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로잡히다 (9) 협상
전정국이 끓여준 북엇국은 보기에 꽤나 근사했다. 맛도 아주 괜찮았다. 뱀새끼이지만 쓸모가 있군.... 전정국은 내가 와구와구 밥먹는 모습이 놀라웠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 쪼꼬만한 게 되게 잘 먹는다."
"아.. 밥다운 밥이 너무 오랜만이라...꺼억"
나는 나도 모르게 만족스럽게 배를 쓰다듬고는 트름을 했다.
"너 미친거 아냐..?
아무리 내가 남자로 안 보여도 그렇지, 너무하네"
"닥쳐라, 밥 맛있게 잘하는 뱀새끼야.
너 진짜 밥도 못 했으면, 나 서장님께 오늘 전화할 뻔"
"어쨋건, 잘 먹은 것 같으니 좋네"
내 말에 전정국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름 사람이라고 칭찬은 좋아하네... 아고 그나저나 맛있게 잘먹었다. 방금 먹은 밥은 너무 만족스러워. 일단 1주일 여기서 지내야하니까 얘랑 잘 지내려면 뭔가 협상이 필요했다. 이 새끼랑 같이 지냈다가는 일주일동안 약에 취해 살아야할 것 같다. 오소리들은 그 쎄다고 하는 킹코브라 독에 노출되어도 잠깐 자고 일어나면 아무런 영향 없이 말짱해지지만, .... 왠지 기분 나쁘다.
"야, 전정국. 나랑 어쨋든 일주일 지내야하니까 조율 좀 하자."
"오, 너 내 이름 처음 불렀다...? 오소리 아가씨?"
"어쭈구리... 너도 해주씨라 불러라."
"그럼 너도 전정국 하지 말고 정국씨라 불러"
뭐? 이 전정국새끼가....
"좋아. 정국씨... 너 내가 이 집에 있는 동안 외현화 안하고 얌전히 지낼테니까 그거 주사 나한테 놓지마.
너가 밥해주는 동안 내가 설거지는 할께. 내가 요리는 할 줄 몰라서.. 그냥 밥은 니가 좀 해주라...
그리고 빨래는 각자. 청소는 각자 쓰는 방은 각자하고 공용구역은 하루씩 돌아가면서 하자. 콜?"
"참나... 그게 다야?"
"어, 다인데...?"
"야, 보통 협상카드는 한번에 다 꺼내는게 아닌데...
하나씩 꺼내야지..."
아하? 후회하긴 늦었군... 아우... 아무래도 난 좋은 스파이가 되긴 틀린 것 같아..
"후자는 콜, 내가 밥하면 니가 설거지하고, 공용 구역은 번갈아가면서 해. 뭐 일주일이긴 해도 깨끗히 지내면 좋지. "
"그래 좋아. 그리고 전자는...?"
"그건 싫은데...?"
"뭐?"
"나 내 집에서 오소리 털 하나 보기 싫거든? 내가 잘 때 니가 외현화해서 자는지 내가 알게 뭐야. 그건 싫어. 너 잘 때까지 외현화 안 한다고 장담할 수 있어?"
그렇다.. 인간의 모습이 잘 유지가 안되는 수인도 있긴 하다. 특히 잘 땐 편하게 자야하니까.. 난 잘 때도 왠만하면 외현화는 안하는데... 하... 근데 각자 방에서 따로 잘 건데 내가 외현화 하던 말던 무슨 상관이냐고..!!!!
"아니 잘 때까지 무슨 상관? 물론 나는 상관 없지만 말이야...
어차피 안 보이잖아..!"
"안 보일 때 어쩔 줄 알고..
나는 내 집에 오소리 털 한 개라도 날리면 싫은데...?"
"야 이 약쟁이 뱀새끼야...!!!!
너 수인인권회에 신고한다...?"
"해보든가... ?!
공무집행 중에 방해가 될 경우에는 약물 쓰는 거 합법이거든?
게다가 지금 너 공식적으로는 조사중이라고"
"아 뭐야... 너 진짜 협상은 결렬이다..!
너 내가 나가기만 해봐.. 뒈졌어 이 나쁜 뱀 새끼야!!"
조율은 결렬이다. 아씨 저 뱀새끼 존나 열받는다.
삐져서 고개 돌리고 앉아있는데 전정국이 다가왔다.
"좋아. 사실 니 말이 맞긴 해... 그럼 주사 그건 빼자."
"아우 씹팔.. 당연한 걸 진짜...
너한테 오소리 모습만 안 보이면 될 거 아냐"
"그리고 너 욕 좀 그만해.
그거 약쟁이니 뱀새끼이니 하는 거 좀 별로거든.."
"엇... 어 알았어."
"쌍시옷 들어가는 말도 그만하고...
진짜 얼굴은 이쁘게 생겨가지고는 말은 진짜 막하네..
욕하는 거, 듣는 사람은 은근 상처야"
"알았어. 난 외현화도 욕도 안 할테니까,
너 주사기 바늘 끝도 나한테 보이지 마라.."
왠지 전정국 승으로 끝난 것 같아서 기분은 떫더름한데, 내가 말을 거칠게 한 건 인정... 그런데 왠지 욕을 안쓰려니 나는 승질이 한풀 꺾인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처음 만났을 때 부터 욕 안나오게 생겼냐고...
어떤 놈이 미행하는 거 피하느라 골목길에 들어갔더니
재수없게 뱀새끼를 만나가지고는..."
"어 뱀새끼...? 너 또 욕 썼다..?"
"아, 미안... 그 말은 취소.. 여튼 나름 도망가려고 한 거였는데 어디 지하 감옥 같은데 갇혀버리고..
내가 승질 안 내게 생겼냐고.."
"근데, 널 미행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어.. 그거 경찰 아니었어?"
"어떻게 생긴 사람이었는데...?"
"글쎄... 검은 모자에 점퍼입고...
빨간머리...
빨간 머리가 모자 아랫쪽으로 보였어."
"빨간 머리? 우리 서에는 그런 사람은 없어."
전정국은 내 이야기를 제법 진지하게 들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무렴 미행하는데,
빨간 머리가 가기는 좀 그렇지 않나...?"
"엇.. 것도 그렇네..."
"아.. 미행하는 놈은 경찰이 아니라 그럼... 뭐지..?"
빨간 머리 하니까 생각나는 사람이 이제야 한명 떠올랐다. 김남준 원장이 이번에 데리고 온 사람...그 사람은 사냥과 관계없는 인물이어서 생각을 못했는데 우리 연구소 막내... 사슴 수인이었다.
그런데 왜 나를...?? 일단은 그 사람이 맞는 지 확실치도 않아서... 확인부터 해야할 것 같긴 하다.
"뭐 짐작가는 사람이라도 있어?"
그 사슴수인의 이름은 정호석. 그런데 내가 오소리 사냥터에 가는 줄 알고 쫒아온 건가...? 아니면 그냥? 잘 모르겠다.
"혹시 내가 골목길에 들어오고 나서 뒤따라 들어온 사람은 없었어.?"
"아니 없었는데? 난 니가 쓰러지자마자 바로 심문하려고 데리고 나왔지. 혹시 뭐 짚히는 게 있어?"
"주변에 빨간 머리가 하나 있긴 한데 영문을 모르겠네.. 우리랑 아무 관련 없는 애여서..."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일주일 시간이 생긴 김에 주변 사람들을 좀 점검해봐야겠다.
일단 오늘 연구실 출근 못 한다고 전화부터 해야겠는데...?
뭐라고 해야하지..? 병가를 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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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머릿속에 지진정 (2023)
*오타만 한번 수정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