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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떠보니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느껴지는 이상한 냄새. 쾌쾌한 흙냄새와 향기로운 꽃향기.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여긴 ......”
주변을 둘러보니 모르는 장소인게 확실했다. 분명 난 집에 있었는데, 어째서 이런 곳에 와있는거지?
의문을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다리를 굽히는데 이상하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 ......”
몸이 이상했다. 분명 조금전까지만해도 다 죽어가던 몸이었다. 헌데 지금은 너무나도 멀쩡했다. 내 두 손을 펼쳐 내려다보았다.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 병 때문에 말라비틀어진 손이 아니었다. 피부에는 없던 생기가 돌고 있었다.
나는 다급히 내 몸을 더듬었다. 아프지 않았다. 숨이 가빠오지도 않았다. 매번 가슴을 짓누르던 통증도 없었다.
“뭐야...... 내가 꿈을 꾸는건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폈다. 어두운 밤 풍경에 검은 나무들, 붉은 꽃들이 널려있는 넓은 정원인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성.
”여기가... 어디야.“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다급히 주머니를 확인해봤지만 주머니도 없을뿐더러 있어야할 핸드폰도 없었다. 대신 낯선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검은.
“이게 뭐지........”
손목을 한 번 쓸어내리는 순간, 눈앞에 무언가 나타났다.
[ 게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나는 그대로 굳을 수밖에 없었다. 아까 핸드폰에서 봤던 창이 이젠 내 눈앞 허공에 띄워져있었다.
[ 플레이어의 신원 확인 중 ....... ]
[ 확인 완료. ]
[ 플레이어의 정보를 확인합니다. ]
[ 이름 : 이여주 ]
[ 나이 : 22 ]
[ 특징 : 삶에 미련이 없음. 시한부. ]
시한부. 그 단어를 보는 순간 숨을 쉬던 것을 멈췄다. 병원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길어야 석 달이라는 말.
“.......장난하지 마.”
[ 메인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
“잠깐.”
_ 모든 공략 대상의 호감도를 100으로 만드십시오. _
“잠깐만. 이게 뭐야?”
나는 눈을 크게 떴다.
[ 퀘스트 완료시, 당신의 소원을 하나 들어드립니다. ]
“소원.......?”
[ ! 주의 ]
[ 본 게임의 난이도가 매우 높습니다. ]
[ 공략 대상의 호감도가 0 이하로 떨어질 경우, 플레이어에게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
[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시간은 365일입니다. ]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손목에 있던 문양이 빛을 내며 숫자를 띄웠다. 내게 남은 시간에 대한 타이머였다.
[365:00:00:00]
나는 그 숫자를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왜”
“왜 1년인데?”
답을 해줄줄 알았던 시스템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내 손목을 붙잡으며 말했다.
“내가 죽기까지 길어야 석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 ...... ]
“왜 나한테 1년을 줘?”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주저앉았다. 정말 이상한 꿈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리가.
“하아....... 그래. 꿈이네.”
그렇게 생각했다. 꿈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게 이해가 됐다. 게임 시스템도, 내가 입고 있는 이상한 옷도, 처음 보지만 어딘가 익숙한 저 성도, 내 몸이 멀쩡한 것도 전부 꿈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나는 다시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일어나면... 병원 침대겠지.”
“......”
천천히 시선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바지에 검은 코트. 그리고 허리에 달린 날카롭게 생긴 검.
낯선 사람이 풍기는 쎄한 기운에 숨을 삼켰다. 그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 그쪽은 누구지?”
낮고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 남성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여긴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점점 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생생했다. 말소리, 내 앞에 있는 남자 그리고 주변 풍경들까지. 나는 고민을 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가... 어디에요?“
남자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여기가 어디냐고요.”
“그쪽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른다는 건가?“
”네“
”그럼.... 그쪽은 누구지?“
나는 입을 다물었다. 누구냐고 묻는다면 뭐라 답해야할까. 이 세계 사람도 아닌데, 눈떠보니 게임 속으로 들어왔다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게 분명했다. 그때,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 서브 퀘스트 ]
_ 공략 대상에게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_
나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혹시 이 앞에 있는 사람이 공략 대상일까. 그렇다면 거짓말을 하면 안되는데...
