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àm thế nào để sống sót khi là diễn viên phụ

- 작가가 조금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썼습니다.

- 대체 무슨 글인지 작가도 모릅니다.

- 왜 썼는지 작가도 모릅니다.

- 클리셰 덩어리입니다.

- 가볍게 읽어주세요... 어차피 개연성 개나 준 엉망진창인 글입니다...

-TRIGGER WARNING! 2010년대 초에 유행하던 인터넷 소설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폭력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엑스트라로 살아남는 법

: 어느 날 소설 속 엑스트라가 되어버렸습니다.

W. 그쁨





종합 순위 1순위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으로 체육대회를 끝낸 우리 반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일전에 말했듯, 대기업 자제들이 다니는 학교이다 보니 기껏해야 고등학교 체육대회에 불과한 행사라 하더라도 그 상금이 꽤 컸던 탓에 그날의 종례는 상금을 어디다 쓸 것인지에 대한 열띤 토론이 대신하게 되었다. 물론 나야 입 다물고 한 마디도 보태지 않았지만. 이 역시 일전에 말했듯, 한낱 엑스트라 23의 발언에는 아무런 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깟 상금(이라기엔 너무 큰 액수이긴 했지만)보다, 체육대회에서 전정국의 행동이 더 신경 쓰였던 내 머릿속에 상금의 사용처 따위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왜 소설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지? 김여주가 아닌 내가 계주에서 넘어진 걸로도 모자라 하필이면 그 상황에서 벗어나게 도와준 인물이 전정국이라니. 단순히 남주인공 후보인 전정국의 착하고 다정한 심성에 대해 어필하기 위한 장면인가? 그렇다기엔 그냥 넘어진 나를 일으켜주고 말 상황에서 구태여 이런저런 말을 보탠 것이나, 계주가 끝난 뒤 굳이 날 찾아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려 보였던 전정국의 행동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었다. 아니, 그런 건 원래 여주인공한테 하는 거 아니냐고. 난 분명 엑스트란데, 근데 왜 자꾸 일이 꼬이는 것 같지. 그저 옆에서 주인공들의 로맨스를 조용히 구경하기만 하겠다던 내 목표는 이미 글러먹은듯했다. 이런 시발….

아무튼, 이 소설의 줄거리에 대해 세세하게 알지 못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추론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은 명확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쓸 수밖에. 그래서, 종례 내내 이런 잡생각들 속에 허우적거리던 나는 학교가 끝난 뒤 집에 돌아오자마자 자연스레 우리 집 거실 소파를 차지한 김석진과 박지민을 털었다. 좋은 말 할 때 말해. 멱살을 붙잡고 짤짤짤짤 흔들었더랬다.

"눈 마주쳤어."

"그거 착각이야."

"눈 마주쳤다고,"

"자의식 과잉이야."

"…많이 참았다. 너 이리 와 이 새끼야,"

그런데도 얌전히 대답해 주는 법이 없어, 나는 기어이 김석진의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손에 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석진이 찢어질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당장 놓으라며 고성을 질러대는 김석진의 목소리 사이로, 피곤에 찌든 얼굴로 내게 멱살을 잡힌 채 죽은 듯 소파에 기대 있던 박지민의 목소리가 섞여들었다.

"네가 뭔 생각하는지는 대충 알겠는데, 전정국은 빙의자가 아니야…."

앗, 그래? 머쓱함에 저절로 손에 힘이 풀렸다. 그새 땀이 밴 손에 짙은 갈색의 머리카락이 몇 가닥 붙어있었다. 태연하게 손을 털어 머리카락을 떼어냈다. 김석진이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만의 평화였다.





