君が来た時間

2話 「どんどん気になる」

다음 날, 서윤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카페에 나왔다.

이유는 없었다. 진짜로. 아니면 심란해서였을까?

 

유니폼 앞치마를 두르다가도, 컵을 정리하다가도, 자꾸 어제 일이 떠올랐다.

 

검은 우산.

젖은 어깨.

 

“같이 가실래요?”

 

그리고 집 앞에서 들었던 말.

조심히 들어가세요.

 

서윤은 괜히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마음이 괜히 붕 뜬 것 같았다.

 

“왜 그래?”

 

사장님이 커피 원두 포대를 정리하다 말고 물었다.

 

“네? 뭐가요?”

“아침부터 멍하니 서 있잖아.”

“안 멍했거든요.”

“멍했어.”

 

사장님은 피식 웃더니 일부러 작게 말했다.

 

“어제 그 단골 손님이랑 같이 갔다며.”

 

서윤은 바로 고개를 들었다.

 

“누가 그래요?”

“내가 봤는데?”

“…사장님이 보셨으니까 아는 거잖아요.”

“그래서. 좀 친해졌어?”

“안 친한데요.”

“얼굴 반반하던데 카페 알바 해 볼 생각은 없대?”

 

서윤은 어제 들은 말인데도 또 웃겼다.

 

“하하, 모르겠는데요.”

“왜. 관심 없나?”

“사장님.”

“왜.”

“일하세요.”

 

사장님이 웃음을 참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서윤은 괜히 냉장고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귀가 조금 뜨거워진 것 같았다.

안 친하다.

 

진짜 안 친했다.

그냥 단골 손님이고, 어제 우연히 우산을 같이 쓴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 위 종이 딸랑 울릴 때마다 자꾸 고개가 들렸다.

혹시 올까 봐.

 

…아니, 평소에도 오는 사람이니까 올 수도 있는 거지. 그걸 기다린 건 아니고.

서윤은 그렇게 생각하며 계산대 아래 컵 뚜껑을 정리했다.

 

딸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서윤은 자기도 모르게 바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정말로 김태형이었다.

 

어제와 비슷하게 조용한 얼굴. 오늘은 검은 바람막이를 입은, 평소보다는 가벼운 차림새였다.

태형은 언제나처럼 별말 없이 카운터 앞으로 걸어왔다.

 

심장이 괜히 툭 하고 뛰었다.

서윤은 얼른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만들었다.

 

“어서 오세요.”

 

태형은 서윤을 보고 아주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목소리를 듣자 어제 같이 걷던 장면이 또 떠올랐다. 서윤은 괜히 손끝에 힘을 줬다.

 

“오늘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맞으시죠?”

 

태형이 짧게 웃었다.

 

“네. 그것도 기억하세요?”

“단골 손님이시니까요.”

“그럼 저만 기억하는 건 아니네요.”

 

순간 서윤의 손이 멈췄다.

딱 한순간이었는데, 사장님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괜히 뒤에서 헛기침을 했다. 서윤은 아무렇지 않은 척 얼음을 컵에 넣었다.

 

“어… 자주 오시니까요.”

“다행이네요.”

 

다행이 뭐가 다행이라는 건지.

서윤은 괜히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음료를 다 만들고 컵을 건넸다.

 

“나왔습니다.”

 

태형은 컵을 받으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평소랑 똑같은 말이었는데 오늘은 왜인지 다르게 들렸다.

태형은 늘 앉던 창가 자리로 갔다. 서윤은 카운터를 닦는 척하면서도 자꾸 그쪽을 봤다. 태형은 오늘도 창밖을 보다가, 가끔 책을 보고, 또 가끔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런데 어제랑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가끔 서윤 쪽을 본다는 거.

딱 오래 보는 건 아니었다. 그냥 뭔가 필요해서 보는 것처럼, 혹은 별 뜻 없는 것처럼 잠깐씩. 그런데 그 잠깐이 더 신경 쓰였다.

 

서윤은 괜히 다른 손님 주문을 더 크게 받았다.

 

“네, 바닐라라떼 한 잔 맞으시죠?”

 

그러자 사장님이 옆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왜 이렇게 목소리가 커.”

“안 컸거든요.”

“커졌어.”

“사장님 진짜…”

 

서윤이 작게 이를 갈자 사장님은 아주 즐거운 얼굴로 웃었다.

점심 시간이 지나고 손님이 조금 줄어들자, 카페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 얼음 부딪히는 소리, 페이지 넘기는 소리만 들릴 정도였다.

 

서윤은 빈 컵을 정리하다가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태형 자리 근처 테이블을 닦으려는 척, 그냥 지나가는 척.

그때 태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제 괜찮았어요?”

 

서윤은 걸음을 멈췄다.

 

“네?”

“비 많이 왔잖아요. 감기 안 걸렸나 해서.”

 

너무 아무렇지 않게 묻는 말이라, 오히려 더 당황스러웠다.

