선을 희미하게 느꼈지만 맞닿아 주지 않고 바로 앞에 있는 카페로 시선을 돌렸다.
“로즈 카페. 저기로 갈까? 이번에 새로 생긴 데 같던데. 지민이 네 생각은 어때?”
지민은 애절한 저의 시선에 맞닿아 주지 않는 정수연에게 서운함을 느꼈지만 이내 그녀가 윤기보다 저에게 먼저 물어 서운함은 전부 사라지고 사랑이라는 감정만이 더욱더 진하게 피어났다.
“응. 네가 고른 곳이라면 난 어디든 좋아.”
“하하, 그럼 내가 지옥을 고른다고 해도 좋아?”
“물론이지.”
“그래?”
정수연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곤 왼손으로는 지민의 손을, 오른손으론 윤기의 손을 붙잡고서 로즈 카페로 향했다. 그 둘은 정수연에게 거의 끌려가다시피 했지만 기분이 썩 나빠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정수연에게 이끌려 가는 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마치 진한 꽃 향기에 홀린 듯.
로즈 카페. 그 카페는 입구서부터 고급진 새빨간 장미가 놓여져 있었다. 아무래도 사장님께서 장미를 좋아하는 듯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카페 문을 여는데 장미 향과 커피 향이 동시에 확 풍길 리가 없었다. 카페의 안은 진한 갈색의 나무로 된 탁자와 의자가 놓여져 있었고 각각의 탁자 위에는 장미꽃 한 송이가 꽃병에 담겨있었다.

“어서오세요!”
누군가 힘차고 활기찬 목소리로 그들을 맞이해 주었다. 그 누군가에게선 진한 장미 향이 풍겨왔다. 정수연은 익숙하고도 역겨운 향기에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정호석. 그의 왼쪽 가슴팍에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었고, 아무래도 그가 이 카페의 사장인 것 같았다.
호석은 정수연을 보자마자 묘한 표정을 짓고서 그녀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 보였다. 정수연은 그것을 눈치채곤 호석의 시선에 맞닿으려 더욱 애썼다. 여기 사장님이신가 봐요? 정수연이 묻자 호석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두며 네, 라고 대답했다. 그러곤 윤기와 지민에게 시선을 돌리고 주문하시겠어요? 라며 잡담을 피하려고 하는 듯했다. 정수연은 그런 호석의 행동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정말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었을까.
정수연은 주문을 하고 나서 카페 안을 둘러보았다. 지민과 윤기 또한 그녀의 옆에 꼭 붙어서는 카페를 둘러보는 척 정수연을 바라보았다. 일방적인 시선임에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정수연은 카페를 둘러보다가 이내 어느 포스터를 발견하곤 소리 내어 읽었다.
“알바생 구합니다……”
호석은 여유롭게 커피를 만들다 정수연의 말에 잠시 흠칫했다. 그러나 언제 자기가 당황했냐는 듯 콧소리까지 부르며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 행동이 오히려 당황했다는 것을 광고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정수연은 호석에게 다가가 면접 언제 보냐고 물었다. 호석은 구태여 당황하지 않은 척 정수연에게 시선을 맞추더니 이번주 토요일이요, 하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는 듯했다. 정수연은 저 면접 봐도 되죠? 하고 물었고 호석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된다고 대답했다. 옆에서 그 모든 것을 듣고 있었던 윤기와 지민은 호석에게 다가가 본인들도 면접을 봐도 되냐고 물었고 호석은 또 된다고 대답했다.
지민은 면접에 합격한 것도 아닌데 정수연과 같은 카페의 면접을 본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즐겁고 기뻐 웃음꽃을 활짝 피었다. 윤기 또한 지민과 같은 마음에 정수연을 바라보며 기쁜 듯 무심하게 웃었다.
「그대가 가는 곳이라면 지옥이라도 따라가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