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NG TRÒ CHƠI [Số sê-ri đã ngừng sản xuấ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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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GAME

NO. 01

W. 설하

[업적 달성]

축하합니다!

당신은

‘1,000번의 살해 행위’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살육을 즐기는’칭호를 획득합니다.

영광스러운 업적이 저장됩니다.

“…허,”

어이없는 헛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살해 행위’와 ‘업적’이라, 이 망할 시스템이 날 놀리려는 작정으로 쓴 것이 아니고서야, 단연코 세상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조합이라 할 수 있었다.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이를 갈던 나는 내 시야를 가로막는 새파란 시스템 창을 꺼버렸다. 그에 가려져 있던 시야가 트이며 들어선 광경은 처참하리만큼 붉은색만이 가득했다. 저 멀리서부터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역한 피비린내가 잔뜩 섞여있었다. 내 ‘업적’이 된 장면이었다. 이 검붉은, 시체들의 향연이 말이다.

끝이다, 다른 것도 아닌 내 손으로 도륙한 시체들의 산을 뒤적이며 든 생각은 그게 전부였다. 내가 하는 모든 행위, 심지어는 그것이 범법 행위이던, 살해 행위이든 간에, 무엇이든 ‘업적’으로 치부해버리는 시스템의 영향일 것이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나, 죄 닳아버린 인간성이나, 전혀 ‘인간’답지 못한 내 모습에 대한 책임을 전부 시스템에게로 돌려버리고 마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구질구질한 이유를 붙여가며 끈덕지게 살아남은 결과가 이러했다. 나는 많은 것에 무뎌졌다. 내 손에 피를 묻히는 것부터 내 ‘생존’이 시작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 사실이 못내 역겹기 짝이 없게 느껴져서, 나는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구역질을 참기 위해 몇 번이고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수많은 이들의 피를 묻힌 손이 붉게 물들어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내 착각일까?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마주한 내 손은 언제나 그랬든 깨끗했기에.

“…퀘스트 확인,”

피곤에 전, 지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영광스러운 업적 따위를 지껄이던 아까의 알림과는 다른 내용들이 적힌 새파란 창이 열렸다. 해야 할 일들 따위를 장황하게 지껄여둔 문장 몇 개를 뛰어넘어, 가장 아랫줄에 위치한 문장만을 눈에 담았다.

[메인 퀘스트 : 반란군 섬멸]

1인 퀘스트

당신은 ‘크레아 황가’를 몰아내고자

반역을 꾀하는 이들의 거점 중 한 곳을

찾아냈습니다!

이들이 반란을 실행할 날은

당신에게 이 퀘스트가 부여된 날로부터

5일 뒤입니다.

반란군이 반란을 일으켜

황가를 몰아내고 제국을 차지하기 전에

반란군의 거점을 소탕하고

모든 반란군을 섬멸하십시오.

당신이 처치해야 할 반란군의 수는

[ 127 ]

입니다.

성공 보상 : ???

실패 시 : 크레아 황가 몰락 / 플레이어 사망

제한 시간 : 1D 21H 14M

남은 반란군의 수 : 0

진행률 : 100%

퀘스트 완료 조건을 달성하여

보상을 수령할 수 있습니다.

보상을 수령하시겠습니까? Y / N

망설임 없이 ‘Y’를 눌렀다. 이제는 지긋지긋해진 새파란 이펙트들과 함께 [???]가 적힌 상자가 내 손안에 쥐여졌다. 작은 크기에 비해 묵직한 그것을 들고 나는 실소를 흘렸다. 다시금 떠올릴 수밖에 없는 사실을 떠올린 탓이었다. 이 ‘보상’의 무게가, 내가 앗아간 127명의 사람들의 목숨과 비례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IN GAME

이 끔찍한 이야기의 시작은, 내가 이 세계 속에서 눈을 뜬 날로부터 시작된다.