서윤은 손에 든 행주를 괜히 한번 접었다.

 

“아, 네. 괜찮았어요.”

“다행이네요.”

“태형 씨는요?”

 

말이 먼저 나가고 나서야 서윤은 아차 싶었다. 손님한테 이름을 이렇게 부르는 게 너무 자연스러웠나 싶어서.

민망해서 목 뒤를 만지작거리는데, 태형은 별 반응 없이 대답했다.

 

“저도 괜찮아요.”

 

 

그리고 아주 잠깐, 웃었다.

그 웃는 얼굴을 본 순간 서윤은 속으로 작게 망했다, 싶었다.

평소엔 조용하고 무표정한 편인데, 그렇게 웃어 버리면 반칙 아닌가 싶어서.

 

서윤은 얼른 시선을 피했다.

 

“다행이네요.”

“어제 집 앞까지 가는 길, 생각보다 안 멀더라고요.”

“네? 아…”

“혼자 갔으면 더 오래 걸렸을 것 같아서.”

 

서윤은 대답 대신 행주만 만지작거렸다. 괜히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는데, 듣는 사람 심장에는 안 좋았다.

 

마침 주문벨이 울렸다.

서윤은 속으로 살았다 싶어서 얼른 돌아섰다.

 

“주문 들어와서요!”

 

태형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하세요.”

 

서윤은 계산대로 돌아오면서도 심장이 진정이 안 됐다.

 

뭐야 진짜.

왜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지?

아니, 아무렇지 않은 건가?

 

그날 서윤은 이상할 정도로 실수를 많이 했다. 컵 뚜껑을 반대로 끼우고, 영수증을 두 장 뽑고, 시럽 펌프를 한 번 더 눌렀다. 사장님은 그런 서윤을 보더니 대놓고 웃었다.

 

“서윤 씨.”

“…네.”

“지금 정신 여기 없지?”

“있거든요.”

“저 창가 쪽에 가 있나 본데.”

“사장님.”

“왜.”

“진짜 혼나요.”

 

사장님은 결국 소리 내서 웃었다.

저녁이 가까워질수록 손님은 점점 줄었다. 태형은 오늘도 꽤 오래 앉아 있었다. 서윤은 괜히 그 사실이 반가웠다. 하지만 그걸 티 내면 안 될 것 같아서 더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다 마감 한 시간쯤 전, 태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윤은 그걸 보고 괜히 아쉬웠다

 

아, 오늘은 먼저 가는구나.

 

왜 아쉬운지도 모르겠는데 그냥 그랬다.

태형은 계산대 앞을 지나 문 쪽으로 가다가, 갑자기 다시 멈췄다. 그러고는 뒤를 돌아 서윤을 불렀다.

 

“서윤 씨.”

 

이름을 듣는 순간 괜히 가슴이 또 뛰었다.

 

“네?”

 

태형은 잠깐 무언가 생각하는 얼굴을 하다가 말했다.

 

“내일도 일해요?”

 

서윤은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아… 네. 해요.”

“다행이네.”

 

또 다행이래.

오늘만 벌써 두 번째였다.

서윤은 괜히 웃음이 나올 것 같아서 입술을 꾹 눌렀다.

 

“왜요?”

 

태형은 문고리를 잡은 채 아주 조금 웃었다.

 

“내일 올 건데.”

 

그리고 정말 아무렇지 않게, 그 말을 남기고 카페를 나갔다.

 

딸랑.

 

문이 닫혔다.

 

서윤은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사장님이 뒤에서 물었다.

 

“뭐래?”

 

서윤은 멍한 얼굴로 문만 보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내일 온대요.”

 

사장님이 바로 웃었다.

 

“그걸 굳이 말하고 가?”

“그러니까요…”

“서윤 씨 보러 오나 본데?”

“아니거든요.”

 

부정은 했지만, 이상하게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다.

내일도 올 건데.

그 말이 하루 종일 머릿속에 맴돌 것 같았다.

 

마감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똑같았다. 비는 오지 않았고, 어제처럼 우산을 같이 쓸 일도 없었다. 그런데도 서윤은 자꾸만 검은 우산 아래 걷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리고 오늘 문 앞에서 돌아보던 태형 얼굴도.

서윤은 가방 끈을 꼭 쥐었다.

 

진짜 이상했다.

그냥 단골 손님인데.

조금 친절한 손님일 뿐인데.

왜 이렇게 자꾸 신경 쓰이지.

 

 

그날 밤, 침대에 누운 서윤은 괜히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연락처도 없고, 따로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그냥 그러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떠올랐다.

 

내일도 올 건데.

 

서윤은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작게 중얼거렸다.

 

“…왜 그걸 말하고 가.”

 

그런데도 입꼬리는 조금 올라가 있었다.

내일 카페 문이 열리면, 자신은 또 제일 먼저 그쪽을 보게 될 것 같았다.

그걸 이미 알고 있다는 게 제일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