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요했다.
균열이 있었던 자리에는 별빛만 희미하게 떠 있었다. 하지만 윤서는 알고 있었다. 방금까지 자신이 본 것이 환상이 아니라는 걸. 공기가 여전히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손목의 문양이 미세하게 맥박치듯 빛나고 있었다.
둘 중 하나가 사라진다.
그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울리고 있었다.
윤서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럼… 방법은 없는 거예요?”
정국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평소보다 훨씬 지쳐 보였다.
“원래는 없습니다.”
그가 낮게 말했다.
“시간의 고정점과 계약자는… 동시에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윤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왜.”
목소리가 떨렸다.
“지금까지는 계속 같이 있었어요.”
정국의 시선이 천천히 윤서를 향했다.
“제가 규칙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은 담담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무거웠다.
“당신이 죽는 순간마다 시간을 되돌렸습니다. 그러면 고정점이 다시 살아나고, 세계선이 유지됩니다.”
윤서는 숨을 삼켰다.
“그럼… 지금까지는.”
“임시 봉합이었습니다.”
정국이 말했다.
“균열이 생기지 않았던 건, 시간 회수자가 개입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윤서는 조용히 물었다.
“…그럼 이번에는.”
정국의 시선이 하늘로 올라갔다.
“균형이 무너질 정도로 반복이 많아졌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윤서는 손목을 내려다봤다. 검은 문양이 이전보다 더 또렷해져 있었다. 마치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윤서는 말했다.
“방법을 찾을 거예요.”
정국의 눈이 아주 미묘하게 흔들렸다.
“…왜요.”
“살아야 하니까요.”
윤서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당신도.”
정국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윤서는 자신의 죽음만 두려워했지, 정국의 소멸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었다.
“이번에는.”
윤서는 천천히 말했다.
“되돌리는 거 말고.”
잠시 숨을 고른 뒤.
“…진짜로 바꿔봐요.”
정국의 손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날 이후.
윤서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출퇴근 시간, 이동 경로, 식사 장소까지 모두 바꿨다. 사소해 보이는 선택 하나하나가 중요해졌다. 정국은 항상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윤서를 지켜봤다. 이전 반복들에서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어떤 순간이 위험했는지 기억나는 범위 안에서 모두 정리해 주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이번에는.”
정국이 말했다.
“패턴이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윤서는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요.”
“사고 시점이 미묘하게 앞당겨지고 있습니다.”
윤서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원래는 다음 달 18일이었는데.”
정국의 시선이 손목으로 내려갔다.
“지금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윤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손목이 갑자기 뜨겁게 타올랐다.
윤서는 놀라 소매를 걷었다. 문양이 이전보다 훨씬 강하게 빛나고 있었다.
정국도 동시에 반응했다.
“…벌써.”
그의 목소리가 낮게 떨어졌다.
윤서는 이해하지 못했다.
“뭐가요.”
정국이 말했다.
“시간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공기가 갑자기 차가워졌다.
윤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하늘 한쪽이 어둡게 물들고 있었다. 균열이 다시 열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훨씬 빠르게, 훨씬 크게.
정국의 표정이 굳었다.
“…예정보다 빠릅니다.”
윤서는 숨을 멈췄다.
균열 속에서 무언가가 내려오고 있었다.
그림자였다.
인간과 비슷한 형태였지만, 윤곽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눈이 없는 얼굴인데도 시선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시선이.
정확히 윤서를 향하고 있었다.
정국이 윤서의 앞을 막아섰다.
“뒤로 가세요.”
윤서는 움직이지 못했다.
그림자가 입을 열었다.
“시간의 고정점.”
공간이 울리는 목소리였다.
“회수 시점 도달.”
윤서의 심장이 세게 흔들렸다.
정국이 낮게 말했다.
“…아직 아닙니다.”
그림자가 고개를 기울였다.
“이미 늦었다.”
공기가 일그러졌다.
윤서의 손목 문양이 갑자기 타오르듯 빛났다.
정국의 것도 동시에 반응했다.
두 개의 빛이 서로 끌어당기듯 강하게 떨렸다.
그림자가 말했다.
“선택 준비.”
윤서는 숨을 삼켰다.
“지금…?”
정국이 말했다.
“…아직 아닙니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처음으로 불안이 담겨 있었다.
그림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다음 개입.”
잠시 침묵.
“종결.”
그 순간.
균열이 다시 닫혔다.
공기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윤서는 알았다.
시간이.
자신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걸.
정국이 조용히 말했다.
“이제.”
잠시 숨을 고른 뒤.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윤서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운명을 바꾸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잔인한 일이라는 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