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e volte
[Episodio 1] Povero ragazzo


You
"죄송합니다. 감기가 좀 심해서요. 네,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아버지를 마주칠까 황급히 통화를 마치고 주차장 밖으로 나왔다. 무작정 나오기는 했는데, 이제 어쩌지. 이것 또한 아무런 대책 없이 일을 벌인 내 잘못일까. 친구한테 전화라도 걸어볼까? 아, 이 시간에 친구집에 가는 것도 무척 실례구나.

그리고 무엇보다 연락할 친구가 없었다. 정말 소중했던, 또 나를 소중하게 여겨줬던 친구는 멀리 이사를 가버렸고, 어릴적 자주 어울려 다녔던 친구는 얼굴도 가물가물한지라 도와달라 하기가 민망했다.

거기에 가지고 있는 현금이라곤 단 10원도 없는 처지고, 그렇다면 내게 남은 선택지는, 혼자 정신 나간 사람처럼 쭉 걷기만 한다는 것.

이어폰을 끼고 잔잔한 음악을 재생했다. 역시 노래를 들으니 좀 나아지는구나. 이 거지같은 상황도 아름답게 느껴질 만큼. 뒷일은 정말 걱정이 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모든게 무서워서, 피하지 않으면 도저히 내 힘으로는 버틸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누군가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
"저기, 학생?"

부드러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한 남자가 아래를 가리키며 서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숙이고 보니, 내 하얀 운동화의 신발끈이 마구 풀어져 잿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아, 이거구나. 신발끈 묶으라고.

솔직히 말하자면, 고맙다고 하기 보다는 조금 귀찮았다. 이렇게 비가 오는데 어찌 끈을 묶으라고 하시는 건지요.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길 한복판에서 어느 여학생이 몸을 숙여 신발끈을 묶고 있는 꼴이 우습지 않을 수가 없었다.

You
"저기, 정말 감사한데요. 여기서는 끈을 묶을 수가 없지 않을까요?"

따지듯 하는 말투에 스스로도 조금 놀랐지만, 기죽지 않고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선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
"아, 미안해요. 그럼 잠시 제 차에 타실래요? 절대 이상한 사람은 아니니까 걱정 말고."

갑작스러운 남자의 제안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밖은 추운데, 나는 갈 곳이 없으니까. 잠시라도 시간을 떼울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You
"감사합니다. 되게 친절하시네요."

비에 젖어 더러워진 신발끈을 만지작거리다 무거워진 분위기에 못이겨 말을 꺼냈다.


???
"갈 데 없죠?"

You
"네?"

하, 지금 사람 놀리는 건가? 훅 치고 들어오는 남자의 질문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어서, 내가 무어라 할 여지가 없었다.

그저 당신이 예의가 없었다고 조금 쏘아붙인다면 모를까, 왜 생사람을 잡느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나는 목적지 없이 쭉 직진만 하다 이 남자를 만난 것이 맞고, 그렇기에 그의 말을 긍정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You
'그런데? 그렇게 해서 내가 이 남자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게 뭐야? 동정? 연민?'

잠시 생각에 잠긴 나는 남자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 의도부터 파악해보기로 하였다. 내가 갈 곳 없는 게 맞다고 대답했을때, 남자가 알았다고 하고 말 거라면 묻지도 않았을 것이다. "갈 데 없죠?" 라니, 거의 확신하고 던진 말 같은데, 그럼 결론은-

이 사람은 내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고, 지금 그걸 본인이 해결해 주려고 하는 것이다.


???
"저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좋아. 이렇게 된 거, 도와주려는 그 예쁜 마음, 끝까지 지킬 수 있도록 내가 나서서 도와야지. 이건 운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나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기회니까, 제 발로 찾아온 기회를 마다하는 건 정말 바보같은 짓이니까.

You
"그쪽은 지금 어디 가세요?"

당신이 나를 어디론가 데려갈 생각인 것 같으니, 그게 어딘지 나도 좀 알아야겠어요. 나는 감사 인사까지 미리 해두고싶은 마음을 반듯이 접어두고 간단한 질문부터 입밖으로 내었다.


황민현
"내 이름은 그쪽 아니고 민현, 황민현이에요."

내가 원했던 것과는 다른,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는데도 왠지 실망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기뻐서, 이런 내가 무척이나 놀라워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나를 빤히 쳐다보던 남자, 아니 민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황민현
"음, 어디가냐고 물었죠? 저는 집 가요, 집."

내가 잘못들은 거 아니지, 그러니까 지금 건장한 성인 남성이 자신의 집에 나를, 여학생을 들이겠다는 거? 아니, 처음부터 내가 오해한 걸지도 몰라. 본인은 마음도 없는데 나 혼자,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생각이 나를 괴롭혀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민현은 그런 나를 신기한 듯 바라보다 혼자 쿡쿡 웃기 시작했다. 뭐야, 왜 저래. 내가 자신을 쏘아보자 당황한 민현은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며 말을 이어갔다.


황민현
"네가 갈 데 없는 게 맞으면, 너랑 같이 갈 거예요. 우리 집."

그렇게 나는, 신의 장난에 말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