📘 📗 📕





중학생 시절, 노트에 열심히 필기하는 척 고개를 푹 숙이곤 다른 손으로 열심히 책상 서랍에 숨겨둔 MP4 화면을 넘기곤 하던 그 시절엔, 지금도 간간이 보이곤 하는 '재벌 남주'가 유행이었더랬다. 그러니까, 가난한 여주인공에게 푹 빠져서 간이고 쓸개고 카드고 회사고 죄다 여주인공의 손에 쥐여주고 싶어 안달이 난, 그런 남주인공 말이다. 그리고 그런 주인공들이 만나, 서로 사랑하기 위해 넘어야 할 고비는 당연히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여주인공의 가정사나 경제적 형편을 굉장히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남주인공의 부모님이라던가, 재벌집 아들로서 아주 어릴 적부터 존재했던 남주인공의 약혼녀라던가…, 뭐 그런 것들 말이다. 그리고 그런 소설에는, '대부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다 싶을 정도로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있다. 나처럼 학생 시절 몰래 인터넷 소설을 읽어대던 사람이라면 정답을 듣곤 '음~ 그치~ 재벌 남주가 등장하는 소설에서 이 장면이 빠지면 섭하지 그래~' 하는 반응을 내보일 것이라 장담한다. 무슨 말이 하고 싶어 서론을 이렇게 줄줄줄-, 거창하게 늘어놓냐고?

"거기 빈자리들은 뭐야? 누구야?"

담임이 인상을 찌푸리며 하는 말에 반장이 익숙한 이름들을 읊었다. 당장에라도 출석부에 작대기를 그을 듯 행동하던 담임이 멈칫거리더니 뒤통수를 벅벅 긁어댔다. 그러고는 말하는 것이었다.

"지각생들 오면 교무실로 오라고 해라-,"

끝내 출석부에 점 하나 찍지 않고 출석부를 덮는 담임의 모습을 보며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해보자. 정답이 궁금할 사람들을 위해 재벌 남주가 등장하는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곤 하는 소재가 무엇인지부터 밝혀보자면, 나는 그 소재가 다른 무엇도 아닌 '납치'라고 단언할 수 있다. 납치, 과연 골목골목에 CCTV가 빽빽히 들어서 있고, 경찰들이 2인 1조로 꾸준히 순찰을 하고, 누군가의 정보가 머리카락 한 올이면 좌라락-, 펼쳐지는 훌륭한 과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지만서도, 현실에서도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는 사실에 더해 이곳이 '소설'이라는 점이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내가 난데없이 납치 따위의 소재에 대해 말을 꺼낸 이유를, 내 빙의 라이프를 함께 즐겨주고 있는 여러분들이라면 쉽게 예측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B4들 오늘 학교 안 오나?"

"그러게…. 어디 파티라도 간 거 아닐까?"

"아침부터? 그리고 B4들 파티 같은데 잘 안 간다고 하지 않았어?"

"아침부터 준비해서 저녁에 가는 거 아닐까? 잘 모르겠지만…,"

"음, 그런가…."

반 아이들이 떠들어대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곳이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실감이 났다. 파티 운운하는 것만 봐도, 역시 이곳 남주인공 후보들도 정장과 드레스를 빼입고 하하 호호 거리는 파티는 피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은 덤이었다. 자리를 바꾼 탓에 이제는 내 뒷자리가 아닌 내 옆자리에 자리하게 된 이유진이 턱을 괴곤 말했다.

"진짜 파티라도 간 걸까? 아-, 부럽다-. 나도 V 기업이나 P 기업 파티 가보고싶어어-,"

…굳이?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소설 생활 3개월이면 이제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말을 꿀떡 삼켜내고 표정관리를 쉽게 쉽게 할 수 있는 짬은 되었기에 나는 빙긋 웃으며 굿이, 하는 단어를 삼켰다. 자, 내가 아까 뭐라 그랬는가. 일반적으로 '재벌 남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이라면 '납치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꽤 높다고 하지 않았는가?

"어? 근데 여주는 왜 아직 안 왔지?"

"……."

"헉! 혹시 B4랑 친구라서 파티에 같이 간 걸까…!"

응, 그거 아니야…, 아니, 조만간 그렇게 될 것 같긴 하지만 그게 오늘은 아니야. 속으로 이유진의 말에 대꾸해 주며 아까부터 열심히 반짝이며 알림이 왔음을 알려주는 핸드폰의 화면을 껐다. 유력한 남주 후보일 거라 예상되는 김태형은 무려 V 기업, 또 다른 남주 후보인 박지민이 P 기업이라는 사실을 되짚어보자. 그렇다면 김여주를 비롯한 우리의 주인공 무리들이 아직까지 학교에 등장하지 않은 이유가 대충이나마 예상될 것이라 생각한다.

"야 대박!! 김여주 납치당했대!!!"

앞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들어오는 누군가가 외친 말에 교실이 순식가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뭐라고?!'와 '진짜?!'가 난무하는 교실에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어떡하냐며 발을 동동 구르는 이유진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반 아이들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김여주의 납치 소식을 전한 아이를 둘러싸는 모습을 보며 나는 핸드폰의 잠금을 풀었다.

