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leno
15. Invasione


***


윤정한
뭐야, 아가씨 왜 여기서 자고 있어?

정한은 거실 소파에 누워 곤히 잠든 여주에게 다가간다.

그러곤 뒷짐 진 채 조용히 그녀를 내려다본다.

눈을 감아 그런지 더욱 길게 느껴지는 속눈썹,

숨을 뱉고 먹느라 살짝 열린 입술.


윤정한
…예쁘네.

작게 중얼거리자 여주가 눈을 슬쩍 뜨며 일어난다.

비몽사몽 일어나 하품을 해대다 뒤늦게 윤정한을 발견하곤 하품하느라 크게 벌렸던 입을 가린다.

가리기엔 이미 늦었는데도.


윤정한
푸하하, 이제 와서 가리면 뭐 해요.


윤정한
다 봤는데.

이여주
하…

여주에겐 부끄럽다는 표현보다는 아무래도 쪽팔린다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윤정한
예쁜데 뭘 가려요, 아가씨.

이여주
그냥… 좀…

이여주
쪽팔리잖아요.

이여주
예쁘긴 무슨.


윤정한
아닌데? 예쁜데.

정한이 여주에게 얼굴을 들이민다.

이여주
…예쁜 건 그쪽 같은데.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예쁘다 말하는 여주에 정한은 호탕하게 웃는다.


윤정한
뭐야, 지금 나 유혹하는 건가?

이여주
뭐라는 거예요.

여주는 어이없음에 헛웃음을 친다.

그러면서도 또 다시 하품을 내뱉는다.

여전히 피곤한가 보다.

딱 봐서는 어제 저녁부터 지금 저녁까지 잔 모양인데 말이다.


윤정한
아직도 졸려?

이여주
네… 피곤하네요.

아무리 미인은 잠이 많다지만 이건 좀 너무 심한 거 아닌가.

게다가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본인은 지금 이게 심각한 상황인지 자각하고 있지 않는 것 같지만.

정한이 심각한 표정을 한 채 입을 연다.


윤정한
점점 심해지는 것 같은데.


윤정한
혹시 인간들 사이에 잠이 많아지는 질병이 유행이라도 하는 거야?


홍지수
그럴리가.

전직(?) 인간이었던 지수가 지나가며 답한다.


홍지수
그런 게 유행할리가 없잖아.


홍지수
여주 씨, 병원에 가 보는 게 어때요?


홍지수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던데.

이여주
잠이 많아지는 것뿐인데 큰일이라도 나겠어요?

이여주
전 괜찮아요.


윤정한
그러다가 영원히 잠들면 어쩌려고.


윤정한
아가씨가 무슨 잠자는 숲속의 공주야?


윤정한
뭐, 내 키스로 일어나고 싶으면 가지 말든가.

윤정한의 입가에 장난스런 웃음이 번진다.

이여주
…갈게요.

정한의 발언에 여주가 단호하게 대답한다.


윤정한
…그래.

병원에 가겠다고 하는 건 좋았지만 내심 서운한 윤정한이었다.

***

***

“이여주 님, 들어오세요~”

이여주
아, 네.

의사
여기 앉으세요.

여주는 의사가 손짓하는 곳에 살포시 앉는다.

의사의 시선은 여전히 모니터를 향해 있다.

아마 얼마 전 검사를 받았던 여주의 결과를 보고 있는 듯했다.

그런 의사의 얼굴이 그닥 나쁘지는 않은 것을 보니 몸에는 크게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의사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세요.

의사
그런데 계속 잠이 많아진다고 하셨죠?

이여주
네.

이여주
어제는 또 이틀이나 잠을 잤어요.

이여주
그냥 요즘 피곤해서 그런 거겠죠?

여주의 표정은 여전히 무덤덤하다.

겨우 이틀인데.

이 정도야 뭐 괜찮지 않겠나, 생각하는 거였다.

그러나 의사의 표정은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의사
지금 모든 수치가 정상인데 계속 잠이 많아지는 건…

의사
흠…

의사
저도 처음 보는 증상이라…

의사
혹시 정신과는 가 보셨나요?

이여주
아니요.

이여주
딱히 우울증은 없어요.

이여주
전에는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괜찮아요.

여주는 정한과 지수와 살게 되면서 부쩍 편안하다는 느낌을 느끼게 됐다.

확실히 사채업자에 쫓겨 살던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다.

의사
흠…

의사
그럼 우선 경과를 지켜보도록 합시다.

의사
한 2주 뒤에 다시 오실래요?

의사
혹시라도 그 전에 증상이 더 심각해지신다면 오셔도 좋구요.

이여주
네, 알겠습니다.

의사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이여주
네, 감사합니다.

***

***

의사와 상담을 하고 나온 여주는 마냥 무덤덤할 수가 없었다.

심각해져가는 의사의 표정으로 자신의 몸이 지금 얼마나 괜찮지 않은 것인지 이제서야 안 모양이다.

이여주
뭐… 큰일이야 있겠어…?

툭.

진료비를 내러 가던 도중 누군가와 어깨가 살짝 부딪혔다.

이여주
아, 죄송합니다.

빠르게 사과하는 여주와 달리 부딪힌 여성은 아무 말 없이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한다.

의문의 여성
…

이여주
…?

굳이 따져가며 그녀의 사과를 받고 싶진 않았던 여주가 그대로 돌아서려던 찰나였다.

그 여성은 갑자기 여주의 팔을 붙잡으며 자신과 눈을 마주치게 했다.

그리곤 바로 여주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의 크기로 속삭였다.

의문의 여성
요즘 몸이 많이 이상하니?

이여주
…네?

뜬금없이 반말을 하며 의문의 소리를 내뱉는 여성에게 여주는 화가 나기도 이상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대체 뭘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여주가 머뭇거리고 있을 무렵 여성이 자신의 명함을 건네주고는 그대로 다른 곳으로 걸어가버렸다.

아마 이 명함에 적힌 주소로 오라는 뜻이겠지.

그러나 여주는 무언가 위험하다는 직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어쩐지 저 여성과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만 같은 느낌과 나쁜 인연이었다는 것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여주
…대체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