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18화. K.O.

sophie97
2026.06.23Visualizzazioni 64
그날 밤, 얼마나 오랫동안 그 곳에 서 있었는지
모르겠다.
드디어....
그가 한 발, 한 발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숨죽여 따라 걸었다.
그가 차에 타서 시동을 걸고,
또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난 내 차에 앉아 그가 먼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가
그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가 어느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
그제야 집으로 돌아왔다.
걱정되는 마음에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복도에 홀로 서 있던 그의 뒷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한 숨도 못 잔 채,
날이 밝아 오는 것을 확인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오늘 해야 할 번역 일이 많은데,
아직도 그가 서 있을 것만 같은 복도를 지나,
그가 풀썩 주저 앉았던 소파를 볼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작업하기 좋은 장소를 고민하다가,
김포의 그 카페가 떠올랐다.
짐을 챙겨서 그곳으로 향했다.
하루 종일 한 자리에 앉아 작업을 모두 끝내고 나서야
일어났다.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훈지씨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오늘 스케줄 끝나고 선생님 작업실로 갈께요.
저녁 8시쯤 될 거 같아요.]
'오늘?
어제 밤 한 숨도 못 자고,
오늘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일만 했는데...'
시계를 보니, 5시가 조금 넘었다.
빨리 서울로 올라가서, 좀 씻고 쉬고 싶었다.
피폐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집에 도착하자 마자 샤워를 하고,
메이크업을 다시 했다.
시계를 보니, 7시가 지나고 있었다.
오피스텔로 넘어가서 소파에 잠깐 누웠다.
잠을 한 숨도 못 자서인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잠깐 눈만 붙이려 했는데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벨이 울렸다.
문을 열자,
그가 서 있었다.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아
나는 문을 열어 둔 채 한 쪽으로 비켜 섰다.
그가 말없이 안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소파가 아니라,
식탁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이쪽으로 와요."
말없이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어제 한 숨도 못 잤죠?
오늘 뭐는 먹었어요?
너무 힘들어 보여요."
사실 말 한마디도 하기 힘든 상태였지만,
고민하던 말을 드디어 꺼냈다.
"저..그만 하고 싶어요.."
"뭘요?"
"훈지씨.. 수업이요..."
"왜요?"
"지금 이 상태에서 어떻게 수업을 계속 해요?"
"지금 이 상태?
어떤 상태?
선생님도 나를 좋아하는 상태?
아니면 그걸 들키고 싶지 않은 상태?"
'뭐지...?
왜 이렇게 밀고 들어오는 거지...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훈지씨..나는 어제 정확하게 이야기 했잖아요.
그런 감정 아니라고..."
"나도 어제는 그런 건가 하고, 긴가 민가 했어요.
그래서, 너무 충격이었고 힘들었는데
어제, 밤새 생각해 보고 결론 내렸어요.
그리고, 오늘 만났을 때
선생님이 수업 그만 둔다고 하면
내 예상이 100% 맞는 거다 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감정이 아닌 사람이
어제 내가 집에 잘 들어가는지
확인까지 하고 갔어요?"
"네?"
"집에 가는 도중에, 신호 걸렸을 때 봤어요.
뒷차 운전석 의외로 잘 보이는 거 알아요?"
"그건 너무 충격을 받은 거 같아서,
위험할까봐 같이 간 거에요."
"그러니까..
감정이 없으면 충격을 받든 말든
신경을 안 쓰는 게 맞는 거잖아요.
그리고, 지금 그 얼굴...
잠 못 자서 푸석하고, 밤새 울어서 눈 부어 있고...
그런데 아무 감정 없다는 말을 믿으라구요?"
잠을 못 자서 머리가 안 돌아가는 건지,
다 맞는 말을 해서
대꾸할 만한 말이 안 떠오르는 건지...
머리 속이 뒤죽박죽이었다...
"훈지씨 말대로 내가 훈지씨를 좋아한다고 쳐요.
우리 나이 차이가 10살이에요.
그리고, 훈지씨 아이돌 활동도 하고 있는데,
또래 여자 아이돌도 아니고,
나랑 스캔들이라도 나면
그거 어떻게 감당할 건데요?"
"그 나이 차이는
왜 그렇게 본인에게만 칼같이 적용시켜요?
소설 속에서도 답답했다면서요.
캐나다에서 나이 차이 많은 커플 많이 봤다면서요.
그리고,
내가 아이돌 활동을 서른 살 넘어서,
마흔 되어서도 해요?
아이돌 활동은 어차피
나이 때문에 언젠가는 한계가 있어요.
스캔들은 또 왜요?
내가 지금 결혼하자고 한 것도 아니고,
좋아지고 있다는 걸 말하고 있는 건데
왜 혼자 미리 앞서 가요?"
더 이상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사람이 이 정도로 논리적인 사람이었나...
그래, 소속사!!'
"이 사실 김대표가 알게 되면"
그가 내 말을 잘랐다.
"대표님은 내 매니지먼트 해 주는 사람이지,
내 인생을 좌지우지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사실 그에게 수업 종료를 알리고,
관계를 끊기 위해서 만난 건데...
설득을 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 사람과 관계를 더 발전시켜 보고 싶다
느낀 게 몇 번이나 있었어요?
그런 느낌이나 기회는 의외로
인생에서 자주 오지 않아요.
나는 지금 우리가 굉장히 운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끌리는 사람을 만났고,
상대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거.
내가 틀렸어요?"
'밤새 준비하고 온 건가...'
나는 더 이상 반박할 힘도 없었다.
"....
배고파요..
나 오늘 한 끼도 못 먹었어."
"아, 정말?
그럼 저녁 먹으러 나가요. 진작 말하죠..
뭐 먹고 싶어요?"
다시 따뜻해진 그를 보니 마음이 놓였다.
"아...자꾸 신경 쓰이게 하네 정말.." <19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