김석진

[ㅅㅂ]

[진짜]

[지랄맞은 소설]

박지민

[ㅇㅈ]


[ㅋㅋ]




김여주가 어떻게 납치되었는지에 대해 신나게 떠들어대는 남학생을 보며 생각했다. 저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건가? 모여있던 반 아이들 모두 그러한 사실은 안중에도 없이 김여주의 걱정이나 B …, 남주 후보들에 대해 떠들기 바쁜 것을 보며 나는 조용히 김석진의 말에 동의했다.

와, 진짜 염병할 소설….





📘 📗 📕





김여주가 납치당했다. 어떻게 된 일인고 하니, 어제저녁 9시경, 출출함에 편의점에 가기 위해 나온 김여주가 수상한 무리들에 의해 어딘가로 끌려갔다(대체 이런 세세한 설정은 어떻게 알고 있는지에 대해 묻지 말도록 하자. 나도 모르겠으니까….). 한참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는 딸에 김여주의 어머니가 신고를 했지만, 24시간이 지나지 않아 실종으로 접수할 수 없다는 말에 김여주의 어머니는 평소 여주와 친하게 지내던 B …, 남주인공 후보들을 떠올렸고, 그 길로 김태형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인 V 기업(그렇다고 하더라….)이 나섰는데 안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새벽 내내 대한민국 전역을 뒤져 기어이 김여주를 찾아낸 것이었다. V 기업뿐만 아니라 P 기업, 거기다 머리 좋은 김석진과 몸 잘 쓰는 전정국까지 합세했는데 사람 하나 찾는 건 일도 아니었겠지. 납치된 지 6시간 만에 김여주는 남주들에 의해 구출되고, 이 사건의 뒤처리를 하느라 경찰서와 병원을 왔다 갔다 하는 남주 후보들과 납치 후유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소견에 따라 병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김여주가 나란히 학교에 결석하게 된 일인 것이다.

'인소 한편 뚝딱이다, 그냥….'

뭐, 그런 이야기였다. 남학생의 말이 끝난 뒤, 교실에 있던 학생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크게 김여주는 괜찮을까? 하며 여주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는 무리와, 꼴좋다는 반응을 내보이는 무리.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그렇지, 사람이 납치돼서 험한 꼴을 봤다는데 꼴좋다는 반응이 나올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되짚어주자면, 이곳이 소설 속임을 잊지 말자. 남자 하나 때문에 온갖 권모술수가 일어날 수 있는 곳이란 뜻이다.

아무튼 그랬다. 여주인공의 납치로 인해 주인공들이 죄다 사라진 학교는 평화로웠다. 세상에, 쉬는 시간이면 남주인공들 얼굴 한 번 보겠다고 북적거리던 창문과 복도가 텅 비어있었다. 아마도 오늘 이후로는 겪지 못할 평화로움을 만끽하며 나는 여느 때보다 훨씬 평화로운 학교생활을 했더랬다. 물론, 납치 사건이 워낙 큰 사건이었던 탓에 귀에 들려오는 이야기가 죄다 김여주의 납치 사건이라는 점이라던가, 이유진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의 8할이 남주인공들과 여주의 납치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점에서 절반만 이룬 평화이긴 했다. 아무튼, 평소보다 평화로웠다는 게 중요하지.

"오늘 결석한 애들이 많아서 청소구역 임시로 배정했으니까 다들 확인해-!"

…하필이면 임시 청소구역으로 체육 창고가 당첨되었다는 점도 제외해야겠다.

"으아-, 나 화장실 걸렸어어…. 연주 너는?"

"…나 체육 창고…."

"허얼, 거기 혼자 해야 되는 거 아니야? 같이 가줄까?"

"아냐, 됐어. 화장실도 둘이서 하기엔 빡빡하잖아,"

어떻게든 되겠지-, 내 말에 이유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어! 대답했다. 체육 창고라, 먼지 구덩이라 할 수 있는 청소구역을 기피하는데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이유진과 같은 평범한 학생이라면 그저 혼자 해야 하는 구역임에 비해 물품이 많고 먼지가 많다는 이유만 들겠지만, 내가 소설 속에 빙의됐단 사실을 늘상 머릿속에 새기고 있던 나는 거기에 다른 한 가지 이유가 추가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온갖 사건사고가 다 일어나는 곳이 체육 창고잖아…!'

