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셨단 연락을 받고 헐레벌떡 장례식으로 뛰어갔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엄마랑 아빠는 내가 아주 어릴 때 이혼하셔서 난 오로지
아빠의 손에서 자랐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 나는 할머니와
함께 생활했다. 그리고 어른이 된 내 곁엔 아빠도 할머니도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그런 날 구원해 준 사람은 너였다. 내 세상 속엔 너밖에
없었는데. 제일 믿고 따랐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
그날 통화 내용을 엿듣고 집으로 미친 듯이 뛰어왔다. 눈물이 앞을 가리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뭔 정신으로
집으로 왔는지 기억도 안 난다.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서 울기만 했다. 학교에 나가지도
않았다. 내가 뭐 때문에 그런 자식 때문에 울어야 할까라는 마음이 들어 억울했지만, 눈물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근데 난 이 순간에도 네가 보고 싶어. 죽일 듯이 미운데, 날 구원해 준 네가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 ... 🌙
<우리 사이 거리는 384,440km>

🌎 ...🌙
친구들의 쏟아지는 연락에 나는 어쩔 수 없이 학교에 나갔다.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잠만 잔 탓에 눈이 팅팅 부어서 모자를 코에 닿을 정도로 푹 눌러썼다.
학교에 갔지만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 근데 제일 중요한
김석진이 없었다. 다급해진 나는 친구를 붙잡고 김석진의
행방을 물어보았다. 친구는 이틀 전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고 말해줬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시간은 흘렀고 김석진은
한 달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약이랬던가.
나도 점차 회복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보내는 평범한
캠퍼스 생활. 아, 내가 얼마나 바라던 것이었나. 이대로라면
김석진 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 나의 큰
오산이었다.
🌎 ... 🌙
그날도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집 문의 도어락을 누르고
있었다. 간만에 내리는 비에 습하고 더웠다.
"아씨 도어락이 왜 이렇게 안 눌려."
습해서 잘 눌리지 않는 도어락에 나는 우산을 한 쪽 어깨에 걸치고 연신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고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여주..야..."

김석진이다. 내가 그렇게 죽도록 미워했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까 너 없이도 잘 산다고 한 건 애초에 불가능 한
일이었나 보다. 마음을 가다듬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모진 말들을 속사포로 내뱉었다.
"나 이용해서 재밌었어? 근데 어떡해. 우리 아빠 보험금은
못 주겠네."
김석진의 이런 모습은 처음 봤다. 항상 단정하고 깔끔하게
머리를 넘기고 해맑게 웃던, 내가 아는 김석진이 아니었다. 눈 밑엔 다크서클이 쌓여있었고 단정했던 머리는 추적추적 내리는 비로 인해 다 망가져 있었다. 잠을 못 잔 건지 눈도 피폐해져 있었고 힘도 없어 보였다. 그리고 누구한테 맞았는지
얼굴엔 멍이 들어있었다.
"여주야."
넌 내 이름을 한 번 더 불렀다. 날 구원해 준 너를 내가
어떻게 내칠 수 있을까.
"... 내 이름 함부로 부르지 마. 난 너를 진심으로 좋아했어 김석진. 근데 고작 돈 빼먹으려고 날 이용한 걸 알았으면 애초에 너를 만나지 말았아야 했는데."
김석진은 내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이 감정이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다. 내 안에 쌓인 분노일까, 용서일까.
"넌 모르겠지만 나도 널 진심으로 좋아해 여주야. 나에게 조금의 시간을 주지 않을래? 지금은 말 못 할 사정이 있지만 더 멋진 사람이 돼서 다시 네 앞에 나타날게. 기다려줘, 조금만."

이 말을 듣고도 어떻게 널 쳐낼 수 있을까. 난 널 절대 쳐내지 못해 김석진. 그리고 아마 넌 그걸 아주 잘 아는 것 같아. 천 년이고 만 년이고 기다려줄게. 부디 언젠가 다시 돌아와
주길.
"기다...릴게."
김석진은 놀란 것 같았다. 나도 내가 한 대답이지만
놀라웠다. 누군가를 이렇게 사랑한 적이 있었던가.
아니 사랑이 아니라 그저 집착에 불과한 거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네가 없는 내 인생은 상상할 수가 없어.
난 네가 필요해. 제발 날 혼자 두고 떠나지 말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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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구원자가 되어버린 둘.
이제는 서로가 필요한 사이가 되었지만 사랑보다는
집착의 일부인 것 같네요,,,
석진의 말 못 할 사정은 다음 회차에서 공개됩니다 많관부
※ 이번 단편은 제가 자주 쓰던 풋풋한 사랑얘기가 아니라
집착광공들의 사랑입니다 오히려 좋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