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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 선택이야_
비명 소리가 그녀의 귀를 찔렀다. 수도는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고, 사방은 시체로 장식되어 있었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가족을 죽인 카센느 대공가의 공녀이자 남편을 이용해 자신의 가족을 죽여 버린 대공비. 누군가의 가족이자 아내였던 이 여자가 어째서 이런 상황을 펼쳐 놓았던 것인가.
덜컥 - !
"한세리!!"
온몸에 피를 뒤덮어 쓴 그는 당장이라도 가느다란 그녀의 목을 검으로 베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의 분노는 그녀에게 뼈저리게 전해졌다.
"안녕, 나의 남편?"
"왜 그랬어."
"복수. 알면서 뭘 묻는지···."
그녀는 그의 부르르 떨리는 손을 애써 무시한 채 그의 얼굴을 떳떳하게 올려다봤다. 고상했던 그녀의 얼굴엔 살기 어린 표정만 가득 남아 있었고, 그녀의 손에 묻은 피가 역겹기 그지없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욘 없었잖아."
"···맞아. 이렇게까진 할 필요 없었지."
"도대체 왜!!"
"억울하잖아."
"뭐?"
"그들만 죽으면 뭐해? 나도 죽는데."
시한부인 그녀의 선택은 제국의 수도를 파멸시키는 것이었다. 잡초는 뿌리를 확실하게 뽑아놔야 다시 자라지 않는 법. 그녀의 치밀한 계획의 결과는 제국의 수도를 무너뜨렸다.
"화가 나? 너의 소중한 사람들이 죽어서?"
"난···."
"살인귀라고 불리는 네 곁에 유일하게 붙어 있는 그녀가 내 손에 죽어서 내가 증오스러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너의 그 공주님을 죽인 건 미안해. 하지만 거슬리는 건 다 죽일 수 밖에 없었는 걸?"
황족 바로 아래 그 악명 높다는 귀족인 당신. 그리고 나는 그런 당신의 아내. 뭐 하나 부족한 거 없이 자랐을 것만 같은 공녀인 내가 뭐가 그렇게 억울할까.
"나를 이용했으면 됐었을 거야."
"이미 난 널 이용했어. 아주 나쁜 쪽으로."
"...널 이해할 수 없어."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이를 악물고 복수를 위해 지옥에서 버텨온 나를 누가 이해하겠어? 만인의 장난감이었던 내가 똑같이 남을 장난감 취급을 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인 건지...
망가질 대로 망가진 나는 화려하게 죽음을 맞이할 거야. 시한부이기에 소리 소문도 없이 조용히 잊혀가는 공녀가 아닌, 제국을 무너뜨린 악명 높은 공녀로 역사에 남겨질 것이다.
"기회를 걷어찬 건 당신이야. 날 죽일 수 있는 기회는 많았다는 거, 당신도 알고 있잖아?"
"내가 어떻게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닌 너를···."
"아, 어차피 곧 죽을 시한부니까?"
"뭐...?"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녀의 몸이 약한 건 알고 있었지만 시한부인 걸 숨기고 있었던 건 몰랐겠지.
"기억나? 내가 첫날밤을 보내지 않겠다고 했던 거."
"그건... 강제로 하게 된 혼인이 싫어서가 아닌가. 그리고 그 상대가 나라서···."
"틀렸어."
"그럼 왜...?"
"우리의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았거든."
왜 아까 떨고 있던 그 손이 이젠 화가 나서가 아닌 슬픔을 참기 위한 떨림 같을까.
"당신이 싫어서가 아니야. 그 아이 때문에 내가 흔들릴까 봐. 내가 죽어버렸을 땐 그 아이는... 불행한 삶을 살아야 될지도 모르니까..."
"뭐...?"
"왜 그런 표정을 지어. 왜 당장 죽음을 앞둔 나보다 아픈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난 너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했었을 거야."
"왜? 날 사랑하기라도 했니?"
감정 따위는 없을 것만 같은 당신의 눈에 내가 들어오긴 했을까. 나는 지금도 당신을 잘 모르겠어. 왜 이지경이 올 때까지 나를 살려뒀는지.
당장이라도 들고 있는 검으로 내 목을 베어내도 시원찮지 않을 텐데, 뭘 그렇게 망설이고 있는 거야. 모든 걸 망가뜨린 내가 뭐라고.
"너만 모를 거다. 너만 내 뜻을 모를 거야..."
"···자, 이제 그만 죽여줘."
"...."
"처음이자 마지막일 내 부탁이야. 당신의 아내로서 죽음을 맞이하게 해 줘."
"정말 끝까지 이기적이구나."
그는 커다랗고 날카로운 검을 그녀의 목에다 가져다 댔다.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고마웠어요. 어쩌면 사랑했을지 모를 당신에게 인사할게요."
"한세리..."
"안녕, 나의 남편이여... 다시 만나는 그날엔 우리 꼭 행복해 봐요."
그녀의 마지막 미소는 지독하게도 예뻤다.

"부디 다음 생에는 꼭 행복하길 바라."
고통 없이 그녀를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홀로 남겨진 이곳에서 나는 이대로 끝내지 않을 것이다. 절대.
당신, 다시 만난다면 내 이름을 불러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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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이 움짤이 나오기 전 남주는 누구로 예상하셨나요? 판타지를 놓지 못하는 저는 또 하나 던지고 갑니다...
총총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