“…뭐야,”

잠에서 깼을 때면 늘 시야에 들어오던 시멘트 특유의 회색빛 천장이 아니었다. 낯선 공간,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자동적으로 튀어나간 첫 마디가 그것이었다. 낯선 목소리에 내 목을 부여잡았다. 손끝에 느껴져야 할 목의 흉터가 느껴지지 않았다. 20년을 넘게 들었던 목소리였다. 헷갈릴 수가 없는 익숙한 목소리가 아닌 낯설기 짝이 없는 가냘픈 목소리가 튀어나오고, 반평생을 함께하던 흉터마저 사라진 지금, 내 머릿속엔 퍽 합리적인 의심이 들 수밖엔 없는 것이었다.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며 돌아본 그곳에는 화려하기 짝이 없는 침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맹세코 내 취향도, 내 것도 아니었다. 익숙하지 않은 방 또한 그러했다. 원래의 내 몸이 아닌 다른 몸. 그것은 내가 바닥에 발을 딛고 일어섰을 때부터 확연히 느낀 변화였다. 미세하게 떨리는 다리의 근육이나, 확연히 낮아진 시야, 그리고 자그마한, 흉 하나 없는 손까지. 그 낯선 감각들을 느끼며 내가 찾아 헤맨 것이 고작 벽에 걸린 거울에 불과하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게,”

“이게, …뭐야?”

말을 할 때마다 튀어나오는 목소리는 여전히 낯설었고, 거울에 비친 누군가의 모습은 더더욱 낯설었다. 꿈인가 싶어 뺨을 꼬집으면, 거울 속의 낯선 소녀도 날 따라 제 뺨을 꼬집었다. 눈처럼 새하얀 피부가 불그스름하게 물들었다. 힘없이 손을 떨어트렸다. 거울 속의 소녀도 손을 떨어트렸다. 다시금 손을 들어 올려 머리카락을 더듬거리면, 거울 속의 소녀도 나와 똑같이 굴었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거울 속 소녀도 나를 따라 눈을 깜빡인다. 그제야 나는 알아차린 것이다. 이 거울은, 틀림없이 지금 내 모습을 비춰주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절망으로 물들어가는 소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는 원래의 내 모습은, 결단코 이 소녀의 모습이 아니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은 결국,

‘내’가 아니다.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뒤섞여 물밀듯 치고 올라왔다. 판타지 소설에서나 보던 전개였다. 보면서 ‘나한테 저런 일이 일어난다면…’하는 상상은 수도 없이 해 보았지만, 애초에 그런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것부터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분명 그랬는데…. ‘내’가 들어선 이 몸이 ‘내’가 아니라면, 대체 이 몸은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감정들, 필히 두려움이고, 공포였다. 찢어질듯한 비명소리가 내 입에서부터 튀어나왔다.

“…아냐, 이건, …이건 내가, 내가…,”

미친 듯이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밝은 금색의 머리카락이 내 손짓에 따라 흩날렸다. 새카만 머리카락이 아니었다. 잘 다듬어진 손톱이 자리한 고운 손으로 얼굴을 더듬었다. 늘 물어뜯어 피딱지가 맺혀있던 흉한 손이 아니었다. 거울 속의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언제나 마주하던 고동색의 짙은 눈동자가 아닌, 마치 바다를 머금은듯한 아름다운 푸른 눈동자와 마주했다. 내 것이 아닌 것들이 ‘내’가 되어 있었다. 끔찍했다. 또다시 비명이 튀어나온다.

“아가씨!!”

“세상에, 아가씨께서…!”

방 문 너머로, ‘나’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넓디넓은 방의 한구석, 거울 앞에 쭈그려앉아 미친 듯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성을 지르는 나를 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서둘러 공작 각하를 모셔오거라! 공작부인께도 알리거라! 소공작님은 지금 저택에 계시나?! 의원, 의원 나리를 서둘러…! 소설 속, 드라마 속에서나 듣고 보던 대사들이 사람들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모든 것들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누군가가 나를 잡아채는 손길에도, 내게 정신을 차리라 계속 말을 거는데도, 나는 그것들이 죄다 무의미하게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율리아, 율리아! 얘야…!”

“대체 무슨…,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이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꿈이라면? 지금까지의 일은 모두 지독한 악몽이고,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이 모든 일이 그저 ‘꿈’으로 치부될 수 있다면? 빨리 깨어나야 했다. 빨리 깨고 싶었다. 어서 일어나 내 사람들을, 내 원래 모습을 눈에 담고 안도하며 웃음 짓고 싶었다. 그런 생각이 듦과 동시에 나는 가느다란 팔을 치켜들었다.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는 시선들을 죄다 무시한 채, 들어 올린 팔을 힘껏 내리쳤다. 내 얼굴을 향해.