예컨대 뭐, 남주인공과 누군가가 나누는 뜨거운 애정행각을 의도치 않게 목격한다던가, 누군가에 의해 체육 창고에 갇힌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리고 오늘 종례 없으니까 다들 청소만 제대로 해놓고 하교하면 돼-,"

물론, 그런 해프닝들은 여주인공에게 한정되어 일어나는 일들임을 알고 있기에, 나 또한 그저 그 먼지 구덩이 속에서 어떻게 교복을 버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나 하는 고민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주인공들이 죄다 학교에 없는 날이기도 했으니,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었다. 다행이다. 종례가 없단 소리에 반색하며 가방을 싸는 반 아이들 사이에서 나 또한 여유롭게 가방을 싼 뒤, 같은 화장실 청소에 당첨된 여자아이와 함께 교실을 나서는 이유진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내일 봐, 연주야-! 늘 그랬듯 발랄한 목소리로 인사하는 이유진에게 방긋 웃어 보였다.

효율적이지 못하게 체육관 근처에 별도로 지어진 체육 창고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누가 인소 속 학교 아니랄까 봐, 은하별 고등학교의 체육 창고는 밖에서 자물쇠를 거는, 그러니까 누군가를 가두기에 아주 최적화된 모양새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암만 엑스트라라고 해도 말이지, 눈앞에서 이런 걸 보면 찝찝할 수밖에 없다고…. 달랑달랑, 굳게 잠긴 자물쇠에 꽂혀 있는 낡은 열쇠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후, 먼지 돌았나…,"

쓰지 않는 것이 분명한 교구들에 쌓인 먼지들이 한숨에 무게를 더했다. 개 더러워. 최대한 교복이 더러워지지 않게 움직이려 해도 온갖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먼지들이 그런 내 움직임을 소용없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원래 체육 창고 담당은 김여주 아닌가? 누가 여주인공 아니랄까 봐 사건에 엮이기 좋은 곳에 기가 막히게 배정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뜀틀에 앉은 먼지들을 털어냈다. 근데 청소는 열심히 안 하나 보네. 하는 생각은 덤이었다. 나 같은 엑스트라와는 달리 스릴 넘치는 삶을 살고 있으니까, 뭐, 이런 세세한 곳에 힘 빼기 싫을 법 하다는 생각도 들더라. 적어도 나는 이딴 먼지 구덩이에 감금당할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체육 창고의 창문은 무슨 감옥마냥 쇠창살이 덕지덕지 달린 좁디좁은 창문이었는데, 그 탓에 햇빛을 조금이라도 들이기 위해서는 창고의 문을 활짝 열어놓아야 했다. 즉, 빠르게 어두워지는 창고 내부의 모습은 곧 창고의 문이 닫히고 있단 말과 같았다. 내가 그걸 깨달았을 땐 이미 철커덩-, 하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기 직전이었고,

덜커덩, 쾅-

하는 소리는 이미 체육 창고의 문이 굳게 닫혀버렸단 뜻과 마찬가지였다. 아니, 열쇠는 나한테 있는데? 혹시라도 누군가 자물쇠를 잠궈버리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빼둔 열쇠를 주머니에서 꺼내며 생각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이 있다면, 체육 창고의 문에 달려있던 자물쇠가 열쇠 없이도 잘만 잠겨버리는 자물쇠라는 점이겠지.

"…허, 참내…."

낡은 전구와 좁은 창문 사이에서 들어오는 빛을 제외하면 어둡기 그지없는 체육 창고 안에서 나는 허탈한 숨을 흘렸다. 나 지금, 체육 창고에 갇힌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엑스트라로서의 삶은 망한 것 같아. 내가 중얼거렸다. 그렇지 않고서야 엑스트라 주제에 체육 창고에 갇히는 쓸데없는 경험을 하게 될 일이 있겠냐는 말이다. 이런 시발….

