私は前庭のホームごとに。

[4]

지금 정국이가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는 게 맞나? 친구의 선을 넘었다는 거 날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거 내가 생각하는 범주의 이야기가 맞나? 나를 바라보는 정국이의 눈빛은 분명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 내가 오랫동안 지켜본 가수인 만큼 정국이의 진실된 눈동자를 잘 안다. 무대에서 온 힘을 다해 춤을 출 때 정국이는 이런 눈을 하고 있으니까.

"정국아."

"응."

"나."

정국이한테 고백 받는 상황은 상상해본 적이 없어서. 당연히 일어날 일이 없다고 생각해서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은 상상해둘 걸.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은 용기 내어 볼 걸. 정국이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껏 정국이가 나한테 친절하게 해줘서 자꾸만 착각하게 만들어서 힘들다고 생각했다. 정국이가 조금만 차가운 사람이었다면 괜한 마음 가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난 참 이기적인 사람이다.

"당장 대답하기 어려우면 더 생각해도 좋아. 그냥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을 뿐이니까."

"아니, 정국아."

나는 빨리 정국이에게 답을 전하고 싶은데 정국이는 내 대답을 듣기가 두려운지 내 손을 꼭 붙들었다.

"대답 지금 안 하면 안 될까."

"응?"

"나 솔직히 내 마음을 깨달은 지 얼마 안 되서. 그렇지만 햄이를 좋아한다는 마음이 확실해지면서 감정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게 됐어. 이대로 거절당하면 햄이랑 전처럼 못 지낼 것 같아서 무서워."

"그럼 나랑 안 사귈 거야?"

"응?"

대답 안 하면 전할 수가 없잖아. 우리 좀 더 나아가 보자는 말.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는 말. 정국이는 무척이나 놀란 눈으로 나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렇게 보면 민망한데."

"진짜 햄이가 내 마음을 받아주는 거야? 정말로?"

"나도 정국이 좋아하니까."

"와."

방금 전에 박력 넘치게 나에게 고백을 하던 정국이는 어디로 가고 세상 해맑은 얼굴로 좋아하던 정국이는 나를 품 안에 덥석 안았다.

"고마워. 햄아."

"..."

"정말 고마워. 내가 너무 늦게 알아챘는데. 이렇게 서투른데. 날 받아줘서 너무 고마워."

정국이는 알까. 너는 나에게 너무 과분한 사람이라는 걸. 너보다 더 서투른 건 나였다는 걸. 매일 숨기만 하고 도망치기만 하던 나를 붙잡아 준 게 너라는 걸.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 너에게 감사하고 있다는 걸.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정국이한테 고마운 게 너무 많은데 정국이한테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내가 너무 미안해서.

"햄아. 왜 울어? 내가 뭐 잘못했어?"

"..."

"혹시 내가 껴안은 것 때문에? 아니, 이건 정말 나도 모르게. 그렇지만 나는 누구보다 햄이를 아끼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정말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그냥 정국이한테 고맙고 미안해서 눈물이 나는 건데."

정국이는 자신이 너무 조급하게 나에게 스킨쉽을 했다고 생각했나보다. 나는 정국이 품이 좋은데. 정국이는 정말 나를 많이 아끼나 봐. 뚝뚝 눈물을 흘리는 나를 정국이는 조심스럽게 품에 안아 달래줬다.

"네가 우는 건 싫지만 운다면 그건 내 앞에서만 해."

"응?"

"윤기형이라고 해도 질투나니까."

정국이 그러고 보니까 윤기가 나를 달래주는 걸 보고 있었지. 참. 그걸 설명하려고 온 건데. 어떻게 이렇게 순탄한 전개가 되어 버렸다.

"윤기도 그냥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 거야."

"지금 윤기형 편드는 거야? 남친 두고?"

"남친?"

"난 잡은 물고기라는 거야. 뭐야."

토라지는 정국이도. 질투하는 정국이도 이제는 그저 귀엽게만 보인다.

"난 전정국을 믿으니까."

"나도 햄이를 믿지만 질투 나!"

"윤기잖아."

"윤기형도 남자거든?"

내 덕질의 대상이자 나의 별은 오늘부로 질투 많은 남자친구가 되었다.

 

정국이랑 사귀게 되면 모든 고민이 사라질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정국이와 사귀는 순간 나는 윤기의 얼굴이 떠올랐다. 윤기가 알면 분명히 신경 쓰여 할 텐데. 윤기의 마음을 확실하게 거절하지도 못했고. 그렇지만 거절하자니 정식으로 고백 받은 것도 아닌데 도끼병에 걸린 것 같고.

"정국아."

"응?"

"우리 사귀는 거 말이야."

"흐응."