짜악-, 하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들렸다. 뺨을 타고 화끈한 통증이 화악, 일었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석상처럼 굳어진 사람들을 보며 내가 아직 꿈에 남아있단 사실에 절망할 뿐이었다. 나는 다시금 팔을 들어 올렸다. 짜악, 짝, 하는 마찰음 소리가 두어 번 더 들리고 나서야 사람들에게서 때늦은 반응이 튀어나왔다. 누군가는 울음을 터트렸고, 누군가는 놀라 내 팔목을 붙잡았다. 또 누군가는 나를 뜰어안은 채, 내 등을 토닥거리며 흐느끼는 소리를 냈다. 있는 힘껏 내리친 뺨이 점점 부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 모든 상황을 멀거니 지켜만 보고 있던 한 여인이 주저앉았다. 큰 울음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여인에 사람들 모두가 눈시울을 붉히며 그녀를 부축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쏟아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들. 간간이 슬픔이 뒤섞인 애절한 눈빛들. 알게 뭔가, 나는 지금 낯선 세상에 나 혼자 뚝 떨어졌는데. 그제야 나는 눈물을 터트렸다. 굵은 물방울들이 쉴 새 없이 부은 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파, 흑, 아프다고,”

“율리아…,”

“왜, 왜, …왜 꿈에서, 흐윽, 깨질 않는 건데에…!”

꿈인데도 깨질 않는다. 깨어날 수가 없다. 분명히 꿈이어야 하는데, 꿈인 게 분명한데, 뺨을 때려도 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러면 마치, 지금 이 상황이 이제는 내 현실이 되었다는 소리처럼 들리지 않는가. 붙잡힌 손목이 아려왔다. 내가 직접 때린 뺨은 더 아팠다. 눈물이 입고 있던 잠옷에 쉼 없이 떨어졌다. 차라리 잠에 들었으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 꿈에서 벗어나 있었으면, 그렇게 바라며 나는 까무룩 의식을 잃어버렸다.

/

반전은 없었다. 정신을 잃고, 꽤 긴 잠을 청하고 난 뒤 다시금 눈을 떴을 때도 나는 여전히 이 빌어먹을 몸뚱이에서 눈을 떴다. 여전히 ‘내’가 아니었다. 모르는 사람의 거죽을 뒤집어쓴 채, 모르는 사람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 사실이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당연하게도, 내가 이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는 소설 속의 강인한 여주인공도, 위기를 기회로 받아들이는 영화 속 주인공도 되지 못하기에 그저 이 상황이 끔찍하게만 느껴졌다. 내게 있어 내 현실은 다른 세계의 것인데, 하루아침에 네 현실은 이곳이니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 하는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리 없었다. 머릿속에서 수만 가지 생각들이 충돌했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내가 이 낯설기만 한 세계에 떨어져서 한 첫 번째 일은, 울다 지쳐 잠들기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후에 떠올려 본 그 시간대의 기억들이 드문드문 끊겨있을 정도였으니, 내가 얼마나 이곳에서 벗어나고자 애썼는지는 대충 짐작이 갈 것이라 생각한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나는 끝도 없이 울어댔다. 오죽하면 내가 우는 모습을 보고는, 내 시중을 들던 시녀가 같이 울음을 터트려버릴 정도였다. 낯선 모습의 나를 거울 속에서 마주할 때마다 비명과 눈물이 터져 나와서, 내 방에는 더 이상 내 모습을 비출만한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아가씨…,”

“…….”

“오늘은 날씨가 참 좋아요, 아가씨. 아직 초봄인데도 햇볕이 이렇게 따뜻한지 모르겠어요,”

“…….”

“산책은 아직 무리시죠? 그럼 창문이라도 열어두고 갈게요.”

“…….”

“제발, 기운 내셔요….”

