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GAME[連載中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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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GAME

NO. 05

W. 설하

'…생각보다 더 어두운데,'

벌건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골목길은 빛 한점 들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이따금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불빛에 걸음을 의지했다. 내가 여관을 빠져나오는 새 그들은 벌써 추격전에 돌입한 것인지, 골목에 숨어있던 '수상한 사내'나, 길 한복판에 서있던 청년, 둘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그럼에도 나는 이따금씩 나타나는 갈림길에서 깊은 고민 없이 길을 선택했다.

[돌발 퀘스트 : 추격전]

당신은 우연찮게

메를린 거리 한복판에 숨어든

'수상한 사내'를 발견했습니다.

·

·

·

수상한 사내를 추격하여 그를 제압하고,

'수상한 주머니'를 획득하십시오.

성공 보상 : 수상한 주머니

'수상한 사내'의 위치

: 다음 갈림길의 왼쪽

네비게이션 기능까지 쓸 수 있을 줄이야, 어차피 그 청년 또한 수상한 사내를 쫓는 퀘스트를 수락한 듯 싶었으니, '수상한 사내'를 따라가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그 청년까지 만나볼 수 있을 터였다. 아, 뭐부터 물어보지. 이 낯선 세계에서 유일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 어쩌면 동료가 될 수도 있겠지, 아카데미 때문에 북부로 온 건가? 이름도 모르는, 단지 '플레이어'라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그 청년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며, 나는 골목을 누볐다.

10분쯤 뛰었을까,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던 차였다. 아니, 뭐 이런 깊은 골목까지 도망을 치고 그런담, 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퀘스트 창을 슬쩍 확인했다. '다음 갈림길의 오른쪽', 문장을 확인하고는 앞에 나타난 양갈래의 골목길에서 오른쪽으로 걸음을 틀었다. 그도 잠시,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선 나는 '어?'하는 얼빠진 소리를 내며 뜀박질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막다른 골목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앞에 보란듯이 쓰러져 있는 사람이….

"…엥?"

온통 새카만 복장이던 '수상한 사내', 보란듯이 엎어져있는 그 인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심지어는 그 옆에 퀘스트 완료 조건인 '수상한 주머니'도 내팽개쳐있었다. 마치, 가져갈테면 가져가 보라는듯이. 순간 오싹하니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려퍼지는 것 같았다. 함정이다, 더 생각할 틈도 없이 나는 재빨리 몸을 틀었으나, 내 목을 겨누는 누군가의 칼이 더 빨랐다. 아, 젠장. 하는 욕짓거리를 중얼거리며 나는 흘끔, 내 목에 겨누어진 단검을 바라보았다. 섬뜩하리만치 날선 쇠붙이가 금방이라도 내 목을 궤뚫을 듯 가까이 자리하고 있었다. 칼날에 닿은 살결이 빠른 속도로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허벅지에 차고 있던 리볼버를 꺼내들 틈도 없었다.

"누굴 쫓아온거지?"

낮은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누구겠니, 하며 대답하고싶은 것을 꾹 참은 채 단검을 든 상대를 노려보았다. 어떡할까, 빠져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 손은 착실하게 치마를 겉어붙인 뒤 리볼버의 손잡이를 더듬거리고 있었다. 내가 안일했다. 그저 '또 다른 플레이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가장 기본적인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 플레이어가, 나에게 호의적일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내 목덜미를 섬뜩하게 겨누고 있는 단검 하나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끝까지 대답하지 않자 심기가 불편해진 듯, 내 목덜미를 압박하는 날붙이의 힘이 한층 더 심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결국 살이 까진 듯, 따끔한 통증이 일었다. 쏠까, 말까, 이미 한 손으로 리볼버의 장전까지 마친 나는 고민했다. 다리, 혹은 발등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도망칠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미래의 동료…, 너무 앞서나가는 건가, 아무튼간에 언젠가 협력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나니 멈칫하게 되는 것이었다. 만약에 이 사람이 내게 적의를 보이는 이유가, 내가 플레이어라는 것을 몰라서라면? 생각해보니 그럴싸한 가정이었다. 나는 그가 '시스템'을 다루는 모습과, 저 '수상한 사내'를 쫓는 모습을 보고 그가 플레이어임을 예상할 수 있었지만, 그의 입장에서 나는 퀘스트 도중 난데없이 튀어나온 수상한 인물에 불과할 뿐이니까.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거 아닌가. 목덜미에 닿은 칼날이 점점 더 깊숙하게 들어왔다. 결국 주륵-, 하고 핏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고 나서야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정확하게 급소를 짚은 칼날, 이거, 상처없이 빠져나갈 수 있나? 아무래도 자상 하나쯤은 얻어서 빠져나가야 될 것 같은데. 나는 아주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내 등에 딱 붙어있는 남자조차도 쉽게 눈치챌 수 없을 만큼이나 천천히, 아주 느리게.