정국이는 사귄다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지 햄스터처럼 귀여운 웃음을 지었다. 미치겠다. 귀여워 죽겠다. 사진을 찍고 싶은 건 홈마본능인가. 아니야. 여기서 카메라를 들면 정말 덕질하는 것 같으니까 참자. 나는 지금 덕질이 아니라 연애를 하고 있다.

"우리 사귀는 거 당분간 비밀로 하자."

"뭐? 왜?"

"그게 지금은 너도 한창 인기도 많을 때고 나는 데뷔전이니까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면 윤기가 신경 쓰이는 거지만. 정국이는 조금 서운해 하는 것 같긴 했지만 상황을 이해해주는 것 같았다. 연예인과 연습생은 어려운 관계니까.

"그렇지만 당분간만 그럴 거야."

"그래도 돼?"

"어렵게 내 마음을 깨닫고 이제야 사귀게 됐는데. 어떻게 더 참으란 거야!"

정국이는 나에게 손을 뻗으려다가 내 말을 의식했는지 주변을 살폈다.

"회사 주변은 사람이 많아서 별로야."

"그래도 정국이가 이해해줘서 고마워."

나에게 맞춰주는 게 힘들 텐데 화내지도 않고 잘 따라주는 정국이가 고마웠다. 정국이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이니 정국이는 더 울상이 되고 만다.

"진짜 딱 한 번만 안으면 안 될까."

"사람 많다며."

"그래도 햄이가 꼬셨잖아."

"내가 언제!"

"방금 전에."

그렇게 예쁘게 웃으면 참지 말란 소리 같다고. 정국이는 입술을 삐쭉 내밀고 나를 바라보다 내 손목을 잡아 나를 좁은 골목 사이로 끌어 당겼다.

"여기는 사람 없는데."

"저기 정국아."

"아니, 여기서는 안 참아. 안 참을 거야."

정국이의 입술이 아주 짧게 내 입술 위에 닿았다 떨어졌다. 짧았지만 분명 말랑한 촉감이 스쳤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정국이를 올려다보니 정국이는 여전히 아쉬운 얼굴이다.

"아, 나 솔직히 내 눈앞에만 두고 싶다라던가 이런 말 오글거린다고 생각했는데."

"..."

"햄이를 보면 진짜 그러고 싶다."

"정국아. 나 녹음실 다시 들어 가봐야 될 것 같아."

그러니까 나중에 보자!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 상황을 피해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정국이에게서 벗어나 회사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햄아!"

정국이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계속해서 내 입술에 닿았던 그 달콤한 촉감만을 반복적으로 떠올렸다. 내가 정국이랑 뽀뽀를 하다니. 이게 진짜. 현실. 실화란 말이냐. 회사로 전력질주를 하다 보니 최단 시간 만에 회사 앞에 도착했다.

"왜 그렇게 뛰어와?"

"윤기야?"

"안 그래도 찾고 있었는데."

"날?"

"그래."

때마침 회사로 들어가려던 윤기와 마주쳤다. 어색하다. 어색해. 내가 숨기자고 했는데 앞으로도 숨겨야 하는데. 이렇게 어색해서는.

"녹음하러 가야지. 너 데뷔날짜 나왔거든."

"뭐? 진짜?"

"그래."

데뷔 날이라니 정말 실현될 줄은 몰랐는데. 윤기는 놀라는 나를 향해 살짝 미소를 짓다가 내 뒤편을 보며 살짝 얼굴을 굳혔다.

"햄아. 그렇게 달려가 버리면 어떡해."

분명히 다른 사람에게 연애를 숨기자고 말했는데 정국이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 뒤에서 내 목을 감싸 안았다. 이렇게 되면 윤기가 눈치 챌 텐데.

"떨어져. 전정국."

윤기가 정국이의 스킨쉽을 지켜보다 정국이를 나에게서 떼어냈다. 정국이는 상당히 기분이 상했는지 인상을 구긴 채 윤기를 마주봤다.

"내가 왜."

"네가 이미 성공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짓밟아도 되는 게 아니야."

"짓밟다니."

"햄이 데뷔날짜 잡혔어. 네 이런 행동이 햄이한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생각 못 해?"

윤기의 냉정한 말에는 틀린 점이 하나도 없었다. 정국이는 이를 악물고 윤기를 보긴 했지만 딱히 반박할 수 없어 보였다. 두 사람 사이에 감도는 살벌한 기운은 내가 뚫고 들어가기 어려워 보였다.

"데뷔전 스케줄이 몇 가지 정해졌어. 원래는 매니저가 전해야하지만 내가 대신 전할게."

윤기는 곧장 나를 녹음실로 데려와 데뷔전 스케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정국이도 사뭇 진지한 얼굴로 앉아 앞으로의 스케줄에 대해 귀를 기울였다.

"일단 데뷔전에 네 뮤직비디오 작업이 있을 거야. 컨셉이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아서 그건 조금 뒤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우선은 다른 뮤직비디오를 통해서 얼굴을 알릴 거야."