“저는 .......”
입이 떨어지지 않자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남자의 시선이 날카롭게 바뀌었다.
“말해.”
“......“
”그쪽이 누구인지.“
”저도... 제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어요.“
내 말에 남자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 뭐?“
”저도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고 제가 왜 여기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무심코 고개를 내려 내 손목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시간은 365일 그대로였다. 내 말을 듣던 남자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내 손목에 있던 문양을 보았는지 남자의 눈빛이 갑자기 변했다.
“그 문양.”
“어디서 얻었지?”
“이거요?“
”모르겠어요....“
”누가 직접 새긴건가?”
“모른다니까요.”
그 남자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에 손을 가져다댔다. 난 그순간 위협을 느껴 뒷걸음질을 쳤다.
“ㅈ...잠깐만요.”
“저 아무것도 안했어요.”
“아직 모르는 일이지. 나중에 뭘 할지 어떻게 알고?”
“제가 뭘 했는데 이러세요.“
”전 진짜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자 남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말했다.
”..... 이상한 여자군.“
“감히 소리를 지르다니. 죽고 싶은건가?”
“네”
내 대답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표정 변화없이 말했다.
“죽고 싶어요.”
정말이었다. 곧 죽을 예정이었고 죽는 것이 두렵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그런데 남자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나를 한동안 바라보기만 했다.
“왜... 그렇게 보세요?”
남자는 그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쪽.”
“네?”
“방금.... 뭐라고 했지?”
“죽고 싶다고요.”
그 순간. 또 다시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나는 본능적으로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도 시스템 창이 보이려나. 하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남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 축하드립니다. 첫번째 공략 대상을 발견하셨습니다. ]
[ 공략 대상 1 ]
[ 이름 : 김태형 ]
[ 직위 : 북부 대공 ]
[ 현재 호감도 : -30 ]
[ !주의 ]
[ 공략 난이도 : ★★★★★ ]
[ 공략 대상은 당신을 매우 싫어합니다. ]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내 앞에 서있는 남자가 그러니까... 북부 대공. 김태형. 그리고 호감도 -30...? 내가 이 사람을 공략을 해야된다고? 그것도... 호감도 100까지?
“저기요.”
“왜.”
“혹시...... 저랑 친해지고 싶으세요?”
[ 호감도가 감소했습니다. -30 -> -35 ]
“경비병. 이 여자를 지하 감옥에 가둬라.”
“잠...잠깐만요!!!”
“그리고.”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게 하도록.“
“저기....! 잠시만요!!!”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무래도 이 게임은 그냥 어려운 게 아닌, 생각보다 훨씬 고난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
.
현재 그의 호감도는 -35. 이정도면 공략 대상보다는 적군에 가까운거 아닌가. 난 손목에 있는 문양을 눌러 시스템을 다시 확인했다. 그제야 맨 아래에 보이는 주의사항이 눈에 들어왔다.
[ 주의사항 : 불필요한 접근을 삼가하십시오. ]
“..... 처음부터 알려주지 그랬어.”
“내가 이 사람한테 말을 걸면 안된다는 걸 왜 이제야...”
시스템이 너무 얄미웠다. 자동으로 한숨이 나왔다. 시작하자마자 공략대상에게 호감도를 올리긴 커녕, 깎이기만 하다니. 앞으로 135나 더 올려야된다는 생각에 막막해졌다.
그러곤 북부 대공, 그의 이름을 생각해보니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낯설지 않았다.
“태형 ........”
태형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러자 그의 눈이 티는 안 나지만 미세하게 커졌다. 그리고 또 시스템이 울렸다.
[ 호감도 1 상승. -35 -> -34 ]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있었다. 뭐지? 호감도가 왜 갑자기 오른거지? 이상해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가 먼저 시선을 피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분명 똑똑히 보았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혹시... 부끄러우세요?”
“......아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근데 귀가 왜 그렇게 빨개지셨어요?“
“.........”
태형의 얼굴을 바라보니 계속 눈을 피하며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고 하고 있었다.
[ 호감도 상승! -34 -> -32 ]
”........“
그는 분명 날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나. 근데 이런 칭찬에 호감도가 올라간다고? 이해할 수 없었다.