"커흡, 야, 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머니에 챙겨두었던 것을 손에 쥐자마자 나는 젖먹던 힘을 다해 팔을 휘둘렀다. 돌에 얻어맞기라도 한듯 팔꿈치가 얼얼했다. 나야 얼얼한 정도에서 끝날 테지만, 그 팔꿈치에 얻어맞은 사내는 빈말로도 괜찮다고 하지 못할 것이다. 금 간거 아냐? 귀한집 딸로 자란 신세에 몸이 단단할거란 기대는 하지도 않았지만, 명치 한 번 때렸다고 심각하게 아려오는 팔꿈치는 좀 심하다 싶었다. 나는 팔꿈치고 남자의 명치를 가격함과 동시에 몸을 숙여 남자와의 거리를 벌렸다. 턱 부근이 아릿한 것이, 아무래도 빠져나오는 틈에 남자의 단검에 얻어맞은 듯 싶었다.

격한 움직임에 푹 뒤집어썼던 후드가 반쯤 벗겨졌다. 그러나 명치, 그러니까 급소를 제대로 얻어맞은 남자가 아직까지도 허리를 굽히고 있던 탓에 내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진 못한 듯 했다. 하긴, 아프긴 더럽게 아플 것이다. 한동안은 숨 쉬는 것만으로도 갈비뼈가 뻐근할 테니까.

반쯤 흘러내렸던 후드를 다시 깊게 눌러쓴 채,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재빨리 그것을 밟았다. 콰득-, 하며 발밑에서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바닥에서부터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가 나를 둘러쌌다. 깨진 돌조각에서부터 피어오른 연기는 이윽고 게임의 어느 한 장면처럼 그래픽 조각들이 되어 내 주면을 빠르게 감쌌다.이 세게에서는 결코 볼 수 없을 것들, 그럼에도 플레이어인 나와 저 남자에게는 꽤 익숙할 장면. 어쩌면 남자가 내 정체에 대해 예측하는데 큰 힌트가 될 수도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남자의 커다랗게 뜨인 눈과 마주쳤다.

"다음에 볼 땐 그렇게 무턱대고 덤비지 말고,"

"…플레이어?"

"대화로 해결하자고, 대화로."

목 부근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핏줄기를 느끼며 나는 씨익 웃어보였다. 명치를 얻어맞은게 꽤 분했던 탓인지 남자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이 보였다. 뭐 인마, 나는 모가지가 썰릴 뻔 했는데 겨우 그거가지고…. 분한듯 씩씩대는 남자의 표정을 마지막으로 새파란 창으로 가려진 시야가 불투명해졌다. 죽을뻔 하긴 했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는 데서 만족스러운 결과라고 생각하며, 나는 눈을 감았다.

시야가 온통 파랗게 점멸했다.

IN GAME

[공간의 돌]

소비 아이템

깨트려 사용하면 지정된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다.

현재 지정된 장소 : 청(靑)의 아공간

남은 사용 횟수 : 4회

시스템이 내게 준 선물은 리볼버 한 쌍이 전부가 아니었다. 긴장이 풀린 몸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히며, 나는 내 발치에 굴러다니는 새파란 돌멩이를 집어들었다. 공간의 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챙겨두었던 것이 이렇게 쓰이게 될 줄이야. 저를 만나러 올 때 필요할 것이라는 듯, 리볼버가 담겨있던 상자에 곱게 들어있던 아이템이었다. 동글동글하니 예쁜 모양의 돌멩이었던 아까의 모습과는 달리, 돌의 겉면에 얇게 실금이 가있는 것이 보였다. 소비아이템이라더니, 사용 횟수를 소진할 때 마다 이런 식으로 돌 자체가 바스러지는 듯 했다. 어쨌든, 덕분에 살았다. 섬뜩하게만 느껴지던 목의 칼날을 떠올리며, 나는 몸을 떨었다.

