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집

안녕, 안녕 後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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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헤어짐의 인사 혹은 다음을 기약하며, 안녕.


고깃 씀.




 열아홉의 나는 스물이라는 나이에 큰 기대감과 불안감을 느꼈다. 십의 자리에 일이 아닌 이가 붙음으로써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는 점, 이제 모든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는 점, 아무도 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점, 이젠 내가 나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점. 그 모든 게 나를 기대하게 만들기도,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때의 난 꿈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위로와 즐거움을 주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주변에선 다들 나의 꿈을 말리기만 했다. 조금 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라면서. 그때 난 의문이 들었다. 꿈이란 대체 무엇일까. 꿈을 꾸라면서, 너의 마음대로 꾸라면서 사람들은 왜 자꾸 암묵적으로 그 꿈에 틀을 정해 놓은 것일까. 그때의 나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렇게 스물이 된 지금, 절망적이게도 나는 그 사람들의 말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직업이 아니면 먹는 것도, 사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하게 되는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언제나 불안감에 시달리고, 나도 모르게 예민해져 가고. 난 스물의 내가 너무 싫다.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고개를 숙여야 하는 직장이 너무 싫고, 상사들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직장에 찌든 내 인생이 너무 싫다.


 직장에 찌들어 너무나도 지친 인생에서 한줄기 빛같은 그를 만났다. 그를 어쩌다가 만나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오늘도 평소처럼 지친 몸을 침대에 맡겼을 뿐인데, 잠시 눈을 감았을 뿐인데 그가 가꾸고 있는 정원에서 눈을 떴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내게는 축복과도 같았다. 꽃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바람을 타고 풍겨오는 라벤더 향에 마음이 편안해졌고, 상사들의 엄포에 썩어들어 가던 고막이 그의 영롱한 목소리에 편안해졌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단향아.”


 너를 만나 참 다행이야, 라고 대답하기에 쑥스러웠던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곤 피식, 웃으며 나와 닮은 꽃을 보여 주겠다며, 따라오라 말했다. 나와 닮은 꽃이 대체 무엇일까. 내심 기대를 하며 그를 따라갔다.


 그와 함께 도착한 곳은 한 종류의 꽃들로 가득한 꽃밭이었다. 이 모든 꽃들과 내가 닮았다는 것일까. 그는 꽃들을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이내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나이프아카시아 꽃이야. 그가 말했다.


 나이프아카시아 꽃, 처음 보는 꽃이었다. 나이프아카시아는 마치 노란 눈송이가 오목조목 모여있는 듯한 느낌을 냈다. 나와 닮은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대체 어디가 나와 닮았다는 것인지. 내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자 그는 나이프아카시아 꽃의 꽃말을 읊었다. 곱고 아름답다. 그것이 그가 날 닮았다고 주장하는 꽃의 꽃말이었다.


 내가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대자 그는 능숙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이제 일어날 시간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해오라기 난초, 잘 간직해 줘. 너에 대한 마음이니깐. 자, 그럼 안녕. 단향아.”


 그의 안녕이라는 말을 끝으로 삐비빅, 거리는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 꿈이었구나. 나는 허망함을 느끼며 까치집 머리를 정리했다. 아름다운 정원, 그리고 영롱했던 정원사 김석진. 이 모든 게 꿈이었고,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믿기질 않았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가야 또 다시 꿈에 들어갈 수 있고 행복한 꿈을 위한 인생을 살 수 있기에 지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침대를 정리하려고 침대 쪽으로 몸을 돌린 순간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의 베개 바로 옆에 해오라기 난초 꽃다발이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지레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마지막에 건넸던 안녕은 헤어짐의 인사 혹은 다음을 기약하는 인사였음을.


안녕, 안녕_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