“칭찬에.... 약하신가봐요?”
“..... 닥쳐.”
[ 호감도 상승! -32 -> -30 ]
“.......?”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자 태형은 인상을 찌푸리며 노려보았다.
“왜 그렇게 자꾸 쳐다보지?”
“아니.... 그냥.....”
“귀여우신 것 같아서요.”
“........”
그러자 아까와는 완전히 달라진 분위기에 당황해 그의 얼굴을 다급히 쳐다보았다. 붉어졌던 얼굴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고 오히려 더 차가워진 눈을 하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 호감도 하락! 도대체 뭘 하신거에요! -30 -> -35 ]
“경비병.”
“네? 아니... 자...잠깐.“
”지금 당장 데리고 가.“
”저..저기요 잠깐만요.“
”왜 그러지.“
”저.... 정말 여기서 쫓겨나요?“
”그렇지.“
”하지만 저 진짜 갈 곳이 없어요.“
”내가 알아야되나?“
그러자 태형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리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니까 .... 하루만이라도 여기 있게 해주시면 안돼요?“
”싫다.“
”네? 왜요?“
”내가 허락하지 않으니까.“
”.... 그럼 제가 살아남도록만 좀 도와주시면 안될까요?“
”싫다고 했다.“
”너무 단호하시네...“
”그쪽은 내 말을 전혀 듣지 않는군.“
”그쪽도 제 말을 안 들어주시잖아요!!“
”......”
그는 정말 한결같이 차가웠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그때였다. 태형이 갑자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자 그가 걸음을 멈추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말없이 나에게 손을 뻗었다. 나는 몸을 굳혔다. 혹시 날 때리려나? 그의 손이 점점 내 얼굴 가까이로 다가왔다. 눈을 질끈 감았다.
“피식 - ....”
“이게 붙어있더군.”
그는 꽃잎을 떼어내고는 아무렇지 않게 손을 내렸다.
“.......”
내 심장이 이상했다. 그냥 가까이 있었을 뿐인데. 이 사람의 숨결이 느껴졌다. 너무 가까워 괜히 시선을 피했다.
“감사합니다.”
“뭐가 말이지?”
“꽃잎... 떼어주신거요.“
”.... 저런 이쁜 꽃과는 굉장히 안 어울려서.“
그의 대답에도 기분 나쁨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웃음이 나올뻔했달까. 하지만 착각해서는 안된다. 이 사람은 나를 지하 감옥에 넣으려고 한 사람이고 아직 호감도는 -35에 머물러있었다.
“뭐.”
“저랑 거래 하나 하실래요?”
그러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거래?”
“제가 여기 머무르게 해주세요.”
“싫다고 했을텐데.”
”네가?“
”네“
”네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그의 말이 맞았다. 나에겐 아무런 능력도 없었다. 돈도 없고 집도 없고, 심지어 이 세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아직은.... 없어요.”
“근데 어떻게 도움이 되어주겠다는거지?”
“그건.....”
“참으로 이상한 여자군.”
그리고는 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경비병. 저 여자를....”
“아...! 잠시만요!!!“
나는 황급히 그의 옷소매를 잡았다. 그 순간 정적이 흘렀다. 나도 그도 그의 잡힌 옷소매를 바라보았다. 나는 천천히 손을 놓았다.
“아... 죄송합니다... 무의식적으로 그만...”
“........”
태형의 눈빛이 묘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빛이었다.
“네?”
“두번 말 안한다.”
”여기서 굶어죽고싶지 않다며.”
“적어도 죽기전까진 먹여주도록 하지.”
나는 그의 말에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 호감도 상승! -35 -> -30 ]
도대체 호감도가 오르는 기준이 뭐지. 별로 오를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 호감도가 5나 올랐다.
“안 올거면 그냥 거기서 죽던가.”
그의 말에 생각을 멈추고 급하게 그를 따라갔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죽기전까지 먹여주겠다고 하는 말이 왠진 몰라도 설레었다.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말은 누굴 얼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차갑고 무뚝뚝하지만 행동은 묘하게 다정했다. 그의 뒤를 따라가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 사람,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