단검에 베인 목과 턱 부근의 상처가 욱신거렸다. 갓 생겨난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선혈이 망토를 축축하게 물들이는 것이 느껴졌다. 원체 곱게 자라온 탓일까, 이런 상황에 면역이 없는 율리아의 몸은 쉽게 놀랐고, 또 쉽게 지쳤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과 다리만 보더라도 그랬다. 으으-, 하는 신음과 함께 나는 반쯤 일으켰던 몸을 바닥에 털썩, 뉘었다. 피곤했다.

[퀘스트 실패]

돌발 퀘스트 : 추격전

다른 플레이어가

'수상한 주머니'를 획득하였습니다.

부여된 [돌발 퀘스트]

자동으로 실패 처리됩니다.

단, 플레이어에게서

'수상한 주머니'를 다시 빼앗는

[연계 퀘스트]로의 진행이 가능합니다.

[연계 퀘스트]를 진행하시겠습니까? Y / N

"미쳤냐, 안 해!"

미친 게임 같으니, 그 '플레이어'에게서 죽다 살아나 겨우 탈출했더니 나더러 다시 사지로 뛰어들란다. 애초부터 돌발 퀘스트를 수락한 게 '수상한 주머니' 따위의 보상 때문은 아니었으니 별 미련도 없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휴식이라고. 신경질적으로 'N'을 연타했다. 푸른 창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왜 혼자 그렇게 열을 내고 있어,]

어김없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허공을 흘긋 흘겨보았다. ‘시스템’, 아마도 이 아공간의 주인. 나는 푹 늘어진 몸을 일으키려다, 실컷 골목을 헤집고 다니던 다리가 욱신거리는 탓에 다시금 주저앉았다. 풀썩 바닥에 쓰러지다시피 앉자마자 어디선가 쯧쯔-, 하며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꼴이 말이 아니네. 그러게 상대를 좀 봐가면서 덤볐어야지.]

“덤비긴 뭘 덤벼. 그나저나, 다 보고 있었던 거야?”

[응, 재밌더라.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르고 덤빈다더니,]

“덤빈게 아니라…, 아니, 나라고 그렇게 다짜고짜 칼을 들이밀 줄 알았나…?”

한숨을 내쉬었다. 시스템이 키득거리며 얄밉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웃어라. 실컷 비웃어라 아주. 계속해서 들려오는 작은 웃음소리를 무시한 채 나는 상체를 일으켰다. 새카만 망토에 핏자국이 잔뜩 묻어있었다. 안에 입고 있던 옷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었다. 목에 길게 베인 상처와, 턱에 깊게 난 자상에서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지혈해야지, 이미 핏자국으로 엉망이된 망토를 벗어 턱에 대고 꾸욱 눌렀다. 쓰라렸다. 

내 의지는 아니었지만, 어째 자꾸만 ‘율리아’의 몸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저번의 화병 소동도 그렇고. 이제는 희미한 흉터만이 남았다지만 상처가 있었다는 사실을 감출 만큼은 아니었다. 그나마 팔이라던가, 다리같이 옷에 감추기 쉬운 곳을 다쳤으면 모를까, 하필이면 상처를 입은 곳이 턱과 목이었다. 감추려야 감출 수가 없는 부위.

‘당장 진에게는 뭐라고 설명해, 이걸….”

당연히, 하루만에 나을 상처가 아니었다. 말도 없이 여관방에서 사라진 걸로도 모자라, 이제는 얼굴에 칼자국까지 달고 돌아온 나를 보며 진이 어떤 반응을 내보일지는 너무나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북부로 오는 내내 진에게 들었던 잔소리가 ‘남이 너를 걱정한다는 사실을 무시하지 말아라’ 하는 말이었는데, 당장 하루만에 이렇게 다쳐와서야 입학시험이고 뭐고 당장 공작저로 돌아가야겠다며 나를 끌고 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진짜 큰일인데, 내가 중얼거렸다.

