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조작 동아리: txt [단편]

여름이었다 - 범규

(범규시점)



유난히 햇살이 시리도록 투명한 날이었다.
바람마저 숨을 죽인 채 머물던, 조금은 서툴고 아득한 계절이었다.

친구들과 소란스러운 시간을 뒤로하고, 
잠시 열기를 식히려 들어간 골목 모퉁이의 편의점은 참 고요했다.


차가운 음료로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계산대 앞에 섰을 때였다.


카운터 아주머니께서 날 보며 다정하게 묻어나는 미소를
지으시더니, 손때가 살짝 묻은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하나
건네주셨다.




"학생, 이거 어떤 여학생이 전해달라는데?"




아주머니께서 내민 건 낯선 학교의 교복 명찰이었어.
얼어붙은 듯 받아든 명찰 표면,
그 위에 맑게 새겨진 세 글자를 마주한 순간 거짓말처럼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내 삶에서 단 한 순간도 지워진 적 없던 이름이
그곳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여름'


명찰을 쥔 손끝이 덜덜 떨려왔다.
놓칠세라 명찰을 꼭 쥔 채, 가빠오는 숨을 누르며
아주머니께 여쭤봤다.




"저기, 혹시 그 여자애 어느 쪽으로 갔나요?"

"음.. 저기 왼쪽 골목길!"

"네, 감사합니다!"




뒤를 돌아 유리문을거칠게 밀고 뛰쳐나갔다.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거리 위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것도 잊은 채 무작정 왼쪽을 향해 달렸다.


귓가에는 오랜 시간 먼지가 쌓여있던 그 시절 그 애의 목소리가
세차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




어릴 적 방학 때,
나는 소음 가득한 도시를 떠나
할머니가 게시는 외딴 시골마을로 내려갔었다.

매미 소리만 가득한 나무 그늘 아래 홀로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던 참이었다.


그늘이 아스라이 드리워진 낡은 평상 위로,
싱그러운 단발머리를 찰랑이는 아이가 기적처럼 불쑥 나타났다.




"너는 누구야?"

"어..어,, 난 최범규.."

"이름 되게 멋있다! 나는 한여름이야!"




여름날의 푸른빛을 고스란히 닮아있던 그 애는,
그렇게 내 황량했던 계절의 유일한 구원이 되어주었다.

둘만의 비밀 같은 추억들이 소중하게 차곡차곡 쌓여 갈 때쯤,
잔인하게도 내가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찾아왔다.


슬픔이 가득했던 시골 버스 터미널,
내 옷소매를 꼭 쥔 그 애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범규야, 너 돌아가도 나 꼭 기억해야해...!"

"난 한여름 너 이름만 봐도 기억할 수 있어."

"진짜지? 우리 꼭 만나자. 언제일지는 몰라도."



▪︎▪︎▪︎




그리고 다시 현재.

숨이 가쁜지도 모르게 달렸었다.

마침내 멈춰 선 골목의 끝,
눈부신 하얗게 부서지는 햇살 속에서 기적처럼 익숙한 뒷모습이
걸어가고 있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그 애의 뒤에 섰다.

그리고 터질 것 같은 마음을 뒤로 한 채 작은 어깨를 톡톡, 두르렸다.




"저기... 한여름. 맞지?"




내 떨리는 목소리에 가만히 뒤돌아본 그 아이가.

이름 세 글자만으로도 내 모든 계절을 단번에 되찾아준
나의 여름이가,

그 시절 툇마루에서 보여주었던 가장 투명한 미소로 나를 보며 
다정하게 웃어주었다.




"진짜 기억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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