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바투 범규] 아리도록

12화. 따라나서다

사실 여주는 잠들어 있지 않았다.

숨소리를 고르게 죽인 채, 범규가 조심스레 몸을 일으키는 기척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다.

옆방 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문 여닫는 소리가 났다.

기다렸다는 듯 여주도 몸을 일으켰다.

 

"…아가씨?"

 

깨어 있던 건 단이도 마찬가지였다.

 

"나갈 거야. 조용히 따라와."

"저도 갈게요, 아가씨."

 

 

 

*

 

 

 

둘은 서둘러 짐을 챙겨, 멀어지는 그의 발소리를 뒤쫓았다.

이번만큼은 그가 잠든 사이 몰래 사라지게 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숨어 걷는 밤길은 험했다.

돌부리와 나무뿌리가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어, 발밑을 살필 새도 없이 걸음을 옮겨야 했다.

앞서가던 범규를 놓치지 않으려 서두르던 여주가, 그만 발을 헛디뎠다.

 

"…악!"

 

억누른 비명이 새어 나오는 순간, 앞서가던 그림자가 번개같이 돌아섰다.

 

"…아가씨?"

 

숨을 곳도 없이, 두 사람은 그렇게 마주치고 말았다.

범규는 놀라움도 잠시, 곧장 여주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발목입니다.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범규의 손이 조심스레 발목을 감쌌다. 손끝이 스칠 때마다 통증과는 다른 열기가 함께 번졌다.

 

"많이 부었습니다. 오늘은 더 못 가시겠습니다."

 

붕대 대신 옷자락을 찢어 발목을 여미는 손길이 유독 조심스러웠다.

 

"…왜 그렇게 무모하게 뒤를 쫓으셨습니까."

"무모한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어요."

 

범규는 잠시 말을 잃은 채, 감아놓은 발목만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아프십니까."

"조금요. 그래도 참을 만해요."

 

거짓말이었다. 발목은 욱신거렸지만,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

 

 

 

결국 그날 밤은 근처 바위 그늘에서 야영하기로 했다.

모닥불 앞,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았다.

이윽고 단이가 먼저 자리를 피해 등을 돌리고 눕자, 불빛 사이로 둘만 남은 듯한 정적이 흘렀다.

 

"…무섭지 않으셨습니까. 이런 길을 따라나서는 게."

"무서웠어요. 그래도 당신 혼자 두는 것보다는 나았어요."

 

범규는 불빛에 비친 여주의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저는…… 늘 누군가를 지키려다 정작 소중한 걸 놓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번에도 그럴까 봐, 그게 제일 두렵습니다."

"놓치지 않으면 되잖아요. 이번엔."

 

그 말에 범규의 눈가가 붉어졌다. 손끝이 여주의 손등 위로 조심스레 겹쳐졌다.

 

"…알겠습니다..."

 

여주는 그 손을 마주 쥐며 조용히 웃었다.

모닥불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는 동안, 둘은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서로의 온기만 나눴다.

 

 

 

*

 

 

 

그러나 그 평온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밤중, 사방에서 횃불과 함께 관복 입은 무리가 들이닥쳤다.

관복이었지만, 범규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조승학의 사병들이 관군의 탈을 쓴 것이었다.

 

"…최범규를 잡아라!"

 

범규가 검을 뽑아 들며 여주 앞을 막아섰다.

하나둘 베어 넘겨도 끝없이 밀려드는 수에, 몸이 점점 뒤로 밀렸다.

팔뚝과 옆구리에 얕은 상처들이 늘어갔지만, 범규는 여주 쪽으로는 단 한 발짝도 내주지 않았다.

 

"단이야, 아가씨 모시고 뒤로!"

 

그때, 어둠 속에서 또 다른 그림자가 뛰어들었다.

칼을 휘두르며 자객들 사이를 헤치고 나타난 사내였다.

 

"아가씨! 접니다, 연준입니다!"

 

김유형의 오른팔, 연준이었다.

 

"대감마님 명입니다. 아가씨만 모셔 오라 하셨습니다."

"안 돼요! 저 사람을 두고는 못 가요!"

"시간이 없습니다, 아가씨!"

 

여주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연준은 잠시 망설이다 여주의 뒷목을 짧게 짚었다.

세상이 아득해지며, 여주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정신을 잃은 여주를 업은 연준이 몸을 돌리자, 단이가 재빨리 뒤를 따랐다.

 

 

 

*

 

 

 

멀어지는 두 사람의 등을 향해, 범규는 소리 없이 입만 벙긋였다.

 

가시오. 부디, 무사히.

 

홀로 남은 범규는 몰려드는 자객들을 향해 다시 검을 곧추세웠지만, 중과부적이었다.

여기저기 베인 상처에서 피가 흘렀고, 결국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이 꺾였다.

억센 손들이 그를 짓눌러 완전히 무릎을 꿇렸다.

 

"…최범규를 포박하라!"

 

밧줄이 몸을 옥죄는 순간에도, 범규의 눈은 여주가 사라진 어둠 저편을 향해 있었다.

이대로 끌려가더라도, 적어도 그녀만은 무사히 빠져나갔다는 사실 하나로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밧줄에 끌려 일어서는 그의 입가에, 옅은 안도의 미소가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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