클리셰 가득한 소설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특히나 여주인공이 곤란한 상황일 때 남주인공들이 짜잔-, 하고 나타나서 여주인공을 구해주는 흔하디흔한 장면들은 특히나 별로였다. 지금 나처럼 체육 창고에 여주인공이 갇히는 자염ㄴ이 나올 땐, 왜 핸드폰을 안 들고 다니는 거야…! 하는 생각을 백 번쯤 하며 소설을 읽는 독자가 바로 나였단 말이다. 왜, 생활 꿀팁 같은데 보면 나오지 않나? 화장실에 가더라도 핸드폰은 꼭 들고 가라고, 왜냐하면 단 1초의 미래도 예측할 수 없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가령 화장실 문이 고장 난다거나 하는 상황들 말이다. 어쨌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

아무튼, 그런 생활 꿀팁을 머릿속에 새기고 다니던 내가 핸드폰을 밖에 두고 창고에 들어오는 그런 멍청한 짓을 할 리는 없었다는 뜻이었다. 혹시나 해서 흔들어본 체육 창고의 문짝이 덜컹거리는 소리만 낼 뿐,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단 사실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 소설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에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는 법이니까.

"……."

"……."

전정국과 어두워진 길거리를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망해도 제대로 망한 것 같다. 뭐가? 내 엑스트라 인생이!





📘 📗 📕





많이 생략된 중간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다행스럽게도 핸드폰과 함께 체육 창고에 갇히긴 했지만, 그 핸드폰을 쓸 일이 없었다는 말부터 해야 할 것이다. 1순위로 생각나는 사람이 부모님도 아니고 김석진과 박지민이라는 사실이 어이가 없었지만, 내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그들인 만큼 우선적으로 연락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새벽 내도록 김여주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났던 그들이 연락을 받지 못할 정도로 곯아떨어져 있었다는 사실은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2 [자냐?]

2 [자냐고]

2 [ㅅㅂ]

2 [지금 잠이 와?]

2 [잠이 오냐고]

2 [진짜 시발….]





그래, 내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이곳이 내 현실이 아닌 소설 속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그 말은 즉, 내가 체육 창고에 갇혔다 한들, 그 상황에서 날 빼내줄 수 있는 사람이 내가 빙의자임을 알고 있는 김석진과 박지민밖에 없단 소리였다.

김석진과 박지민이 연락을 받지 않았기에 나는 곧바로 다른 사람의 전화번호를 찾았지만, 그 통화를 통해 내가 얻게 된 것이라곤 절망밖에 없었다. 체육 창고의 문이 닫혀서 갇혔다는 내 말에 대한 이유진의 대답이 이러했기 때문이다.

-응? 연주야 뭐라고?

"나 갇혔다니까??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참! 연주 너 수학 숙제 다 했어? 그거 내일까진가?

"아니, 하…, 아니면 다른 사람이라도 좀 불러주던가,"

-으악! 나 학원 늦겠다! 연주야 나 끊을게!

그러니까, 이유진이 체육 창고에 갇힌 친구를 구해주고 싶지 않았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대화를 나눈 건 아닐 것이었다. 평소 지켜봐온 것이 있는데, 이유진이 친구가 체육 창고에 갇혀있단 소리를 듣는다면 저가 집에 있건 학원에 있건 간에 당장에 달려와 나를 도와줄 법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건 충분히 알고 있단 것이다. 그런데도 창고에 갇혔단 내 말에 당장 구하러 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은 이유는 뻔했다. 내가 체육 창고에 갇힌 게 이 소설에서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기 때문에!

"이게 말이 돼?!!"

그 말은 즉, 내가 이유진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 예컨대 부모님이라던가 담임이라던가 하는 사람에게 암만 도움을 요청해 봤자, 날 구해줄법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시발! 핸드폰을 가지고 있어봤자 아무런 쓸모가 없단 뜻이었다. 꼼짝없이 김석진이나 박지민 중 한 명이 내 연락을 확인하는 걸 기다릴 수밖에 없단 소리이기도 했다. 열이 뻗쳤다. 성질이 나선 굳게 닫힌 창고의 철문을 발로 찼다. 쾅-, 하는 굉음이 울려 퍼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근데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이 있을 줄은, 심지어 그 사람이 전정국일 줄은 나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 말이다.

'거기 누구 있어요?'하는 말을 들었을 때까지도 나는 그 말을 한 사람이 전정국일 거란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인기척에 냅다 소리부터 질렀던 것이었다. 여기 사람 있다고, 문이 잠겨서 나갈 수가 없다는 내 말에 상대는 문을 열려는 시도를 몇 번 해 보더니 자물쇠가 잠겨있어 열 수가 없다 했다. 열쇠가 나한테 있음을 알리고, 미리 빼두었던 열쇠를 창문 틈으로 건네준 것 까진 좋았다. 좋았는데,

"…김연주?"

