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밥은 꼭 챙겨 먹고."
터미널 앞에서 어머니의 마지막 잔소리가 이어졌다.
"엄마, 저 이제 스무 살이에요."
"스무 살이면 뭐 해. 엄마 눈에는 아직 애지."
명재현은 피식 웃으며 캐리어 손잡이를 잡았다.
"다녀올게요."
버스 문이 닫히고, 창밖으로 부모님의 모습이 점점 멀어졌다.
처음이었다.
혼자 서울로 향하는 것도, 가족과 떨어져 살아보는 것도.
고등학교 내내 꿈꿔 왔던 대학 생활.
친구들과 밤새 술도 마시고, 축제도 다니고, 동아리도 들어가고.
무엇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가장 기대됐다.
'잘 지낼 수 있겠지.'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서울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높게 솟은 건물들과 끊임없이 오가는 사람들.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이상하게도 가슴은 설렜다.
명재현은 휴대폰 지도를 몇 번이나 확인하며 대학 기숙사 앞으로 향했다.
커다란 건물 앞에는 부모님과 함께 온 신입생들로 북적였다.
"신입생이세요? 여기 서류 확인하고 올라가시면 됩니다."
사감 선생님의 안내를 받고 방 번호가 적힌 열쇠를 건네받았다.
306호.
'룸메이트는 어떤 사람일까?'
좋은 사람이면 좋겠다.
같이 야식도 먹고, 시험 기간엔 밤새 공부도 하고, 술 한잔 기울이며 고민도 털어놓는 그런 친구.
그런 상상을 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덜컹.
캐리어를 끌고 306호 앞에 선 명재현은 크게 심호흡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문을 열었다.
끼익.
방 안은 조용했다.
창가 쪽 침대에는 이미 짐이 정리되어 있었고, 한 남자가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검은 후드티.
무표정한 얼굴.
이어폰 한쪽을 낀 채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
잠깐의 정적.
명재현이 먼저 활짝 웃었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같이 쓰게 된 명재현입니다."
남자는 잠시 바라보다 짧게 입을 열었다.
"태산."
끝이었다.
'...끝?'
명재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해."
태산은 손을 한 번 내려다보더니 가볍게 악수만 하고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응."
명재현은 머쓱하게 손을 거두었다.
'엄청 과묵한 사람이네.'
분위기를 바꿔 보려 애써 말을 이어갔다.
"공대라고 들었는데 무슨 과야?"
"컴퓨터공학."
"오, 멋있다."
"..."
"난 예대!"
"..."
"사진 전공."
"...그래."

대화가 5초를 넘기지 못했다.
명재현은 괜히 캐리어만 만지작거렸다.
'이렇게 조용한 사람도 있구나.'
짐을 정리하던 그는 슬쩍 태산을 바라봤다.
책상 위에는 전공 서적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고, 침대는 호텔처럼 정리돼 있었다.
반면 자신의 캐리어 안은 옷이 뒤엉켜 난장판이었다.
"하하..."
민망하게 웃으며 옷을 꺼내던 순간.
툭.
양말 한 짝이 태산 발밑으로 굴러갔다.
"...죄송."
명재현이 허겁지겁 주우려는데 태산이 먼저 집어 들었다.
"정리 좀 하고 살아."
덤덤한 한마디.
순간 명재현의 입술이 삐죽 나왔다.
'처음 만난 사람한테 너무한 거 아니야?'
"원래 처음엔 다 이런 거지."
"난 아니었는데."
"..."
"..."
또다시 찾아온 정적.
그때였다.
꼬르륵.
조용한 방 안에 배에서 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명재현은 얼굴이 빨개졌다.
"아..."
태산은 처음으로 그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봤다.
"...안 먹었어?"
"아침부터 정신없어서."
잠시 침묵하던 태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
"응?"
"학식 먹으러 갈 거면 지금 가."
"같이?"
"...나도 밥 먹어야 하니까."
퉁명스러운 말이었지만, 명재현은 괜히 웃음이 났다.
'생각보다 나쁜 사람은 아닐지도.'
그는 얼른 지갑을 챙기며 태산의 뒤를 따라나섰다.
서울에서 처음 만난 사람.
무뚝뚝하고 말도 없고 첫인상은 최악이었지만.
명재현은 아직 몰랐다.
앞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게 될 사람이, 바로 저 남자라는 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