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기 시작했다.
예보에는 없던 비였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하늘이 점점 어두워졌고, 결국 굵은 빗방울이 도로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윤서는 창밖을 보며 손목을 내려다봤다.
문양이 어둡게 빛나고 있었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오늘…인가.”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정국]
지금 바로 나가세요.
회사 뒤쪽 출구로.
윤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날이 언제인지. 이 순간이 언제인지.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었다.
비는 점점 더 거세졌다.
도로는 금방 물에 젖었고, 차들의 헤드라이트가 흐릿하게 번졌다. 윤서는 숨을 고르며 건물 뒤쪽으로 뛰었다.
정국이 이미 와 있었다.
그는 비를 맞은 채 서 있었다. 평소보다 훨씬 긴장된 표정이었다.
“윤서 씨.”
그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시간이 당겨졌습니다.”
윤서는 숨을 삼켰다.
“…지금이에요?”
정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패턴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의 손목 문양이 검게 타오르듯 빛났다.
“시간 회수자가 직접 개입하고 있습니다.”
윤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하늘이 다시 갈라졌다.
이번에는 공포를 느낄 틈도 없었다.
균열은 거의 찢어지듯 벌어졌고, 어둠이 도로 위로 내려앉았다. 공기가 갑자기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차량 경적 소리가 울렸다.
윤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빛이었다.
빠르게 다가오는 헤드라이트.
몸이 굳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윤서!”
정국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이미 달려오고 있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빗방울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보였다. 헤드라이트 빛이 눈을 찔렀다. 그리고 그 순간.
윤서는 깨달았다.
아, 또 이 장면이구나.
이미 겪었던.
끝을 알고 있는 순간.
그녀의 손목 문양이 강하게 빛났다.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간의 고정점.”
공간이 울렸다.
“종결 시점 도달.”
윤서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몸이 뒤로 강하게 당겨졌다.
정국이었다.
그가 윤서를 밀어냈다.
도로 위로.
자신이 대신 들어섰다.
“안 돼!”
윤서의 비명이 터졌다.
하지만 늦었다.
충격음이 울렸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고요해졌다.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윤서는 떨리는 눈으로 도로를 바라봤다.
정국이 쓰러져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숨이 막혔다.
심장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윤서는 비틀거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무릎을 꿇었다.
“정국 씨.”
손이 떨렸다.
그의 얼굴은 너무 평온했다.
마치 잠든 것처럼.
윤서는 울음을 삼켰다.
“일어나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 순간.
하늘이 완전히 갈라졌다.
균열이 도로 위를 덮었다.
시간 회수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계약자.”
공간이 울렸다.
“소멸 조건 충족.”
윤서는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비와 섞여 흘러내렸다.
“싫어.”
손목 문양이 미친 듯이 빛나고 있었다.
“싫어.”
시간 회수자가 말했다.
"균형이 드디어 회복됐다"
윤서는 그 말을 이해하는 데 몇 초가 걸렸다.
정국이 죽으면.
자신은 살 수 있다.
세계도 유지된다.
그게 규칙이었다.
윤서는 떨리는 손으로 정국의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싫어.”
목소리가 깨졌다.
“이런 거 원한 적 없어.”
시간 회수자가 말했다.
“선택 완료.”
윤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손목 문양이 타오르듯 빛났다.
“아니야.”
윤서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스스로 선택했다.
윤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가져가.”
정국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이 사람… 남겨.”
비가 더 거세졌다.
시간 회수자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말했다.
“그건 안 돼.”
윤서는 웃었다.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상관없어.”
손목 문양이 완전히 빛으로 변했다.
하늘의 균열이.
윤서를 향해 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