"……."

그 상대가 전정국이었을 줄은 몰랐던 거지. 체육대회에서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 불과 며칠 전이었다. 나를 알아본 전정국의 눈이 크게 뜨이며 내 이름을 내뱉는 것을 보며, 나는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원래 스토리가 이런가? 체육 창고에 갇힌 날 구해주는 게 전정국이라서? 그래서 이유진의 반응이 그랬던 걸까? 그것도 아니면, 전정국도 빙의자라던지. 생각들이 복잡하게 얽혔다. 괜찮냐고 묻는 전정국의 물음에 한 박자 늦게 반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기어이 전정국의 입에서 '위험하니 데려다주겠다'라는 말이 나온 것도 아마 느린 반응 탓이었을 거다.

많이 늦은, 어색한 하굣길에 대화라곤 한마디도 없었고, 나는 굳이 그 어색함을 타파하려 애쓰지 않은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전정국은 빙의자인가, 아닌가. 내가 저를 흘긋거리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한 얼굴로 앞만 보고 걷는 전정국을 보며 나는 김석진의 말을 떠올렸다.

"너나 박지민 같은 빙의자한테 '사실 여기가 소설 속이고, 나는 그 소설에 빙의된 것 같은데 너도냐'라고 말하면 너나 박지민처럼 당황을 한다거나, 그렇다는 대답을 하겠지만, 소설 등장인물들한테는 그게 안 먹혀."

"여기가 소설 속이라는 말 자체를 인식을 못 해. 그래서 말을 돌리거나, 모른 척하거나, 뭐…, 그런 반응을 보인단 말이지."

"네가 빙의자라는 사실을 확신한 것도 이거 때문이야. 네가 진짜 소설 등장인물이었으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묻는 게 아니고 아예 다른 소리를 했을 거란 말이지?"

박지민은 전정국에게도 이 소리를 했었다고 했다. 당황하지도 않고 말을 돌리던 전정국이라서, 얘는 빙의자가 아니구나-, 하는 확신을 했었더라고. 그러면, 전정국이 체육대회 때 내게 미묘한 반응을 보이고, 오늘 체육 창고에 갇힌 나를 구하러 온 게 다 소설 속 내용이라는 뜻일 거다. 그럴 리가. 난 엑스트라라고. 소설 줄거리를 알고 있는 김석진이나 박지민도 이런 내용은 말 안 해줬다고. 체육대회 때의 일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넘어진 것도, 오늘 체육 창고에 갇힌 것도 전부 소설 속에 나오는 일이었다면, 만약 그렇다면,

'이 개새끼들…, 아무리 그래도 창고에 갇히는 걸 말 안 해준 거면 진짜 개 너무한 거 아니냐고….'

손절각이 세게 잡히는 순간이었다. 혼자 주먹을 꾹 쥐고 분을 삭이는 내 숨소리가 거칠어졌던 탓인지 앞만 보던 전정국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괜찮아?"

"…괜찮아."

확신할 수 없다면, 내가 확인해 보면 될 일 아닌가?

나를 올곧게 바라보는 전정국을 보며 생각했다. 어쨌든 전정국은, 내가 이상하게 생각했던 상황 두 가지 모두에 엮여있는 인물이었다. 다시 말해, 빙의자로 의심할 만한 정황이 충분한 인물.

"여긴 소설 속이야,"

망설임 없이 내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너도 알고 있지?"

차라리 네가 빙의자였으면 좋겠다. 김석진과 박지민이 나를 속인 게 아니었으면 한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 하며 전정국이 되물었다. 애매한 반응에 나는 마른침을 삼키곤 다시금 말했다.

"여긴 소설 속이고, 너도 그 사실을 알고 있어,"

"……."

"맞지?"

자연스레 걸음이 멈추었다. 전정국이 웃으며 말했다.

"뭘 그런 걸 묻고 그래,"

"……."

"너도잖아."

너도 알고 있잖아. 전정국이 말했다. 주먹을 꾹 쥐고 있던 손에서 힘이 풀렸다. 다행이다.

전정국은 빙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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