아마도 이 저택의 고용인 중 하나일 여인이 이따금 창문을 가렸던 커튼을 활짝 열어두면, 나는 이따금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곤 했다. 새파란 하늘도, 들쑥날쑥하게 자리 잡은 건물들도, 다 내가 보던 세상과 비슷한데, 그럼에도 내가 늘 바라보곤 했던 세상은 아니라는 것이 미치도록 생생하게 느껴졌다. 창문 밖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정원들, 그 앞의 도로들, 도로와 정원을 분리시키는 흰색의 담벼락, 그리고 도로 너머 줄줄이 보이는 가지각색의 건물들까지. 그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원래의 세계로 돌아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과도 겹쳐 보이는 탓에, 내가 있던 세계에서도 있을 법한 풍경이었기에. 물론, 아직까지 낯선 사람의 얼굴을 한 내 모습을 보고 나면 그런 생각들은 싹 사라지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래,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반쯤 미쳐있었던 것 같다. 도무지 적응할 수 없는 모든 것들에게서 도망쳐, 차라리 미치는 쪽을 선택했다던가-, 하는 것 말이다. 꼬박 한 달이었다. 30일 동안을 나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살았으며, 이 낯선 세계에 떨어진 지 한 달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정신을 차렸다.

“…여긴 우리 집이 아니지.”

우습게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인한 것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지긴 또 처음이라, 나는 지체 없이 몸을 일으켰다. 쥐어뜯은 탓에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찬란한 금발이었다. 무언가를 제대로 먹은 적이 없던 탓에 비쩍 마른 맨발바닥이 푹신한 카펫 위로 닿았다. 다리에 힘을 주었다. 기운이 많이 빠진 탓에 그마저도 힘들어 가쁜 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심지어는 억지로 몸을 일으킨 탓에 현기증까지 일어, 나는 잠시간 침대의 기둥을 붙잡은 채 현기증이 옅어지길 기다려야만 했다. 참 비루먹은 몸뚱어리구나, 생각하면서도 근 한 달을 내가 어떻게 보냈는지를 떠올리는 순간 이게 당연한 것임을 깨달았다.

누군가가 책상 위에 올려둔 빗으로 머리를 빗어내렸다. 손재주가 없었기에 예쁘게 머리를 치장하지는 못했으나, 깔끔하게 머리카락을 틀어올리는 것으로 단정한 느낌을 주는 것 정도야 나도 할 수 있었다. 말라비틀어진 채 얼굴에 달라붙어있던 눈물 자국들을 지워내고, 엉망이 된 잠옷을 벗어던졌다. 옷장에서 단정하고 수수한 원피스 한 벌을 꺼내어 갈아입은 뒤, 아마도 이 방의 원래 주인이 좋아했던 것 같은, 밑창이 살짝 낡은 신발을 꺼내 발을 집어넣었다. 살이 예전보다 많이 빠지긴 했는지, 조금 헐렁한 감이 없잖아 있었으나 나는 개의치 않고 마지막으로 내 모습을 한번 점검했다. 나쁘지 않은 모양새였다. 지난 한 달간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당연히 그러했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처음으로, 이 방 문을 내 손으로 열어볼 차례였다.

“…! 아가씨…!”

“율, 율리아 아가씨…?”

“세상에, 아가씨께서…, 몸은 좀 괜찮으신 거예요?"

저택의 사람들은, 근 한 달 만에 보는 멀쩡한 내 모습을 보곤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복도의 사용인들의 시선이 죄다 내게 꽂혔다. 그 따가운 시선에 어색한 웃음을 한 번 지어 보이자, 우르르-, 내 곁으로 몰려와서는 죄다 괜찮냐는 안부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이었다. 나는 애써 미소를 유지하며 괜찮다고, 걱정해 주어 고맙다는 말을 일일이 전해야만 했다. 수많은 안부 인사를 받으며 내가 향한 곳은, 아마도 원래의 이 몸의 주인의 가족들이 있을 식당이었다.

문 앞을 지키던 기사마저도 나를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아가씨…! 하는 감격 어린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보아하니, 방에서 이곳까지 오는 내내 겪었던 일들을 이 기사도 되풀이할 것만 같아 나는 서둘러 문을 좀 열어주겠니? 하며 그에게 말했다. 그러고 나니 기사는 대번 고개를 끄덕이다가 기꺼이 큰 문을 활짝 열어주는 것이었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한 걸음을 식당 안으로 내딛자마자, 시선들이 내게로 부딪혀왔다.

