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63화. 이메일



어젯 밤 늦게까지 사진 정리를 하고

잠이 들었다.




일요일이라서 알람도 맞추지 않고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현관문 초인종이 울렸다.




깜짝 놀라서 일어나 보니,

아침 8시였다.




"이 시간에 누구지?"




잠옷 바람에 현관문을 열고 보니

미겔이었다.




잠옷 차림의 내 모습을 본 미겔은

몹시 미안해 했다.




"자는데 깨워서 미안해요..

 당신 번호를 몰라서 이렇게 직접 왔어요.

 이따 저녁 때 친구들을 만나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당신도 함께 가겠냐고 물어보려구요.

 친구들은 당신만 좋다면 괜찮다고 했거든요."





"아..미겔...좋아요.

 물어봐줘서 고마워요."




미겔은 내 대답을 듣고,

환하게 웃었다.

등 뒤로 비치는 햇살 때문에

그의 웃음이 더 빛나는 듯 했다.





"그럼 7시까지 데릴러 올께요."




"아니면 내가 미겔 카페로

 7시까지 가는 건 어때요?"




미겔은 잠시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정말요? 그렇게 해 줄래요?

 그럼 저도 좀 더 여유있게 카페 정리를 할 수 있어요.

 고마워요. 그럼 이따 봐요."




'미겔은 작은 배려에도 엄청 감동하는 것 같네..

 마리아가 아들 자랑을 할 만 해.'




미겔 덕분에 일요일 아침을 일찍 시작하게 되었다.




금요일에 보낸 작업물을

출판사에서 잘 확인했는지 보기 위해

사이트에 로그인을 했다.




받은 편지함에 훈지씨가 보낸 메일이 보였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믿기지가 않았다.




'내 이메일 주소를 어떻게 알았지?'




놀랍고, 떨리고, 반갑고, 기쁘고...

어떤 말로도 내 기분을 설명할 수 없었다.




침을 꼴깍 삼키고

'보고 싶어요...' 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클릭했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가려고 했던 곳에 잘 도착했어요?

 나는 아직도 우리가 서로의 안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아요.

 라떼를 봐도 당신이 생각나고,

 연습실에 가도 함께 수업했던 생각이 나고,

 한강을 지나갈 때면 치킨 먹던 밤이 기억나요..

 나 벌써 다 잊은 건 아니죠?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 아직 기억하고 있는 거죠?

 보고 싶어요...많이.]




한 글자씩 천천히 읽어 내려 갔다.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뛰었다.




이제 조금씩

내 일상을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이메일이 다시 내 마음을 헤집어 놓았다.




순간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나고,

훈지씨도 원망스러워서 랩탑을 닫아 버렸다.




'왜 이렇게 메일 한 통에 또 흔들리는 거지.

도대체 언제까지

나는 그 사람 그늘에 있어야 하는거야..'





내가 스페인으로 갈 거란 것을 알린 사람은

가족 외에 수연이가 유일했다.




이곳에 와서도 휴대전화조차 만들지 않았다.




내가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한국에 있는 그에게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차단하고 싶었다.




창문을 열고 청소를 시작했다.

빨랫거리를 모으고, 책상 위를 정리했다.




'아, 맞다. 출판사!!'




훈지씨 메일을 읽고 나서 출판사 메일 확인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다시 랩탑을 열어,

출판사에서 온 메일을 열어 보았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이번 주 작업물 모두 잘 확인했습니다.

현재 차장님께서 휴가 중이셔서

월요일에 복귀하시는대로 회의하여

피드백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참. 작가님이 출국 전까지

영어 수업 해 주셨다던 기획사에서

작가님 이메일 주소를 알려 달라고 하더라구요.

개인 정보라서 안 된다고 했는데,

지금 작가님이랑 연락할 방법이 없는데

수업 관련해서 급하게 전달할 게 있다고 해서

할 수 없이 알려줬어요.

괜찮은 거죠?]





'아..그래서 훈지씨가

 내 이메일 주소를 알게 된 거구나...'




나는 그에게 답장을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답장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모아 놓은 빨랫거리를 바구니에 담고,

동네 코인 세탁소로 향했다.




현관문을 나서는데,

마리아가 우리 집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가 환하게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소피, 어제 미겔과 재미있는 시간 보냈어요?"



"네...마리아,

 어제 편찮으시다고 들었는데 좀 어떠세요?"




"아..우리 미겔이 얘기했군요.

 보다시피 괜찮아요. 물어봐줘서 고마워요.

 빨래하러 가는 거에요?

 괜찮으면 우리 집에 가서 해도 되는데요."




"감사해요. 그런데 산책할 겸 다녀 오려구요."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 나를

마리아가 다시 한 번 불러 세웠다.




"소피!

 어제 밤에 미겔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돌아왔어요.

 고마워요.

 그 아이가 미국에서 함께 지냈던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많이 힘들어 했는데...

 그렇게 환하게 웃는 걸 참 오랜만에 봤어요."

 



나는 마리아에게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한편으로는 마리아가 나를

미겔의 상대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부담스럽기도 했다.




'언젠가 마리아나 미겔에게

 확실히 선을 긋는게 좋겠어.'




코인 세탁소에 도착하여,

빨랫감들을 세탁기에 넣고 이어폰을 끼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10분쯤 지났을까...

읽고 있던 책 옆으로 누군가 커피 한 잔을 내려놓았다.




깜짝 놀라서 옆을 쳐다보니,

미겔이 서 있었다.




"미겔? 여기 어쩐 일이에요?"




"당신이 빨래 바구니를 들고 가는 걸 봤어요."




미겔은 쑥스러운 듯 웃었다.




"아...그랬구나..커피 고마워요."




미겔은 대답 대신,

내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 준 뒤 카페로 돌아갔다.



뒤돌아서 가는 미겔을 보면서

문득, 그의 친구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해졌다.




"결혼까지 생각했었죠." <64화 중에서>



Truyện phổ biến với fan của Park Jih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