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rmone Wars: Superpower High School

​호르몬 전쟁 시즌1

001.내가 빨래판을 덮쳤을리 없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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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있어도 호르몬 고등학교는 안된다!'

'왜! 할머니! 나도 엄마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어! 엄마도 호르몬 고등학교에 다녔다며!'

'네 엄마에 대해서는 관심을 끄라고 말하지 않았니. 이미 죽었다니까!'

'아니야.. 엄마는..엄마는 죽지 않았어! 할머네가 무슨 소리를 해도 나는 호르몬 고등학교에 갈거야. 그러니까 말리지마.'

'얘! ㅇㅇ아!! ㅇㅇ아!!'

그렇게 기어코, 내가 호르몬 고등학교에 가는 것을 말리던 할머니의 뜻을 꺾고 내 고집대로 호르몬 고등학교에 들어왔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 밥을 굶고 잠을 자지도 않아야 했지만. 할머니는 그런 내 뜻을 꺾지 못하고 그 대신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호르몬 고등학교에 가게 되면 절대 초이스와는 마주치지도 같은 공간에 있지도 말아야한다.'

그렇게 할머니의 조건을 지키기로 하고 들어온 호르몬 고등학교. 난 특별한 호르몬이 없는 논초이스로서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확실히 특수한 호르몬을 가진 초이스의 수가 적은 만큼 학교 안에는 논초이스들이 대부분이었다. 뭐, 이렇게 되면 할머니와의 조건을 어길 위험은 없고 교무실 까지 무사히 가기만 하면 되는데..

​"저기. 여기 교무실이 어디..."

​"쉿-"

내가 교무실이 어디냐고 묻기 위해 근처에서 책을 읽고 있는 동그란 안경에 검은머리의 남학생에게 말을 걸자 쉿- 하고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하더니 다시 책 읽기에 열중하는 남자. 그 남학생이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을 보니'호르몬 사전'이다. 정말이지, 논초이스들이 초이스들의 호르몬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는 공부와 연구에 몰두한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이렇게 말 한마디 할 시간 없이 공부를 할 줄은 몰랐다. 이 학교에서 나 버틸 수 있긴 한 걸까. 책보는 건 딱 질색이고 호르몬에도 딱히 관심이 없는데. 그저 엄마가 이곳의 학생이었다는 것. 그래서 이곳에 엄마가 나를 위해 남겨둔 흔적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이곳에 오게 된 거니까 말이다. 다음번에 보면 나도 똑같이 갚아줘야지 하는 생각으로 그 남학생의 이름표를 보자'유영재'라는 이름 세 글자가 떡하니 쓰여 있다. 기억해 두겠어. 유.영.재.

어쩔 수 없이 내 스스로 교무실을 찾기 위해 건물 안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다른 아이들과 달리 할일 없이 어슬렁어슬렁 복도를 걸어 나오고 있는 검은 머리의 남학생 하나가 보인다. 진짜 할일이 없는 건지 입을 쩍쩍- 벌리며 하품을 하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듯 사람들에게 툭툭- 부딪혀가면서도 별 다른 사과의 말을 하지 않는.. 이 학교에도 일진 뭐 이런 구시대적인 문화가 남아 있는 걸까? 어찌됬든 연구에 공부에 몰두해 있는 사람들 보다는 저 사람이라면 나의 질문에 답해주지 않을까 생각하며 대담하게 그 남자의 앞을 막아섰다. 그렇지만 그런 나는 신경도 쓰지 않고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는 검은 머리의 남자. 뭐야- 대체. 기분이 팍- 상하는 걸 느끼며 다시 뒤돌아서서 그 남학생을 향해 소리쳤다.

"저기요!"

내 부름에도 별다른 변화 없이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 남자. 지지 않겠다. 다시 한 번 그 남자를 향해 큰 소리로 소리쳤다.

"거기 앞에 가시는 분! 내 말 안 들려요?"

내 연이은 부름에 그 남자의 걸음이 멈췄다. 성공했다. 하는 생각으로 그 남자에게로 다가가는데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로 고개를 갸웃대다가 다시금 걸음을 옮기는 그 남학생. 뭐야 진짜!! 내가 나를 마치 투명인간 취급하는 그 인간의 행동에 그 남자의 옷깃을 덥석 잡아채자 그제야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보는 그 남학생.

"어떻게 여기 사람들은 하나 같이 사람을 다 무시하고 그래요?"

내 말에 상당히 당황한 눈으로 나를 보며 눈을 두어 번 껌뻑거리더니 자신의 옷깃을 붙잡고 있는 내 손을 신기하게 보는 그 남학생.

"너.. 내가 보여?"

"그럼 보이죠! 눈이 이렇게 달려있는데!"

"하하.. 이것 참-"

내가 자신을 알아보는 일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된다는 듯이 신기해하던 그는 곧이어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나를 향해 말한다.

"내 이름은 박지민이야- 이야- 누구랑 이렇게 말해보는 게 얼마만인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딱히 물어보지도 않은 이름을 말하는 그 남학생을 보고 있자니 내가 처음 봤던 한가한 이미지가 떠오르며 이 남자는 확실히 한가한 남자가 맞았구나 생각하게 됐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난 교무실을 찾아야한다고.

"네- 반가워요. 그보다 교무실이 어디 있어요?“

"아- 교무실은 삼층 오른편에 있는데, 교무실 찾는 거 보니까 오늘 전학 왔나봐?"

"네, 오늘부터 이 학교를 다니게 됐어요. 교무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전 늦어서 이만."

내가 지민을 향해 인사를 하고 교무실로 가기위해 뒤돌아서서 걸어 나가자 그런 내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는 지민. 그리고는 자신의 옆을 지나가는 학생을 툭툭- 친다. 지나가던 학생이 뭔가 느끼고 지민이 있는 곳을 보지만

"이상하다? 누가 친 것 같았는데-"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제 갈 길을 걸어 가버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지민의 입가에 다시금 미소가 피어오른다.

"날 알아봐주는 사람이.. 또 존재하다니."

그렇게 지민이 알려준 대로 삼층으로 올라오자 교무실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드디어 찾았다!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무실 쪽을 향해 걸어가는데 투다다다- 하는 바쁜 발자국 소리들과

​"전정국!! 멈춰!!!!!!!!"

다급한 남자의 목소리.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시야에 들어오는 검은 머리의 남학생 하나.

​"거기 학생! 피해!!"

교무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검은 머리에 심하게 흥분한 듯한 남자 아이 하나가 나를 향해 돌진하고 그 뒤를 빠른 속도로 뒤따르다가 검은 머리의 남자아이와 부딪히기 직전인 나를 발견하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소리치는 갈색 머리의 남자.

"으앗!"

그렇지만 이미 그 남자아이를 피하기엔 때가 늦은 듯 그 남자아이와 나는 정통으로 부딪혔고 그 남자아이 밑에 내가 깔린 꼴이 되어버렸다.

​"뭐야..."

방금 전만 해도 분노에 차 있었던 그 남자아이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똘망똘망한 두 눈으로 나를 보며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어리둥절해하더니 자신의 밑에 깔려있는 나를 보며 말하는 검은 머리의 남자아이.

"내가.. 이런 빨래판을 덮쳤을 리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