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66화. 밀당


[제목: 타짜 박훈지


 훈지씨는 여자에 대해 잘 아는 거에요,

 아님 나에 대해 잘 아는 거에요?

 마지막 메일의 제목을 읽고 나서,

 사실은 어젯밤에 한숨도 못 잤어요.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화가 나는 건지...슬픈 건지...

 도대체 내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결국...

 당신의 꾀에 넘어가고 말았네요.

 나는....

 이곳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

 좋은 이웃도 만나고,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일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어요.

 물론...나도 당신이 그리워요..

 다 잊었다면 거짓말이에요.

 아직도 기억하고, 생각나지만

 이전처럼 울거나 하진 않아요.

 당신도 나처럼 잘 지내고 있길 바랄께요.]





공항에서 헤어진 지 한 달이 훌쩍 지난 뒤,

처음으로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메일을 보내고 나니,

내 감정을 억지로 누르고 있을 때보다

훨씬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

 너무 힘들게 내 자신을 괴롭히진 않을래..

 보고 싶을 땐 가끔씩

 메일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내 마음이 가는대로 가다보면

 좀 더 명확해지지 않을까?'





밤새 이어진 고민도,

그동안 억눌러 왔던 감정도

이제야 풀리는 것 같았다.





한숨도 못 잔 탓에,

오전에는 잠을 좀 자고 늦은 오후에 되어서야

미겔의 카페로 갈 수 있었다.





미겔은 내가 들어서는 모습을 보자

굳어 있던 어깨의 힘을 풀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소피..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말도 없이 늦길래 걱정했어요.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요.. 아무 일도 없어요..

 어젯밤에 잠을 못 자서 오전에 좀 자느라고..

 이제야 나온 거에요.

 걱정 끼쳐서 미안해요. 미겔.."





"아무 일 없었다면 됐어요.

 혹시 어디 아픈게 아닌가 하고...

 오후에도 나오지 않으면

 집으로 찾아가볼 생각이었어요."




미겔의 그런 모습을 보자,

한국을 떠나기 전 보호자 역할을 해 줬던

김대표가 떠올라 미소가 지어졌다.





평소대로 커피를 시키고,

카드를 내밀었다.






미겔은 카드를 내 쪽으로 다시 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당신에게는 커피 값을 받지 않을 거에요."




나는 요새 그의 행동에서 짐작되는 것이 있어

단호하게 말했다.





"미겔.. 계산해 줘요."





그리고 오늘 내가 카페에 늦게 나온 걸로

걱정을 많이 했다는 그의 말을 듣고

예상할 수 있었다.




"나는 계산을 하고 싶어요.
 
 그래야겠어요."




미겔은 실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확실해요? 꼭 그래야겠어요?"




나는 흔들리지 않고 말했다.




"네. 확실해요.

 계산해 주세요."





미겔의 진심 어린 눈빛을 보자,

문득 이전에 훈지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 우리가 굉장히 운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끌리는 사람을 만났고,

 상대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거.]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서로의 감정이 한 방향을 향해 있기는

생각보다 어렵고, 드문 일인지도 모른다.





"미겔, 이따 카페 일 끝나고 나서,

 우리집에 와서 저녁 먹지 않을래요?

 한국 음식 괜찮다면 같이 식사해요.

 마리아와 안토니오도 함께

 초대하고 싶어요."





미겔에게도, 마리아에게도

내 마음을 분명히 해 두고 싶었다.





"어머니에게 물어보고 대답해 줄께요."




그는 기운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확인하고 알려줘요."




나는 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일을 시작했다.





얼마 후에,

미겔은 저녁 식사 초대에 응하겠다고 대답했다.




오늘은 오후 늦게 나오기도 했고,

계획하지 않은 저녁 식사 초대에

일을 많이 하지 못 하고 마무리했다.




집에 가는 길에 장을 보고,

서둘러 요리를 시작했다.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불고기와 계란말이를 준비하고,

한국에서 가져온 김과 햇반,

그리고 혹시 입맛에 맞을까 싶어 라면까지 함께

조촐한 한국 밥상을 차렸다.




근처에 한인마트가 있더라면

상차림이 좀 더 나았을텐데...

메뉴가 너무 소박해서 세 사람이 실망하지 않을까

슬쩍 걱정이 됐다.





"두 사람 마음이 가장 중요한 거 아니에요?"

<67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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