“망했네….”

[뭐가 망해?]

“상처가 너무 눈에 띄어서, 이건 뭐 숨길수도 없겠는데….”

[상처를 왜 숨겨?]

“그거야 진에게 보이면 안되니까.”

[왜?]

“왜긴, 진한테 들키는 날엔 입학시험이고 뭐고 얄짤없을걸. 바로 공작저로 돌아가는 마차를 부를지도 몰라.”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네 상처 때문에 곤란하다는 소리지?]

“뭐, 그렇지.”

혹시 무슨 방법이라도 있으려나? 기대를 잔뜩 담은 반짝반짝한 눈으로 도와달라는 눈빛을 허공으로 쏘아댔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뭘 그렇게 봐,]하는 냉담한 반응 뿐이었다. 그래,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어차피 망한 거, 조금이라도 덜 혼나려면 상처에서 나는 피라도 그치게 해야겠다는 심산으로 다는 상처 부위를 더더욱 세게 눌렀다. 아릿한 통증 때문에 자꾸만 눈살이 찌푸러졌다. 끄응, 하는 앓는 소리는 덤이었다.

[그러지 말고, 이거 써.]

시스템의 말과 동시에 허공에서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뭔데? 약이야? 하며 나는 내 발치에 떨어진 그것을 집어들었다.

[만능 연고]

소비 아이템

모든 상처를 단숨에 치료하는 연고.

상처 부위에 덧발라 사용한다.

남은 사용 횟수 : 15회

오 대박, 하는 감탄사와 함께 나는 연고의 뚜껑을 열었다. 진득해보이는 고체 형태의 약이 가득 담겨있었다. 손가락으로 그것을 꾸욱, 눌러보니 약간은 끈적끈적한 연고가 손에 잔뜩 묻어났다. 이거 한 번이면 진짜 다 나아? 불신어린 말로 묻는 내 말에 시스템은 뚱한 말투로 [당연하지, 누가 만든 건데.] 하며 대답했다.

“이런거 막 퍼줘도 돼? 리볼버랑, 공간의 돌도 받았는데.”

[상관없어. 준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뭐.]

“와, 진짜 흉터도 안 남네! 대체 넌 정체가 뭐야? 이것저것 뚝딱뚝딱 만들어내는거 보면 조물주라 해도 믿겠어.”

[글쎼, 그 비슷한 존재 쯤은 되겠지.]

그럼 자기가 신과 비슷한 존재 쯤 된다는 소리일까. 나는 흉터 하나 남기지 않고 아문 상처부위를 연신 매만졌다. 아릿하고 따끔한 고통도 없고, 살이 벌어진 느낌도 없다. 매끈하기 그지없는 피부에 연신 감탄을 터트렸다. 완전 사기템이네.

“그래서 그 주머니엔 뭐가 들었어? 이 만능연고 정도 되는 아이템? 아니면 그보다 더한 거?”

[무슨 주머니?]

“왜, 네가 보낸 퀘스트에 나오는 ‘수상한 주머니’있잖아, 내 목하고 턱 이렇게 만든 원인. 보상이 뭔데?”

[아아, 나야 모르지.]

“몰라? 왜? 네가 퀘스트 부여한거 아니야?”

[무슨 소리야?]하며 어이없다는 투로 시스템이 말했다. [당연히 일정 조건을 달성하면 자동으로 부여되는거지!] 하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동이라고?

[플레이어가 총 몇명인줄 알고, 내가 일일히 퀘스트를 부여한다고 생각하는거야.]

“네가 지켜보고 있었다길래, 난 그런줄 알았지.”

[참 나, 아무튼 너 방금처럼 그런 무모한 짓은 하지 마. 자칫하다 네 목이 고깃덩이처럼 썰려나갈뻔 했다는건 알고 있는거야?]

“고깃덩이라니….”

[진짜야. 플레이어라고 다 같은 플레이어가 아니니까.]

“예를 들면, 아까 그 남자처럼?”

[그래, 네가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누군가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생각했었어야지.]

한 달, 내가 반쯤 미쳐있었던 시간을 일컫는 듯 했다. 진짜 모르는게 없구나.

