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시즌2)

112화. 일기장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정아 씨의 언니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훈지 씨.

 정아가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집을 정리했던 거 같아요.

 한 상자에 훈지 씨 이름이 적혀 있었어요.

 훈지 씨와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따로 모아 놓은 것 같은데…

 제가 보관하고 있으니, 

 혹시 가져가고 싶으면 이야기하세요.]

 



나는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네. 제가 갖고 싶어요.

주실 수 있으세요? 누님 댁으로 가면 될까요?]

 

 

[네. 그럼 집으로 오세요.]

 



나는 곧장 정아 씨의 언니 집으로 가

상자를 받아 왔다.

상자를 건네받는 순간,

다시 한번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나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다른 물건들과 구별해 놓았다.

나를 특별하게 생각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도록 선명하게 다가왔다.





집에 돌아와 상자를 열어 보려니

손끝이 떨리고 마음이 긴장됐다.

어떤 물건들이 들어 있을지 예상이 됐지만,

막상 마주한 뒤 밀려올 감정이 두렵기도 했다.

 



“이건 스페인에서 썼던 동거 규칙들,

 내가 선물로 준 목걸이,

 이건 무슨 봉투지?

 아...생활비 하라고 준 현금이랑 카드구나.

 현금은 하나도 쓰지 않았잖아…”



 
그 현금 봉투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




[훈지 씨가 준 소중한 생활비 아껴 써야지!!❤️

 그런데 아까워서 못 쓰겠어😭]




보물 상자를 뒤지듯

상자안의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 보았다.





“함께 봤던 자동차 극장 티켓,

 이건 폴라로이드 사진들.

 아니 무슨 같이 갔던 식당 영수증까지

 다 모아놨어..."

 



그녀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다.



상자에서 꺼낸 물건들을 보고 있자니,

그녀가 더는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껴졌다.




심장이 뻥 뚫린 것처럼 아프고 시려 왔다.

 


그리고 상자 옆에 세워져 있던 그녀의 일기장.

나와 만날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하나하나 기록해 놓았다.




첫 장은 나와의 첫 수업부터 시작됐다.




[인터뷰 때 늦을 뻔 했다가 목 졸리는 장면까지

 목격당해서 오늘은 일치감찌 집을 나섰다.

 수업 장소에 도착하자 훈지 씨는 이미 와 있었다.

 뭐야, 뭐야! 왜 이렇게 잘 생겼어!!

 가까이서 보니까 더 멋지잖아...ㅠ

 아깝다..

 내가 조금만 더 늦게 태어났어도

 확 꼬셔보는 건데...

 오늘 우리는 수업만 열심히 했다!!

 이론....ㅠㅠ

 나 무슨 생각하는 거임 ㅋㅋ]




첫 장을 읽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얼마 만에 웃는 건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나는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오늘은 훈지 씨와의 두 번째 수업 날이었다.

그런데 그가 내가 좋아하는 카페라테를 사왔다.

꺄악!!! 내가 라테를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았지?

감동이잖아.ㅠ

혹시 날 좋아하나?

아니야... 정아야.

넌 선생이고 훈지 씨는 학생이야.

오버하지마...

그런데 대표님이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 줬다고 하니

그의 표정이 달라졌다.

설마... 질투는 아니겠지?]





'그래... 

 내가 두 번째 수업 날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아이스 라테 두 잔을 사 갔었어.

 사실... 라테 좋아한다는 말은 기억하고 있었는데,

 뭘 좋아할지 몰라서 두 잔 다 샀다고 했었어...'




나는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졌다.




[어젯밤, 훈지 씨와 한강 공원에 가서

치킨을 배달시켜 먹었다.

다른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는

나의 버킷 리스트를 이야기하다,

갑자기 한강 공원에서 치킨을 먹게 됐다.

이 흐름, 뭐지?

하지만 차 안에서 밀회를 즐기는 것 같은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야... 정아야...

너 훈지 씨 좋아하다가는 상처만 받을거야.

그래도 그가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

매일 밤마다 팩을 해 봐야겠어.

그래야 조금이라도 어려 보이지.

힝...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야.

왜 이렇게 일찍 태어나 갖고는 ㅠㅠ]




'혼자서... 이런 고민들을 하고 있었구나...'




일기장을 읽다 보니

맨 뒷장에 뭔가 끼워져 있었다.




반으로 접힌 종이를 펼쳐 보니,

그녀가 나와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을

쭉 나열해 놓은 것이 있었다.

 



‘언제 이런 걸 적어 놨었지?’

 



이미 해 본 일들 옆에는 x 표시가 되어 있었다.
 


1. 함께 자동차 극장 가기 x

2. 겨울에 캠핑 가서 눈 오는 것 함께 보기

3. 요리해 주기 x

4. 세계여행 하기

5. 함께 산책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 듣기 x

6. 생일 때마다 편지 써 주기 x

7. 밤새 함께 영화 보기

8. 카페에서 함께 책 읽기 x

9. 같이 전시회 가기

10. 놀이공원 가기 x

.
.
.


그녀의 버킷 리스트에는

나와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이 꽤 많이 적혀 있었다.

아직 함께해 보지 못 한 일들도 여러 개 남아 있었다.

 


‘정아 씨. 

 나랑 같이 못 해 본 건 내가 마저 해 볼께요…’

 


나는 그녀의 버킷 리스트를

하나씩 채워 주기로 결심했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정아 씨의 언니였다.




"네, 무슨 일이세요?"




"훈지 씨! 혹시 그 상자에 정아 일기장 있어요?"




"네, 있어요."




"어머...

 그건 내가 읽다가 거기다 넣어 놓은 건데,

 잊어버리고 그냥 줬나 봐요."




"아... 지금 읽고 있는 중이었어요."




"정말요? 그거 훈지 씨가 읽은 거 알면

 정아가 난리칠텐데!!"




우리 둘은 순간 당황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휴대폰만 들고 있었다.





"... 나중에 난리 치는 거 볼테니까...

 그냥 훈지 씨가 갖고 있어요."





"네. 제가 갖고 싶어요.

 읽어보니 정말 귀엽고 재미있어요.

 저... 정아 씨 일기 읽으면서

 정말... 한참 만에 웃었어요."





"저도 그 일기장 보면서 웃다가 울다가

 여러 번 그랬어요.

 마치 정아가 옆에서 읽어 주는 거 같아서..."





나는 이 말을 할까 말까

몇 번을 망설인 끝에 간신히 입을 뗐다.





"저... 정아 씨가 많이 보고 싶으신 날에는

 저한테 연락 주세요.

 제가 물론 정아 씨를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대신 동생이 되어 드릴께요."





"그래 줄 수 있어요?

 그럼 훈지 씨도 정아 많이 보고 싶은 날은

 나한테 연락해요..."





"네... 누나."





"고마워요..."





통화를 끝내고 나니

문득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때 정아 씨가 중환자실에 면회 왔을 때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내가 만들어 주는 토스트가 먹고 싶다고 했었다.




나는 재료들을 배달시키고,

도착하자마자 토스트를 만들었다.




'정아 씨...

 토스트 먹고 싶다고 했잖아요.'




나는 내가 만든 토스트를 천천히 맛있게 먹었다.


마치 그녀가 잘했다며
 
내 배를 쓰다듬어 주는 것 같았다.





"첫 눈이 오네..."  <113화 중에서>


Truyện phổ biến với fan của Park Jihoon