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시즌2)

99화. 꿀같은 여행


"미안해요.

 여행 계획도 같이 짜야 하는데,

 다 정아 씨한테만 맡겨 놔서..."





"괜찮아요.

 나는 지금 백수라 시간도 많고, 알잖아요?

 나 파워 J라서 여행 계획 짜는 거 좋아해요!!"


"참, 프리힐리아나를 맨 마지막 장소로 넣었어요.

 그곳에 훈지 씨랑 함께 했던

 기억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가장 맛있는 걸 제일 마지막에 먹는 마음이랄까?"





그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정아 씨가 한 거면 다 좋아요.

 그리고 얼마나 또 꼼꼼하게 짰겠어요.

 안 봐도 비디오지."





"아~ 드디어 내일모레면 출발이다!!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어요."





"일주일만 지내다 오는 게 아쉽기도 하다.

 일정을 좀 더 길게 잡을 걸 그랬나봐요."





"아니에요.

 여행이 너무 길어지면 피곤하잖아요.

 훈지 씨도 한국에 와서

 다음 촬영 준비하려면 좀 쉬어야죠."





"알겠어요. 세모네모!!

 나는 우리 세모네모 말 잘 듣는

 착한 어른이."





어느새 이틀이 지나고,

우리는 스페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긴 비행 시간이었고,

나란히 앉을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행복하고 즐거웠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우리는

호텔에 체크인한 뒤,

그 날은 푹 쉬기로 했다.




비행 시간이 길어서였을까.



우리 둘다 몹시 지쳐 있었고,

무엇보다 꼬질꼬질한 몰골이었다.





"훈지 씨.

 지금 너무 꼬질해 보이는 거 알아요?"





"아니... 세모네모. 자기도 장난 아니에요.

 지금... 아니에요.

 여자한테 이런 말 하면 실례지..."





"뭔데요? 나 그 정도라구요??"





"지금 머리카락 짜면 기름 나올 거 같아요."





"헉.... 정말 너무한다.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할 수가 있어요?"





나는 그의 말에 너무 창피한 나머지

앞질러 가버렸다.





"농담이에요. 농담!!

 기름이 흐를 정도는 아니고,

 파리가 미끄러질 정도?"





"그거나 그거나!!

 그리고 더러워서 파리가 꼬인다는 말이잖아요!!"





"아니, 아니. 그럼 그냥 반짝이는 정도로 할게요."





"아... 됐어요.

 나 파리 꼬일 정도로 꼬질꼬질하니까

 저 멀리서 따라와요.

 정말... 여자 마음을 저렇게 몰라!!"





"정아 씨가 먼저 시작했잖아요.

 나 꼬질하다고."





"'꼬질하다'는 어감이라도 귀엽죠!!

 나는 자기가 꼬질해서 귀엽단 뜻으로

 말한 건데..."





"... 그런 거였구나..

 그런데 거기다 대고 내가 눈치 없이

 기름 얘기를 했네...
 
 미안해요, 정아 씨."





우리는 호텔에 들어와

1박 2일의 묵은 때를 벗기고,

근처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

드디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구엘 공원으로 향했다.





"와.... 정아 씨가 왜 그렇게 여기 와 봐야 한다고

 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사람이 어떻게 이런 건축물을 만들 수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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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올해가 완공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2030년으로 늦춰졌대요."





"정말... 가우디란 사람, 대단하다.

 저 디테일 좀 봐요."





"내가 왔을 때보다 훨씬 많이

 완성돼 있어서 진짜 멋있다."





훈지 씨가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덕분에

우리는 비교적 자유롭게 손을 잡고

함께 돌아다닐 수 있었다.





구엘 공원에 갔을 때는

기념품 가게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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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대박!! 이거 왜 이렇게 귀여워.

 저것도 예쁘다..."





"정아 씨. 뭘 이렇게 많이 사요?"





"이런 건 하나씩 기념품으로 사야죠.

 너무 예쁘지 않아요?"





"내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데...

 다 타일이고, 다 알록달록하고."





"세모네모가 뭘 알아요.

 저기 서 있다가

 내가 계산할 때 카드나 줘요."




"알겠어요.... 계산할 때 불러요."




스페인의 뜨거운 햇살마저

반갑고 즐거운 나날이었다.





우리는 바르셀로나에서

프리힐리아나로 향하는 길에

피카소의 고향인 말라가를 들르기로 했다.



알카사바와 히브랄파로 성,

그리고 피카소 미술관까지.

지난번에 미처 가 보지 못했던 곳들을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우리는 중간중간 티격태격하며 다투기도 했지만,

늘 그랬듯 결국에는 함께였다.





드디어 여행지의 마지막 목적지.

프리힐리아나로 향하는 버스 안이었다.





"이곳은 공기의 냄새마저 다른 것 같지 않아요?"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훈지 씨에게 말을 건넸다.





"..."





"훈지 씨."





옆을 보니 그는 곯아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의 고개를 내 어깨에 기대어 주었다.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훈지 씨를 잊으려고 했다.

그리고, 내 인생의 의미를 다시 찾고 싶었다.




그런데 두 번째로 이곳을 찾은

지금은 그와 함께였다.

그리고, 나는 이전보다

훨씬 확고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일까?




프리힐리아나의 호텔에 짐을 풀고,

우리는 마리아와 안토니오, 미겔을 먼저 찾아갔다.




마리아가 차려 준 맛있는 집밥을 먹고,

와인을 한 잔씩 나누며

오랜만에 만난 기쁨을 나눴다.





그리고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정아 씨. 오늘 저녁 먹고

 그 언덕에 올라가 볼래요?

 우리가 일출을 함께 봤던 데요."





"응. 좋아요!!"




저녁을 먹고 한참을 걸어 언덕에 도착했다.




벤치에 나란히 앉아

스페인에서 함께 보낸 시간과

우리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 훈지 씨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훈지 씨... 지금 뭐하는 거에요?"






"너무 행복한데... 그런데 자꾸만 눈물이 나요."

 <100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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