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33화. 도돌이표




그가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떠나고 난 후,

우리는 일주일이 넘도록 서로에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연습실로 

다른 배우들 영어 수업을 위해 드나들었고, 

때로는 김대표와 마주치기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훈지씨는 한국에 와서도 영화 촬영으로 바빴고,

당분간 영어 수업도 잡혀 있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소리 없이 각자의 일상을 살고 있었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리고, 우리가 서로 만나기 전처럼...







그날도 한 배우의 수업을 마치고,

나는 연습실에서 수업 자료를 챙기고 있었다.





누군가가 연습실 쪽으로 

급하게 뛰어오는 오는 소리가 들렸다.







'뭘 놓고 갔나?'







나는 수업을 마치고, 

먼저 자리를 떠난 배우가 뭔가를 놓고 가서 

급히 돌아오는 거라고 생각했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하지만,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그 배우가 아니었다.



훈지씨였다.







"사무실 갔다가 오늘 수업 있다고 얘기 들었어요.

 우리 잠깐 얘기 좀 해요."







나는 급히 그의 시선을 피하고,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곁을 지나치려는 순간,

그가 내 손을 붙잡았다.







"나는 더 이상...할 얘기 없어요.

 이거 놔요."







"그럼 내 얘기라도 들어줘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을 뿌리치고 연습실을 나왔다.




그가 따라 내려오는 발소리가 계단에 울렸다.

하지만 나는 뒤돌아 보지 않았다.







랩탑을 먼저 뒷좌석에 싣고

운전석 문을 여는 순간,

그가 문을 잡고 말했다.





"차 키 나 줘요. 내가 운전할께요."





"여기 회사 앞이에요.

 비켜요."





"나 못 비켜요. 아니 안 비켜요.

그러니까 차 키 빨리 줘요.



 우리 어디 가서 얘기 좀 해요."







회사 앞에서 더 실랑이를 벌일 수도 없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키를 건네고 조수석으로 갔다.







"출발할께요. 

 어디로 갈까요?
 
 어디가 편하겠어요?"







"우리 집으로 가요."







"알겠어요."







가는 동안 내내,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훈지씨는 몇 번이나 내 쪽을 바라봤지만 

끝내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가,

조심스럽게 무릎 위에 얹어 둔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뺐다.



훈지씨가 입을 떼는 순간,

내가 말했다.





"운전에 집중해요.

 얘기는 집에 가서 들을께요."









집에 도착한 나는 

긴장한 그가 더울까봐 에어컨을 먼저 켰고,

가방을 내려 놓고, 손을 씻고 나왔다.





그는 가만히 나를 지켜 보다가, 

내가 거실로 오는 것을 보고 소파에 앉았다.







"뭐 마실래요?"





"괜찮아요..

 아..물 한잔...아니..

 여기 와서 앉아요.

 내가 가져 올께요."







그는 익숙하게 선반에서 컵을 꺼냈다. 

물을 따라 두 잔을 가지고 와 

거실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가 앉자마자 내가 입을 열었다.







"훈지씨가 얘기 시작하기 전에 

 내가 먼저 해도 될까요?"







"그럼요.. 먼저 얘기해요."







"일주일 동안 많이 생각하고, 고민했어요.

 그리고...

 이제는 어느 정도 정리됐어요.



 이유가 뭐가 됐든,

 우리 서로에게 더 상처 주기 전에..

 여기서 끝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다시 시작하자는 그런 얘기라면 

 굳이 할 필요 없어요." 









"하...

 일주일 동안 내가 괴로워하고, 힘들어하고,

 대표님을 만나서 다짐을 받는 동안...

 당신은 날 밀어내고, 혼자서 정리를 다 끝낸 거에요?



 그리고, 내가 말도 꺼내기 전에 

 그렇게 칼 같이 끊는 거에요?'

 나 사랑한다는 거 맞아요?

 어떻게 그렇게 쉽게 끝내고, 정리가 돼요?"







나는 그의 눈을 바라봤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사랑했죠...

 그리고, 아마도 당분간은 그 마음이

 쉽게 없어지진 않겠죠.



 누가 쉬웠대요?

 훈지씨가 보기에는 내가 쉽게 결론내고, 

 통보하는 거 같아요?"







"오늘 만나지 못 했으면,

 내가 당신 따라오지 않았으면 

 그럼 그날이 우리가 보는 마지막 날이었다는 

 거잖아요?"







"도돌이표처럼 자꾸 되새기지 말아요. 훈지씨...

 그냥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한 말 듣고,

 오늘이 마지막 날이 되면 

 되는 거잖아요."







"아니요. "





그가 한층 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오늘을 

 당신 보는 마지막 날로 만들 생각 없어요.

 전혀...


 당신 말대로 내가 대표님과 당신 사이를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인 거라면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께요.



다시는 그런 오해 안 할께요."







"내가 계속 당신만 보고 있다고 했잖아요. 

 내 눈과 귀가 다 당신을 향해 있는데 

 도대체 뭘 더 어쩌라는 거에요.



 그냥 여기서 끝내요..

 힘들고 지치고...



 무엇보다 당신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내가 더 이상 보기가 힘들어요."



 





 "당신을 못 믿는 게 아닌데...



 나도 모르게 이성을 잃게 돼요.

 어느 순간 당신이 사라져버릴까봐 겁나요...



 미안해요.. 

 그러니까 제발 나한테 이러지 말아요..."







난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오늘 훈지씨 가고 나면 비밀번호도 바꿀거에요.

 앞으로 오지 않았으면 해요.

 잘 가요. "





난 침실로 들어가려다가,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다시 찾아오면...

 그 땐 내가 장소를 옮길 거에요."







그리고, 나는 침실로 들어왔다.



내가 다시 거실로 나갔을 때는...

제발 그가 그 자리에 없었으면 했다.





"흔들리지 마...제발..." <34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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