[걔는, 전직을 가장 먼저 끝낸 플레이어야. 그만큼 너보다 훨씬 더 빠르게 이 세계에 적응했다는 소리고…, 당연히 너랑 스탯 차이도 어마어마하게 날텐데, 난 네가 무턱대고 걔 따라가는거 보고 진짜 미친줄 알았다.]

“그렇게 방어적으로 나올줄 알았나, 물론 내가 조심성이 없었던 것도 맞지만.”

[아무튼 앞으로는 조심 좀 하라고….]

“알겠어, 근데 스탯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응.]

“그 스탯 레벨 올릴때 필요한 ‘스탯포인트’ 말이야, 어떻게 모아?”

[어?]

전직 후, 나는 시스템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보기 위해 애를 썼다. 그 중에서도 전직 후에 생겨난 이 ‘스탯’들. 그리고 ‘스탯 포인트(SP)’. 스탯의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이러한 포인트가 필요했다. 다만 이상한 것이 있다면, 그 ‘포인트’를 모을 방법이 딱히 없는 것 같다는 점.

꽤 얼빠진 소리를 내던 시스템이 내 질문을 곱씹어보는가 싶더니 이내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튜토리얼 퀘스트, 안 받았어?]하는 그 말에 되려 어리둥절해진 건 나였다. 튜토리얼이라니, 그런 것도 있었어?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이런 불친절한 시스템이 다 있냐며 불만을 쏟아냈건만. 하지만 나는 튜토리얼의 ‘ㅌ’도 구경해본 적이 없기에, 부정의 대답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거 받은적 없는데.”

[그럴 리가…. 잠시만, 그럼 ‘포인트’ 관련 퀘스트는?]

“그것도 받은 적 없어.”

[상태창 보는 방법은 알아? 너 레벨은, 레벨은 몇인데?]

“상태창…?”

[‘상태창 확인’이라고 말해봐.]

“상태창 확인,”

[플레이어 : 율리아 비안 오르테 / ? 혜 ?]

직업 : 블래스터

칭호 : 검색 결과 없음.

레벨 : 로딩 실패(ERROR/09)

스탯 : 체력 (LV. 1)

운 (LV. 측정불가)

민첩 (LV. 1)

지능 (LV. 1)

힘 (LV. 1)

패시브 스킬 : ?사수 (LV. 1)

?릿 부?? (LV. 1)

인피?티 불? (LV. 1)

스킬 트리 : 해당없음.

진행 중 : [?인 퀘?트 : 아카?미]

완료 : [?인 퀘?트 :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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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를 조회할 수 없습니다.

원본 오류

스크립트 오류

정보 조회 불가능

ERROR CODE : 09

시스템 권한 : 없음

수많은 물음표들. 플레이어의 ‘정상적인’ 상태창이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너무나도 확실하게 알 수 있을법한 상태창. 아마도 게임의 ‘튜토리얼’에 속해있어야 할 정보들을 전혀 모르고 있는 나. 시스템의 반응. 이 모든것들을 도합했을 때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리기에는 충분했다.

[‘가시모드’라고 말해봐.]

“…가시 모드,”

반투명하던 푸른 창이 조금 더 짙은 색으로 변했다. 물음표 가득한 내 상태창을 읽은 시스템은 할 말을 잃은 듯 했다. […누군가가 개입했어….] 시스템의 중얼거림이 짙어졌다. 무슨 의미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으나, 이 ‘오류’가 단순한 사고는 아니라는 뜻은 분명해보였다.

한동안의 침묵이 이어졌다. 이따금 [말도 안 돼, ]하는 시스템의 중얼거림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율리아 비안 오르테, 내 이름이 아닌 타인의 이름을 멍하니 바라보던 내 시선이 그 옆으로 향했다. ‘?혜?’. 이 물음표에 가려진 글자들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름? 그래, 아마도 누군가의 이름일 터였다. 예를 들면, 예전의 내 이름이라던가 하는,

거기까지 생각하던 나는 돌연 생각을 멈추었다. 이름? 그 한 단어가 이렇게 낯설게 느껴질 줄이야. 무언가가 이상했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시스템이 돌연 입을 열었다.

[너]

장난기라고는 한 줌도 없는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시스템이 내게 물었다.

[네 원래 이름이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