동그랗게 커지는 눈하며, 점차 벌어지는 입 하며, 그 속에 담긴 무수한 감정들 하며,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날 보는 그들의 눈이 내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부모님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녀 한 쌍은, 식사 도중임에도 불구하고 챙그랑-, 하며 식기를 떨어트리는 결례를 범하기까지 했으나, 개중 누구도 그것을 신경 쓰지 못했다. 단정한 차림의, 누가 봐도 멀쩡해 보이는 나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율, 율리아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방 한구석에 처박혀 시간만 죽이는 것은 내가 백번 손해였다. 대체 왜, 어떤 이유에서 내가 이 세계로 뚝 떨어진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나는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을 심산이었다. 내게 ‘집’이란 이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돌아갈 방법을 찾아내기에 앞서 내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내가 들어선 이 몸의 주인이 뭐 하는 사람이었는지, 이곳은 대체 어디이며, 이 세계는 어떤 세계인지, 그리고…,

“네, 어머니-,”

날 이곳에 오게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 중년의 여인이 울음을 터트렸다. 몸을 휘청이다가도 기어코 몸을 일으켜 내게 다가오고 나서는 나를 꼭 껴안았다. 입을 틀어막은 채 나를 빤히 바라보는 청년 하나와, 그저 멍하니 입만 벌리고 나를 바라보는 다른 청년 하나, 그리고 멀거니 나와 중년 여인을 보며 눈물을 훔치는 중년의 남자 하나. 나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풍경을 바라보며 뻣뻣한 미소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

내가 다시 입을 연 것은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감동적인 재회 뒤에 찾아온 잠시간의 침묵. 안타깝게도 나는 이 몸의 원래 주인인 ‘율리아’가 아니었기에, 그녀에 대해서라던가, 내 앞에 있는 이들에 대해서라던가 하는 것들은 알지 못했다. 당연하게도, 내가 이곳의 사람들에게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정말, 정말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거니?”

“음, 어렴풋이 알게 된 것 말고는요. 다행히 말도 제대로 할 수 있네요.”

나는 내가 이곳에서 멀쩡히 살아가다, 내 세계로 무사히 돌아가기 위해 ‘기억을 잃은 율리아’를 연기하기로 했다. 사실 내 눈앞의 이 사람들에게 내가 기억을 잃은 것 같다- 따위의 말을 꺼내기 전에도 몇 번이나 망설였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 억지스럽잖아. 어느 날부터 애가 미친 듯이 울기만 하더니, 꼬박 한 달이 지나고 나서야 한다는 말이 기억을 잃어 혼란스러웠다-, 라니.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소재였으나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안 되면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한번 말을 꺼내 본 것뿐인데…,

“어쩌면 좋니, 어쩌면 좋아….”

“어머니….”

“답지 않게 열병을 앓을 때부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기억을,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니…,”

중년의 여인, 그러니까, 율리아의 어머니가 가슴께를 주먹으로 치며 말했다. 그치지 않는 그녀의 눈물에 나는 깨끗한 냅킨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이게 되네, 그들은 내 말을 참 쉽게도 믿어주었다. 내가 이 몸에 들어서기 전에 원래의 ‘율리아’가 열병을 앓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들에게는 비극이 따로 없겠지만, 내게는 천운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원래 세계의 ‘나’처럼 행동하지도, 무언가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지도 않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내가 이방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라면, 원래의 ‘나’의 모습이 불시에 튀어나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다. 기억을 잃었는데도 스스럼없이 ‘누군가’처럼 행동한다면 의심받기에 충분할 테니. 심지어 이 세계에는 ‘마법’따위의 것들이 존재했다. 내가 완벽하게 ‘기억을 잃은 율리아’를 연기하지 못하는 순간, 사특한 마법으로 ‘율리아’의 몸을 빼앗은 악마 취급을 받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저택의 거의 모든 이들은 기억을 잃은 율리아에게 친절했다. 그들은 내가 물어보는 것들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으며, 이따금 내가 물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살던 세계와는 다른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그렇게 얻은 정보들은 꽤 유용한 정보들이 되어 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친절한 저택의 이들 덕분에 이 세계에 적응하는 것이 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이곳에 굴러떨어졌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렇게 나는 ‘율리아’가 되어 이 저택에 자리 잡았다. 근 일주일간 저택을 이리저리 활보하고 다닌 결과, 나는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정보들을 접할 수 있었다. 가령,

“율리아-,”

내 이름이 ‘율리아 비안 오르테’가 되었다는 것과,

“산책 중이었어?”

