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ZLINE All rights reserved.죽음이 가까워지면 어떤 기분일까.
그게 항상 궁금했다.
영화에선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울고, 사랑하는 사람을 끌어안고, 마지막 순간까지 살기 위해 발버둥친다.
나도 그럴 줄 알았다. 내가 죽을 날이 정해진다면, 나 역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죽을 날을 통보받고 나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아, 그렇구나.
그게 전부였다.
“한 달 정도... 남으셨네요.”
의사의 목소리가 조용한 병실에 울려퍼졌다.
내가 아무말도 하지 않자 의사는 앞에 놓인 차트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확한 날짜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지금 상태로는 ...”
“얼마나 ... 남았어요?”
“... ...“
”대충이라도 알려주세요.“
잠시 의사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길어봐야 석 달입니다.”
석 달이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석 달이면 약 90일. 90일 정도면 그 안에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을까. 여행을 갈 수도 있고, 맛있는 걸 충분히 먹을 수도 있고,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고.
......물론 나는 그럴 사람이 없지만 말이다.
생각보다 담담한 내 대답에 의사는 놀란듯 눈을 크게 떠보이더니 이내 차분함을 되찾고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괜찮으세요?”
“네”
“정말... 괜찮으세요?”
“네”
거짓말이었다. 그 누가 곧 죽는다는데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가. 하지만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오진 않았다. 의사는 내가 적잖이 충격을 받아서 그런가보다 라고 생각하겠지. 아니면 아직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런거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이 병을 진단받았을 때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살고싶다는 생각을 해본지는 꽤 오래됐다. 그래서일까. 막상 죽는다는 말을 들어도 무섭지가 않았다. 그저... 조금 귀찮을 뿐이었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것들이 많아서.
.
.
병원을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펼치는 대신 하늘을 그대로 올려보았다. 차가운 빗방울들이 내 얼굴 위로 떨어졌다. 그러고는 주변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누군가는 우산을 쓰며 걸어가고 있고, 누군가는 연인과 손을 맞잡고 나란히 걷고 있으며, 어떤 아이는 엄마 손을 꼭 잡고 뛰어가고 있었다.
평범한 하루. 나한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하루.
그치만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세상은 내가 죽는다고 해서 멈추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었다.
갑자기 진동하는 전화에 생각을 멈추고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들었다. 오후 6시 30분. 알림창에 메시지 한개가 와있었다.
[ (광고) 새로운 게임이 출시되었습니다! ... ..... ]
평소엔 무시했을 문자를 오늘은 왠지 눌러보고 싶었다. 눌러보니 새로운 게임이 나왔다는 광고였다. 화면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일러스트가 그려져있었다. 어딘가 무서워보이는 성 하나와 붉은 달, 그리고 그 아래 서 있는 남자들.
한 명은 검을, 한 명은 책을, 한 명은 머리에 왕관같은 걸 쓰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은 얼굴이 가려져있었다. 나는 그 화면을 몇 초 바라보다가 화면을 끄려 전원 버튼을 눌렀다.
그때였다. 화면이 깜빡거리면서 흐릿하게 창이 하나 생겼다.
[ 당신의 생을 바꿀 단 한 번의 기회입니다. ]
몇 초가 지났을까, 화면에 자리해있던 광고는 사라지고 평범한 인터넷 화면만 띄워져있었다.
“.... 되게 기분 나쁜 광고네.”
.
.
집에 들어가 자연스레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 안에는 생수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들 뿐이었다. 먹는 것을 포기하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석 달. 길어야... 석 달이라...
“... 뭘 해야하지.”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해봤다. 죽기 전에 뭘 해야할까 이런 생각.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여행?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음식?
먹고 싶은 것도 딱히 없었다.
사람?
연락할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면 난 도대체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살아온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을 바라보니 아까 봤던 게임 광고가 떠있었다. 또 이러네... 무시하려는 찰나,
[ 당신은 정말 살고 싶지 않습니까? ]
음... 이번엔 확실히 뭔가 이상했다. 단순 광고가 아니라 보이스피싱 같은 뭐 그런건가? 싸한 느낌에 폰을 들어 전원을 끄려고 버튼을 눌렀다.
“뭐야... ...“
아까와는 달리 화면을 꺼도, 눌러봐도 창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 화면 아래에 작은 버튼이 두 개가 생겼다.
[Yes] or [No]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Yes] 를 눌렀다. 그러자 화면이 검게 물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새로운 창이 하나 더 생겼다.
[ 정말입니까? ]
“... ...”
또 다시 선택지가 나타났다. 이번에도 고민없이 [Yes]를 눌렀다. 그러자 또 창이 하나가 생겼다.
[ 정말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
계속 되는 물음에 조금 짜증이 났다. 나는 화면을 노려보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하아... 살고 싶지 않다니까!!!”
그 순간, 모든 창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광고도, 문자도... 모든 게 사라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거지... 창이 사라지니 긴장이 풀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쉬었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다시 폰을 잡으려는데, 그때 화면에서 눈도 뜰 수 없을만큼 밝은 빛을 내뿜더니 동시에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눈을 차마 뜰 수 없어 눈을 감으며 귀를 두 손으로 꼭 막았다. 점점 정신을 잃어가는 것이 같아 필사적으로 정신을 붙잡으려했지만 흐려져만 갔다.
그리고, 세상이 뒤집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