"어떤 뮤직비디오인데?"

"우리 뮤직비디오."

"우리 뮤직비디오라면? 방탄소년단?"

그렇다. 내 데뷔전 첫 스케줄은 바로 방탄소년단 뮤직비디오의 상대역이었다. 컨셉은 방탄소년단이 사랑에 빠진 여자였다.

"나 잘할 수 있는 걸까?"

당장 오늘 정국이랑 사귀고 내일 아침부터 방탄소년단이 사랑하는 여자가 컨셉이라니 이리저리 불편하다.

"어째서 햄이가 상대역인데?"

"네가 제일 좋아할 줄 알았는데."

"다른 녀석들도 전부 햄이를 좋아한다는 거잖아."

"그럼 너 혼자 좋아해야한다는 이유라도 있어?"

윤기는 정국이와 내가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나는 정국이를 향해 애절한 눈빛을 보냈다. 여기서 윤기가 정국이와 내가 사귄다는 사실을 알면 뮤직비디오 분위기가 어떻게 망쳐질지도 모르는 일이고 피해를 줄지도 모르니까 조심하고 싶었다. 이건 내 일만 걸린 게 아니라 방탄소년단이라는 그룹에도 영향을 주는 거니까.

"아, 어쨌든 싫어."

"싫으면 넌 단독 샷만 넣어 달라고 할게. 상대역이랑 컷을 찍는 인물을 한정되어 있으니까."

"나도 찍을 거야!"

아무래도 정국이는 윤기의 손바닥 위에 있는 것 같다. 분명 같은 나이인데 윤기가 훨씬 어른스럽다.

"그래서 햄이랑 촬영하는 인물은 누군데?"

"태형이 너, 나, 지민이 정도."

"많잖아. 네 명이 말이 돼?"

"햄이는 그 이상도 홀릴 매력이 있어."

"햄이가 매력이 없다는 게 아니잖아!"

정국이는 질투를 하기에 바빴고 그에 반해 윤기는 이성적이었다.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연애라는 건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랑 하면 행복한 걸로만 알았는데 연예인에게는 그렇게 당연한 개념도 허용되지 않았다.

"열심히 해볼게. 어쨌든 좋은 기회니까. 방탄소년단에 누가 되지 않도록."

"그래. 햄이라면 잘 할 거야."

"어쩔 수 없지."

정국이는 마지못해 내 촬영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확실히 방탄소년단의 뮤비에 나오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데뷔전에 나를 봐줄 거다. 확실한 마케팅이었다.

"오늘부터 데뷔 날까지 본격적으로 트레이닝을 받게 될 거야. 다이어트부터 피부 관리, 연기지도처럼 세세한 부분들까지 말이야."

"우리 햄이 살 뺄 데가 어디 있다고 다이어트야?"

"회사기준이니까 그건 나도 터치할 수가 없어."

"괜찮아. 필요하다면 다 열심히 할 거야."

"그냥 몰래 몰래 먹어. 그러다 쓰러지면 어떡해?"

정국이는 다이어트 전부터 나를 걱정하는 눈치였다. 윤기는 현실적인 조언을 하는 편이라면 정국이는 늘 나를 감싸준다. 그게 이렇게 든든한 힘이 되다니 나는 확실히 사랑받고 있구나.

"그래서 앞으로 며칠간은 방탄소년단이랑 스케줄이 겹칠 거야."

"와, 떨린다."

"매일 햄이 볼 수 있겠다."

"넌 치근덕대다가 괜히 햄이 발목이나 잡지마."

"발목을 잡다니."

정국이와 윤기가 사이에 신경전은 계속 되고 있었다. 일단은 두 사람의 사이에 내가 빠져주는 게 좋겠다고 판단을 내렸다.

"그럼 나 연습하고 올게."

"그래. 나중에 맛있는 거 사가지고 갈게!"

"데뷔전까지 조심하라니까."

"형이나 조심해!"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시 두 사람은 사이가 좋다. 어쩌면 내가 두 사람의 사이를 흐트러트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 윤기의 말대로 나는 개인 트레이닝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데뷔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자는 시간이 3시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녹음 일정이 끝나면 연습, 연습이 끝나면 운동, 운동이 끝나면 피부 관리, 언어레슨 등등 연예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채우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노력했다.

"드디어 내일이다."

오늘도 깊은 잠을 자기는 틀렸지만 내일이면 나는 내가 덕질하던 아이돌의 뮤직비디오에 나오게 된다. 매번 영상으로 뮤직비디오 속의 주인공을 부러워했었는데 내가 주인공이 되다니. 마냥 좋은 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길이었다. 연습실에서 지쳐 바닥에 누워있으니 천장만 덩그러니 보인다.

"지금은 저 천장도 너무 높아 보이는데."

나는 정말 빛날 수 있을까? 멀리 있는 별 같은 사람들의 곁에 나란히 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