“응, 정원이 예쁘길래.”

“올해는 유독 꽃들이 예쁘게 피었지. 정원이 더 화려해졌어.”

내 머리를 쓰다듬는 이 사내의 이름이 ‘진 비안 오르테’라는 것들 등. 오르테 가문의 장남이자 율리아의 첫째 오빠인 그는 제 동생인 ‘율리아’를 참 많이 아꼈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정원을 함께 산책하는 그의 행동들만 봐도 그랬다. 진은 느릿한 내 걸음에 맞추어 한참이나 정원을 함께 걸어주었다. 피곤할 법 하고, 말수가 적은 내가 불편하게 느껴질 법도 한데, 그는 꿋꿋하게 내 옆을 지켰다. 이따금씩 실없는 농담을 던지기도 하면서.

“저, 소공작님. 공작님께서 찾으십니다.”

“…지금?”

“예, 모셔오라는 말씀을….”

“그래, 지금 가도록 하지.”

진이 아쉬운 듯 내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조금 더 걷고 싶었는데…, 하며 중얼거리는 그의 얼굴에는 채 가시지 못한 아쉬움이 한가득이었다.

“가봐야 하지 않아?”

“그래, 들어가 봐야지. 감기 걸리면 안 되니까, 리아 너도 너무 오래 산책하지는 말고.”

“알았어.”

“이따 보자, 내 동생.”

진은 아쉽다는 듯, 내 머리를 몇 번이고 쓰다듬더니 저택 쪽으로 마지못해 걸음을 돌렸다.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몇 번이고 나를 돌아보는 그 모습을 보다, 나도 그가 사라지기 전까지 열심히 그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것이 내가 ‘율리아’로써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진이 저택으로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 또한 내 방으로 돌아갔다. 오르테 공작가의 저택은 꽤 넓은 편이라, 방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꽤 많은 사용인들을 마주해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내게 깍듯하게 인사해오는 사용인들이 나는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이 ‘크레아’제국이 전형적인 신분 주의, 계급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나보다 연배가 훨씬 높은 이들이 나를 향해 허리를 숙이는 것을 보는 게 편하게 느껴질 수는 없는 법이었다.

시녀들이 준비해 둔 향유를 푼 목욕물에 몸을 녹이고, 아까와는 달리 편한 원피스와 실내용 슬리퍼로 갈아입은 뒤 노곤해진 몸을 소파에 기대었다. 세탁할 옷가지들을 챙긴 시녀가 세탁물을 들고 방을 나서자, 넓은 방 안에 나 혼자만이 남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긴장해있던 몸을 풀고는 소파에 눕듯이 풀썩, 엎어졌다. 긴 숨이 새어 나왔다. 피곤하기 짝이 없었다. 적응이 쉽다는 말은 아마 거짓말일 것이다. ‘율리아’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결코 알 수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자니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지만, 내가 이 모든 것을 포기할 일은 없을 터였다.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는 이상, 또 ‘율리아’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존재하는 이상 나는 계속해서 ‘율리아’인척 살아갈 것이었다. 비단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함에 그치는 것이 아닌, 내가 억지로라도 이 몸에 붙어있어야 할 이유,

[메인 퀘스트 : 전직]

필수 퀘스트

당신은 ‘크레아 제국’의 공신 가문

‘오르테 공작가’의 막내딸

‘율리아 비안 오르테’가 되었습니다.

제국의 일원으로써 당신은

앞으로 제국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활약하게 될 것입니다.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직업을 선택해야 하며,

[전직]을 완료하기 전까지

‘메인 퀘스트’는 진행되지 않습니다.

원하는 직업을 선택하십시오.

성공 보상 : 직업별 능력치 / 직업 전용 스킬

[전직]을 진행하시겠습니까? Y / N

5D 7H 38M

몇 번이고 읽었던 문장들을 다시금 읽어내렸다. 새파랗게 띄워진 화면에 적힌 빽빽한 글씨들을 눈에 담았다. 나는 여전히 이 상황을 완전히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이 수상하기 짝이 없는 화면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지 이틀이 다 되어감에도 그랬다. 게임, 그래. 마치 게임 화면처럼 보이는 이 창을 보고, 또 보며 내가 내린 결론은 터무니없을지 몰라도 한 가지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아마도 게임 속으로 들어와버린 것 같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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